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6    업데이트: 23-01-25 09:13

칼럼-6

또 한 해를 보내며——경북신문 2021. 12. 24
아트코리아 | 조회 443
<이태수 칼럼>
또 한 해를 보내며
——경북신문 2021. 12. 24
 
 
강약을 거듭하는 코로나 팩데믹 속의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 모진 역병이 처음으로 대구지역을 강타한 이래 두 해 가까이 일상을 잃어버린 채 헤매온 이 환란의 끝이 아직도 보이지 않아 지겹고 안타깝다. 이 세상의 모든 게 지나가고 떠나가게 마련이지만, 이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악성 바이러스는 도무지 지나가고 떠나갈 줄도 모르는 것일까.
 
눈을 뜨고 귀를 열며 길을 나섭니다/사람을 만날 때마다/입을 막고 코도 막아야 합니다/낯선 사람, 낯익은 사람들 모두가/코를 막고 입도 막고 있습니다/귀를 열고 눈을 떠도/보나 마나 들으나 마나일 뿐입니다
 
사람들 사이가 가까워지지 않습니다/일정한 거리를 두고/경계하며 불신하고 있습니다/그 누가 입을 열고 코를 열면서/헤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사람과 사람은 이제/서로 못 믿어 멀어지는 사이입니다
―자작시 ‘입 막고 코 막고―코러나 블루 1’ 전문
 
오죽하면 이 단절과 질곡의 안타까움을 “오늘도 나는 연옥과 천국/그 사이를 넘나들고 있습니다”(자작시‘나의 방―코로나 블루 2’)라고 했겠으며, “우울증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절망과 좌절로 이어질까 두렵습니다”(자작시 ‘코로나 레드’)라고 절규하기까지 하겠는가.
인간은 어쩌면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마치 세계가 한마을처럼 ‘지구촌’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지게 하는 이 비극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질이 나쁜 바이러스가 이 지구촌을 이토록 뒤흔들어 놓을 줄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인간은 거대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현실 초극을 향한 꿈은 인간의 몫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까닭도 언제나 더 나은 세계를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우주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이 거대한 질서를 거스를 수 없으며, 순응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나 겸허한 자세로 우리의 허물부터 자성하면서 이 환란 속에서도 부단히 새길을 찾아 나서는 꿈에 불을 지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인류)은 때때로 예기치 못한 재난과 그런 어려움을 넘어서야 하는 처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힘겹게 다시 일어섰으며, 더 나은 삶을 향한 길을 트고 그런 세상을 끊임없이 지향해오지 않았던가.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지만, 이 환란의 시절도 반드시 지나가고 떠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거의 모든 게 우주의 질서를 따라 지나가고 떠나가고 다시 되돌아오더라도 이런 환란만은 한 번 가서는 절대로 오지 않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가을도 지나가고
 
또 한해가 지나간다./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
 
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허공 깊숙이,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다./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마침내 환하다./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자작시 ‘지나가고 떠나가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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