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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부귀(富貴)와 덕(德)—경북신문 2019. 1. 29
아트코리아 | 조회 519
<이태수 칼럼>
부귀(富貴)와 덕(德)—경북신문 2019. 1. 29
 
 
옛사람들은 ‘부(富)’를 다섯 가지 복(五福)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수(壽)’를 그 다음으로 쳤다. 사람이 오래 사는 건 하늘의 뜻이며, ‘부’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므로 그보다는 한 단계 아래라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귀(富貴)’의 ‘귀’는 유감스럽게도 다섯 가지 복에 들어가지 않는다. ‘귀’는 사사로이 혼자 잘사는 것이므로 그 반열에 들 수 없다고 ‘서경(書經)’은 말해주고 있다. ‘부’도 여러 사람을 위해 착하게 쓰일 때 ‘복’의 덕목을 지니게 된다고 옛사람들은 가르쳤다.
부자(富者)의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부자가 있고, 스크루지나 샤일록 같은 유형도 많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부자들도 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영국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민한 뒤 방직공, 전보배달원, 전기기사 등을 거쳐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던 인물로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가였다. 이탈리아의 메디치가(家)는 학문과 예술을 보호하고 장려해 이 나라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미국의 록펠러, 빌 게이츠도 사회 환원의 전통을 실천한 부자들이다.
1600년대 초반인 조선조부터 300년, 10대에 걸쳐 만석꾼의 ‘부’를 유지했던 경주 최 부잣집의 비결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 집의 가훈(家訓) 가운데는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 특히 ‘벼슬을 진사 이상 하지 말라’고 한 까닭은 ‘왜’일까. 부자로 살려면 바람을 타기 쉬운 고위관직을 삼가야 한다는 경고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누구나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졸부들은 불안정한 사회 정세를 이용해 기회주의와 모험으로 떼돈을 모으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최근 신문지상을 통해 부동산 매입 문제를 둘러싼 ‘손혜원 국회의원 사태’를 지켜보면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리사욕을 위한 부동산 투기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낙후된 한 도시(목포)의 옛 도심과 지역(호남), 문화재 살리기라는 그럴듯한 브랜드 전략을 버젓이 내세우고 있다.
손 의원의 말대로라면 명분(名分)이 시대적 배경과 잘 맞아떨어질 뿐 아니라 대의명분(大義名分)에 끌려 다니기 십상인 대중들에게는 설득력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련의 변명들이 양심을 바탕으로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본인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음을 바로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듯이 명백한 정치적 궤변이라면 염치(廉恥)는 온데간데없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도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 가관인 건 손 의원이 부동산을 다수 사고 지인들에게 매입을 권하고 다녔다는데서 시작된 이 사태가 ‘이해(利害) 충돌’이라는 논란이 거세지자 되레 ‘손해(損害) 충돌’이라는 말로 받아치면서 마치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신이 ‘문 대통령 만들기’ 전략의 선봉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데 이르면 ‘장삿속이 앞선 마케팅 전문가’의 정치적 전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중은 큰 흐름에 편승하게 마련이다. 마케팅 전문가는 대중을 움직이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손 의원이 마케팅과 정치가 유사하다는 잘못된 발상으로 사적인 이익 추구를 공공의 이익 추구로 거짓포장을 하려 하거나, 그런 몰염치로 의혹을 희석하려 한다면 절대로 안될 일이다. 우리 사회도 이젠 대중을 움직이는 포퓰리즘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논어(論語)’의 고사에 “제나라 경공(景公)이 말 4천 필을 가졌으나 죽은 날 백성들이 그 ‘부’를 ‘덕’이라 칭찬하지 않았으며, 백이숙제는 수양산 아래에서 굶어 죽었으나 만민이 그 덕을 칭찬했다”는 말이 기록돼 있다. 옛날 중국의 재상(宰相)들은 ‘부귀’를 함께 누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귀’하면 ‘부’를 내놔야 하고, ‘부’가 있으면 ‘귀’를 버려야 했다. 이 시대에 부귀를 꿈꾸는 사람들이 귀감으로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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