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7    업데이트: 20-12-29 10:14

칼럼-5

곡선과 여백의 아름다움—경북신문 2018. 6. 30
아트코리아 | 조회 475
곡선과 여백의 아름다움—경북신문 2018. 6. 30
 
 
 아름다움(beauty)의 어원을 보면 ‘훌륭한’, ‘우아한’, ‘고결한’, ‘돋보이는’ 등의 의미를 거느리는가 하면 숭고미, 우미, 비장미, 골계미 등이 모두 이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또한 자연미와 예술미로 나뉘며, 예술미(예술품)는 형식미와 내용미를 포용한다.
 구석기 시대의 동물그림들은 ‘그 대상을 그림으로써 곧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렸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벤야민은 작품의 제작 동기를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 만든 경우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경우로 나눴다.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부수적인 수단인 경우에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작업 과정에서 ‘심미적 만족’을 느꼈을 것이라는 견해다.
 공자는 미(美)와 선(善)을 도덕이나 정치와 결부해 예술의 요소로 받아들였다. 최고의 미와 최고의 선이 일치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맹자도 인간의 마음에 지닌 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곧 미라고 여겼다. 소크라테스 역시 미를 선과 같이 어떤 사물의 유용성 여부나 목적에 대한 적합성 여부에 따라 정해진다고 보면서, 유용한 것은 미이자 선이고, 목적에 적합한 것은 그 목적에 관해서 미이면서 선이라고 했다. 예술이 미적 활동이라 하더라도 사회의 실천적이고 이상적인 가치인 선을 구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있다는 견해들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은은하게 안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멋과 자연스러움에 있다. 특히 자연의 미가 바로 한국의 미이자 그 뿌리라 해도 좋을 정도로, 우리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위압하지 않고 슬며시 끌어당기는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부드럽고 너그럽게 끌어안아 주며, 그 안으로 자신도 모르게 깃들이게 하는 친화력이 두드러지고, 화려하기보다 담백하고 단순하며 간결하면서도 품위와 고아함을 끌어안는다.
 한국적인 미는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곡선(曲線)과 비어 있는 듯 비어 있지 않은 여백(餘白)의 어우러짐, 틔어 오르기보다는 가라앉거나 고이는 듯한 온화함, 절도 있는 억제(절제)와 말 없는 말(침묵) 등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색이다. 우리의 자연, 우리가 만들었던 건축물들은 한결같이 이 같은 미덕들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산들을 보면 둥글며, 그 줄기들은 완만하게 중첩되고, 손을 잡거나 어깨를 겯듯이 어우러져 있다. 어쩌다 가파른 산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하늘과 닿으며 만드는 곡선들도 부드러우며, 그 곡선들이 겹쳐지면서 빚어내는 너그러움도 정겹다. 그 산에 올라보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자락이나 중턱에는 사찰이 고즈넉하게 들어 앉아 있으며, 계곡의 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게 마련이다.
 어릴 적의 기억이지만, 야트막한 산에 올라 굽어보면 산의 형상을 닮은 초가집들이 편안하게 옹기종기 모여 엎드려 있고, 기와집 지붕들도 추녀가 버선코처럼 반달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 봄의 풀들과 나무,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꽃들, 가을이면 어김없이 산을 물들이는 단풍들도 정겨웠다. 꽃이든 단풍이든 내세우기보다는 뭔가 안으로 다소곳하게 절제하고 있는 겸손 그 자체이면서 사람을 푸근하게 품어주는 느낌을 안겨주곤 했다. 선으로 치면 모두가 곡선이다. 산을 닮은 무덤들도 여기저기 서로 끌어당기듯이 자리 잡고 있으며, 멧새들은 하늘에 이따금 포물선을 그리며 지저귀고, 하늘의 구름들도 나뭇가지에 매달리다가 스르르 미끄러지거나 느릿느릿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여백은 한국적 미를 크게 강화하는 ‘말 없는 말’로, 되레 말의 힘을 증폭시키거나 더 아름답게 보완하고, 의미망을 확충하는 역할을 한다. 시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여백이 절제와 안에서 배어나오는 ‘말 없는 말’과 미감의 공감대를 오히려 강화해 준다. 우리의 자연은 그렇게 우리를 부드럽고 넉넉하게 우리를 끌어안으며, 그 위의 하늘 역시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옥빛이나 푸르른 옷자락을 펼치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요즘 세태가 너무 각박하고 비정해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새삼 해보게 한다. 특히 곡선과 여백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그 미덕으로의 회귀와 회복을 꿈꾸고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겠지만…….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