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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6

​성묘를 다녀와서——경북신문 2021. 9. 27
아트코리아 | 조회 341
성묘를 다녀와서
——경북신문 2021. 9. 27
 
 
옛사람들은 다듬이 소리, 글 읽는 소리, 갓난아이의 우는 소리를 마음 기쁘게 하는 세 가지의 소리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농․어촌에서는 그 말이 이미 옛이야기다. 노부모만 남기고 젊은이들은 거의 도시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아이들의 우는 소리, 책 읽는 소리는 물론 며느리 혼자서나 고부간 장단을 맞춰 곱고 정감이 넘치는 소리를 냈던 다듬이질도 사라진 지 까마득하다.
고작 설이나 추석 명절 때 고향을 찾는 민족 대이동의 물결이 적막한 농․어촌을 잠시 떠들썩하게 한다. 하지만 벌써 두 해째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그마저 시들해지고, 노인들만 그 삼희성(三喜聲)이 사라진 고향을 지키며 적막강산에 고립된 채 살아야 한다.
도시는 농․어촌과는 대조적이다. 젊은 사람들과 소가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도시에는 듣기 싫고 흉한 소리인 삼악성(三惡聲)으로 들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불이 났을 때, 도둑이 들었을 때 외치는 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젠 농․어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던 ‘삼희성’은 사라져 버렸다.
유엔 인구 유형 기준으로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된다. 농․어촌은 대부분 도시보다 훨씬 먼저 무기력하고 늙은 초고령 사회이며, 논밭을 갈고 지킬 젊은이들은 거의 떠나버려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국토 불균형 현상이 날로 속도가 붙는 지금은 삼악성 시대다.
옛날에는 환갑잔치 때 자손들이 절을 하며 ‘오래 사셨습니다’라고 하던 덕담(德談)도 이젠 악담(惡談)이다. 천수(天壽)를 누리는 경우 80~90세를 넘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건 인류의 큰 업적이지만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시한폭탄이라는 양면성도 있다.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경제 성장 둔화→노인복지 축소를 부르며, 재정 위기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오랜 불황에다 역병(疫病)으로 각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판에 놀며 살아야 하는 노인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정년을 채워도 30년 정도는 노부부가 집안에서 함께 놀며 살아야 하는데, 이 경우 부부 사이도 삐걱댈 수 있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좋기만 할 리 없다.
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빨라지면서 홀몸노인들도 급증한다. 게다가 출산율마저 급격히 떨어져 최저출산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맞벌이 부부도 크게 있어 홀몸노인이 증가할 요인은 점점 커지는 형편이다. 고령화 문제에 따르는 홀몸노인 문제는 이제 ‘발등의 불’이 아닐 수 없다.
고령화 문제는 다른 선진국들도 겪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고령화의 속도는 날로 빨라지는데도 대책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구나 이 대책은 많은 시간과 투자가 요구되지만 효과는 늦게, 천천히 나타나므로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실행에 옮기기에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미적거리다가 앞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는 꼴이 돼서는 안 된다. ‘나 홀로 노인’ 문제는 바로 내일의 노인인 젊은이들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효도라는 개념으로는 노인 문제를 풀기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노인들이 평생 노력한 대가를 밑천으로 자존심을 유지하며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적인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노인 문제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는 땅에 떨어진 효도에 대해 깊이 자성해야 할 것이다.
경주에서 활동하는 구영숙 시인은 ‘성묘’라는 시에서 “한 사람씩 동근 봉분 쓰다듬고/가족들 괜히 다닥다닥 붙어/풍성한 분위기 만들어 절을 올린다//서쪽으로 가던 노을/술잔에 일렁이고/그리움은 어느새 붉은빛으로 와서/목을 적셔 준다”고 그리고 있다. 이 삭막한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가족들이 다닥다닥 붙어 조상께 절을 올리며 애틋하게 기리는 마음자리가 그지없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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