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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6

[이태수 칼럼] 노년의 향기 / 경북 신문 2022.4.24
아트코리아 | 조회 483
[이태수 칼럼]
노년의 향기

 '100세 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즘, 노인 문제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화두 중의 하나로 떠오른다. '인생의 황혼기'인 노년기의 사람들에게는 나이보다 정신이 노화되고 영혼이 위축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노인들은 자신의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질병과 죽음의 두려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일의 현장에서 맛보던 성취감과 긴장감이 사라지고 세상으로부터 밀려나 쓸모가 없어진다는 소외감에 빠져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런 공허감이나 두려움, 고독이나 소외감을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물 흐르듯이 따라갈 때 그 적막 속에서도 삶의 신비와 그윽한 유현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으며, 새로운 자존감으로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내면을 돌리면서 자신과 더 깊이 만나고 내적 평화를 구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혼자만 있을 때가 잦아졌다/나 홀로 느긋하게/온갖 생각의 안팎을 떠돈다//거기에 날개를 달아보거나/내 속으로 깊이 가라앉을 때가 잦다//빈 집에서 빈 방 가득/생각들을 풀어내다 거둬들이다 하면서/나 홀로 술잔을 기울일 때가 좋아졌다//혼자 마신 술에 젖어/술이 나를 열어주는 길을 따라/나 홀로 유유자적 거닐 때가 좋다//적막이 적막을 껴입고 또 껴입으면/혼자 그 적막을 지그시 눌러 앉히곤 한다//눌러 앉혀 다독이면/그윽하게 따뜻해지는 적막이 좋다/나 홀로, 늘 혼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작시 '요즘은 나 홀로' 전문
 
 몇 해 전에 쓴 시(시집 '따뜻한 적막'에 실려 있음)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당시를 회상해 보기도 했다. 이미 그때부터 바뀐 환경 속의 적막을 뒤집어 따뜻하게 바라보려 했던 것 같지만, 두 해도 넘게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오히려 더 푸근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정하돈 수녀의 저서 '노년의 향기'를 읽으면서 '냄새'나는 사람이 아니라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오랜 세월 담금질해온 나름의 지혜를 바깥으로 발산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는 소망에 불을 지펴 보기도 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노인들이 향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어 그런 소망을 부추겨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생명과 빛에로 나아가는 노년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수도자로서의 신앙적 체험을 바탕으로 겸허하고 진솔한 묵상을 통한 깨달음과 그 지혜를 펼쳐 보이는 노년기 삶의 길잡이라 할 수 있다. 해박한 형이상학적 성찰과 침묵의 내면 깊이 들어가 체득한 일깨움과 지혜를 펼쳐 보인다.
 '침묵', '고요', '고독' 등을 화두로 화해와 평화, 감사와 은총, 신앙의 빛과 향기로운 삶에 천착하는 사유와 묵상들이 깊은 울림을 거느리는 이 책은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고요'를 듣게 되고,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그 '고요'는 존재의 신비를 체험하게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침묵과 고요 속에서 자신과 일치해 사는 사람에게는 평화와 고요가 흘러나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덕목들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노인들에게는 괴로움과 고독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괴로움을 벗어난 노년의 고독은 깊은 내적 평화를 가져다주며, 평화롭고 감사하는 은총의 시간을 안겨 주기도 하므로, 그런 은총 속에서 살아가려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한계 넘어서기, 용서와 치유, 평생 노력의 절정인 지혜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집착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인생의 완성 시기라 할 수 있는 노년에는 두려움과 걱정 너머의 진리에 닿으려는 지혜가 요구되며, 그 지혜는 삶의 깊이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만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로한 정하돈 수녀는 '노인은 평범한 것들 안에서 갑자기 신비로움을 깨달을 수 있고, 곳곳에 숨어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강렬하게 느끼기 시작한다'고도 했다. 거듭 반추해 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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