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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6

[이태수 칼럼] 칩거시대의 아름다운 꿈 / 경북신문 2021.04.26
아트코리아 | 조회 375
지난해 늦겨울부터 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속의 세상은 가히 연옥(煉獄)에 다름없다. 최근에 출간된 정유정 시인의 시집 '셀라비, 셀라비'를 읽으면서 감성이 예민한 이 시인은 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 연옥과 같은 세상에서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피하기란 / 우리 어머니들의 / 슬픈 노래를 외면하는 것보다 더 / 어려운 일인 것 같'( 시'편지 1―코로나 19')다고 비유하면서도 반성적 성찰과 그 극복을 향한 마음을 곡진하게 펼쳐 보인다.

신이 태양의 불꽃으로 지구를 / 정화하려 하는 걸까요? / 긴 후회로 반성해 봅니다 / 산을 넘었는데 또 다른 산이 / 가로막고 있지 않기를 바라도 봅니다 / 멀지 않은 미래에 모든 이들의 얼굴이 / 봄꽃처럼 활짝 피어나라고 기도합니다 //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시간들을 / 명랑하고 슬기롭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편지 1―코로나 19'부분

시인은 이 미증유의 환란(患亂)을 신이 태양의 불꽃으로 지구를 정화(淨化)하려는 거냐고 겸허하게 물으면서 반성적 자기 성찰을 앞세운다.
세상을 어지럽힌 인간들이 자초한 환란으로 여기는 이 겸허한 자성은 '내 탓'이라는 덕목을 받드는 시인의 마음자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나' 생각을 먼저 하기보다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따뜻한 마음도 떠올려 보인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시 '편지 2'에서도 캄캄한 산 아래 좁은 길을 쓸쓸히 걸어가는 듯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포개고 있으며, 방안에 들면 '조용한 노래처럼 방안공기는 부드럽고 / 어린애 같은 마음은 따뜻해'진다고 자기위무(自己慰撫)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슬프거나 아프지 않은 이들의 표정도 / 태양을 검은빛으로 바꾸어 놓은 것 같이 / 불안하고 음울'하다고 장기적인 코로나 블루의 이면을 환기하지만, 마지막 대목에서는 안정과 여유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봄 풍경 안에서 / 밀어 두었던 책 속에 빠져있으니 /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제 걱정은 마시고 / 꼭 평안하고 안전한 곳에 계시기 바랍니다 -'편지 2' 부분
이 대목에 이르러 시인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봄 풍경과 독서에 빠져들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신의 안부를 전하며 평안을 바란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단절과 소외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바깥세상의 흐름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면서 내면 성찰로 눈길을 돌려 시간의 흐름이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창을 비우고 마음도 비게 하는 허무나 무상과 마주친다.
하지만 이 비움은 좌절과 좌초가 아니라 다시 채우고 일어서기 위한 예비동작이 아닐 수 없다. 산중(山中) 집의 방에서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끌어들이고, 이상향(理想鄕)과도 같은 꿈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의지에 불을 지핀다.
투명한 유리벽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거나 내부로 시선을 돌리면서 현실 너머의 신비와 비의(祕義)의 세계를 찾아 나서며 끊임없이 꿈을 꾸기도 한다. 그 꿈은 지난날과 지금, 앞날에까지 분방하게 길항(拮抗)하지만, 어둠과 밝음을 넘나들면서 궁극적으로는 초월을 향한 길트기, 무상과 포용의 길 걷기로 귀결되는 심상 풍경에 주어지고 있다.
이 서정적 환상은 끝내 비어버리고 말지라도 바라는 바의 이데아를 향해 열리고 있으며, 상실과 박탈감을 넘어서는 따뜻한 사랑의 회복과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을 깊숙이 끌어안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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