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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정하해와 이진엽의 따뜻한 시 / 경북신문 2020. 8. 25
아트코리아 | 조회 572
정하해와 이진엽의 따뜻한 시
경북신문 2020. 8. 25
 
 
우리는 여태 겪어 보지 못했던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삭막해지고 사랑은 메말라간다. 엎친 데 덮친 코로나 팬데믹도 언제 그 끝이 보일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암담하고 잘못 돌아가더라도 절망할 수만은 없다. 역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리적 거리를 두더라도 마음만은 그러지 않아야 한다.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고 가까워질 수 있도록 희망의 전언들을 보듬고 소통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근래에 읽은 정하해의 시 ‘빵과 빵 사이’와 이진엽의 시 ‘따스한 소통’은 그런 의미에서 눈길을 끈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들의 시는 범상한 일상의 일들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사랑과 나눔, 소통의 ‘작지만 따뜻한 미덕’들을 일깨운다. 이진엽은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사람과 생명체(동물)들 사이의 소통과 사랑에 마음눈을 가져가고 있어 돋보인다.
 
“단속 때문에 이른 저녁에야 나오는/리어카의 풀빵집/인기가 좋아 늘 기다리든지/아니면 재료가 다 떨어지든지/그녀가 나오는 날이면/기다렸다 먹는 수고로움도 달았다/ <중략> /민들레꽃처럼 노랗게 피던 풀빵이/겨울을 따뜻하게 끌고 갔다/하지만 그해 겨울, 그녀는 오지 않았다/ <중략> /풍문에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도 들리고/겨울이 그녀를 착착 접어/쭈그려 앉힐 때/삶을 반죽처럼 주물러/고쳐 쓸 수 있다면/제과점 빵들이 비집고 들어앉은 동네에서/밋밋한 풀빵 그 달짝지근한 냄새가/그러니까 사람 사이에 피었다/영영 들어오지 않을 그쪽이었음을”(정하해의 ‘빵과 빵 사이’ 부분)
 
무허가 리어카 풀빵 가게와 여주인, 달짝지근한 풀빵에 대한 기억들을 포근한 감성의 언어로 떠올려 보이는 이 시는 사소한 일상의 이면을 사소하지 않은 연민과 그리움의 시선으로 부각시킨다. 시인에게 그 난전의 풀빵에 대한 기억은 미각과 시각에 애틋한 그리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빵(풀빵)과 빵(제과점 빵) 사이는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 있는 것으로 그린다. 더구나 그 리어카 풀빵 가게의 여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안타까움을 삶을 반죽처럼 주물러 고쳐 쓸 수 없음을 시인의 따뜻한 마음과 연민 속에 녹여 드러내 보인다.
 
“겨울 바다 작은 횟집//한 여주인이 회를 뜨고 남은 것을/양동이에 가득 담아 저쪽 모래톱에 갖다 버렸다/그러고는 이내 망망대해를 바라보며/이상한 신호를 허공 쪽으로 몇 번 보냈다//순간, 하얀 갈매기 떼가 어디선가 날아와/그 생선의 잔해들을 깨끗이 먹어 치웠다/여인은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돌아갔고/갈매기들도 끼룩대며 다시 바다로 날아갔다//소리,/외침은 넘쳐도 가슴이 없는 이 시대/참 따스한 소통의 끈이/겨울 감포 바닷가에서 털실처럼 풀리고 있었다(이진엽의 ‘따스한 소통’ 전문)
 
겨울철 감포 바닷가의 작은 횟집에서 마주친 따스한 풍경에 시인의 마음을 포개어 보여주는 시다. 시인은 횟집의 한 여주인이 생선의 회를 뜨고 남은 찌꺼기들을 바다의 갈매기들이 먹을 수 있게 배려하는 모습을 ‘따스한 소통’으로 읽는다. 게다가 여주인이 회를 뜨고 남은 생선의 잔해들을 양동이에 담아 모래톱에 가져다 두고 망망대해의 허공을 향해 이상한 신호를 몇 번 보내고, 갈매기들이 깨끗이 먹어치운 뒤에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가게에 돌아가며, 갈매기들도 바다로 다시 날아가는 모습으로 실감나게 그린다.
이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경은 현실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읽힌다.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너’와 ‘나’의 벽이 높아지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나눔과 베풂의 미덕이 희석되고, 따뜻하게 열려 있어야 할 가슴들이 싸늘하게 식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 사회의 오늘을 외침은 넘쳐도 가슴이 없는 이 시대라고 질타하며, 따스한 소통의 끈이 털실처럼 풀리고 있었다고 현실 사회와 대비해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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