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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끽연 타령—경북신문 2018. 5. 31
아트코리아 | 조회 402

끽연 타령—경북신문 2018. 5. 31
 
 
 충남 공주에서 전해오는 담배에 대한 설화는 에로틱하다. 한 남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기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죽어서라도 입을 맞추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다. 그 기생이 죽자 무덤에 낯선 풀이 돋아났다. 그 풀이 바로 담배라고 한다. 입으로 빠는 기호품이 된 연원을 말하는 설화인 셈이다.
담배는 우리 설화에도 그려지고 있듯이 정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권위와 멋, 정한과 여유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젠 옛 얘기가 됐지만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곰방대 터는 소리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장죽의 금속부분으로 소리 내어 두드리면 어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신호라서 집안은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할머니의 담배는 인내와 한의 출구를 여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출가하는 여성의 보따리에 담뱃대를 넣어주는 풍습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중가요에도 등장하듯이 마도로스 파이프는 여유와 멋의 의미를 지닌 경우라 할 수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 토인들과 접촉하면서 문명세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콜럼버스 일행을 ‘신이 보낸 사자’로 보고 진귀한 선물들을 줬다. 그 중의 하나가 담배였다고 한다.
 기원전부터 야생종으로 분포돼 있던 담배를 원주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피웠겠지만, 1543년 스페인의 한 학자에 이어 많은 학자들이 담배의 효능에 대해 발표한 뒤 전 세계에 애연가들이 급격하게 늘었다. 담배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지만 1558년 스페인의 왕 필립 2세가 관상용으로 재배하면서 유럽에 전파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광해군 10년(1618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품종은 다른 나라를 거쳐 들어왔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건 ‘남초’ 또는 ‘왜초’라고 불렀고, 중국 베이징이나 서양에서 도입된 것은 ‘서초’로 불렸다고 한다.
 담배는 기호품뿐 아니라 종교의식과 의약품에도 이용됐다. 옛날 사람들은 담배 연기로 신을 부르고 악령을 쫓았으며, 약으로 만들어 외상이나 진통 등에 쓰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담배가 ‘의학적 효능’은커녕 죽음을 부르는 ‘저승사자’로 그 운명이 바뀌어 인류의 공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건강에 해롭다는 과학적 보고는 1950년부터 시작돼 의학 관련 학술 논문 중 단일 과제로는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을 정도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 다섯 개비나 따라 피우는 셈이라는 조사 발표가 나온 바도 있다.
 담배 애호가들의 설 자리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직장이나 공공장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마저 천덕꾸러기 신세다. 어린애들과 함께 사는 어른들은 추방당할 소지마저 없지 않아졌다. 늦은 밤에 아파트 베란다 창가를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마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동생 마거릿 공주는 타계한 뒤 담배와 관련된 여러 가지 뒷말을 남기고 있다. 장수하는 영국 왕족들과는 달리 71세에 세상을 떠난 그는 사실 지독한 애연가였다. 사인이 뇌졸중이지만, 1985년 한쪽 폐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도 담배를 계속 피울 정도로 ‘골초’였다.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게 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국 왕족으로는 처음으로 화장을 선택(유언)한 것이나 굳이 흡연을 고집한 건 평민과 결혼한 뒤 왕가의 냉대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연민을 동반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여성 흡연의 한 모습을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으나 반드시 끊어야 하느냐는 회의도 하고 있다. 요즘 담배 갑에는 흉측스러운 정도의 경고성 사진과 글이 적혀 있어 ‘눈감고 아웅’식이지만 담배 케이스에 담아 피우곤 한다.
담배가 건강에 해로운 줄은 잘 알고 있지만, 글을 쓰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담배에 불을 지펴야 평정되고 머리가 도는 느낌이다. 나도 참 한심한 사람이라는 자괴감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어쩌면 담배를 끊느냐 마느냐 하는 망설임은 쉽게 끝장나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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