글 수: 16    업데이트: 24-04-18 09:30

칼럼-7

|이태수 칼럼| 예지와 관용의 미덕
아트코리아 | 조회 304
 |이태수 칼럼|
 
예지와 관용의 미덕 ——경북신문 2023. 11. 23
 
 
어리석게도 더불어 살아가려 하기보다는 ‘너 죽고 나 살자’는 이전투구가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 삭막한 시대에는 예지(叡智)와 관용(寬容)의 미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근래에 출간된 김주완 시집 ‘선천적 갈증’(문학세계사 펴냄)은 그런 일깨움을 아름답게 떠올리고 있어 각별하게 주목된다. 우주의 질서에 겸허하게 순응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겸양지덕과 영성을 지향하는 사유가 어우러진 그의 시에는 사랑과 감사와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 예지와 관용의 미덕이 두드러져 있기 때문이다.
철학을 전공하는 시인인 그의 시편들은 ‘시 속의 철학’과 ‘철학 속의 시’를 함께 받들더라도 이성의 통로로 나아가는 철학적 관념들을 감성의 통로로 끌어가면서 승화하고 아우르려는 유연한 시적 지향과 추구에 무게가 옮겨지고 있다. ‘존재=언어’라는 등식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시는 특히 미세한 움직임과 아주 작은 소리에서 생명력을 천착해내고, 곡선과 둥긂의 미덕과 정적과 침묵의 세계를 그윽하게 길어 올리는 견자(見者)로서의 예지가 돋보인다.
시 ‘곡선에 대한 회상’은 곡선의 완성 형태이며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둥긂’에 대해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인 시각으로 그려 보이면서, 둥긂을 직선이 곡선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주 작은 소리’와 ‘가온다 원근법’에는 극도의 미시적인 시각으로 아주 작은 기미에 천착하는 지혜가 받쳐주고 있으며, 작고 낮은 걸들을 높고 깊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견자의 예지가 자리매김해 있다.
「아주 작은 소리」는 서쪽에서 싹이 트고 동쪽에서는 나뭇잎이 무거워지며 북쪽에선 여자의 몸에서 꽃이 태어나고 남쪽에서 마음이 붉은 새가 몸을 가진 작은 소리를 품은 채 높이 날아오른다고 동서남북을 두루 포용하면서 거시적인 시각과 미시적인 시각이 어우러져 빚는 생명의 근원과 그 불가시적인 생명력을 가시화하는 세계를 떠올려 보인다.
 
나는 콘트라베이스가 되어 배경 소리를 내었지요/멀리서 보는 가온다의 자리는 눈부셨지요/<중략>/나도 어느 자리에 앉아 구석의 음표가 되었지요/너무 높이 있거나 너무 낮게 있는 친구는/스스로 거리를 두면서 자꾸 멀어지고/우리는 같은 음계끼리만 만나곤 했어요/한 번 눈 먼 새는 영원히 날지 못해요/까마득 높은 소리와 아득히 낮은 소리가 만나/몸부림치면 심포니가 되지요/멀고 가까운 건 세계가 아니라 자리였어요/눈이 내리는 으뜸음 자리는 금세 녹아 버려서/누구도 머물지 못하는 영역이었지요/새벽이면 강으로 나가/날마다 물결치는 소리를 들었어요
─‘가온다 원근법’ 부분
 
이 시는 자신이 구석의 음표처럼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가 어우러지는 교향악의 가장 낮은 소리를 내는 콘트라베이스가 되어 배경 소리를 낸다면서, 눈이 그렇듯이 “으뜸음 자리는 금세 녹아 버려서/누구도 머물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일깨운다. 세상살이에서도 “너무 높이 있거나 너무 낮게 있는 친구는/스스로 거리를 두면서 자꾸 멀어지”므로 같은 음계끼리만 만나곤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도 배음(背音)처럼 다른 소리를 받쳐주는 가온다로 자리를 잡듯이 겸허하게 낮추고 있다.
 
오는 줄도 모르고 왔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가는/오늘 나는 고맙습니다/나를 세상으로 보내주신 어머니, 아버지/고맙습니다/내 손을 잡고 일으켜 주신 할머니, 누님 고맙습니다//모든 것을 두고 갈 수 있어서/나는 복을 받았습니다/임종을 하듯 나의 저녁을 살펴준 마음씨/고운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미안합니다/나로 인해 아프고 슬펐던 사람들/나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전문
 
시 「고맙습니다」는 이 세상이 비록 ‘오는 줄도 모르고 왔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가는” ‘오늘’(날들)이라는 인식을 전제하면서도 사랑을 바탕으로 감사와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 관용의 메시지들을 아름답게 빚어 보여 그윽한 여운을 안겨준다. 감사의 마음은 와서 가는 인생에 대해, 부모와 가족들에게, 마지막까지 고운 마음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낮게 마음 비움으로써 복을 받았다는 데로 스미고 번지며, 자신 때문에 아프고 슬프거나 손해 본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비는 마음이 곡진하게 쟁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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