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7    업데이트: 20-12-29 10:14

칼럼-5

전업시인으로 살면서—경북신문 2018. 4. 30
아트코리아 | 조회 407

전업시인으로 살면서—경북신문 2018. 4. 30
 

 ‘당신이 소금 장미나 황옥이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불이 뿜어내는 카네이션 화살이었대도/어떤 숨겨진 게 사랑 받을 만큼 당신을 사랑한다/은밀히, 그늘과 영혼 사이에서’
 칠레 출신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100편의 사랑 소네트’에 실려 있는 시의 한 부분이다. 이 지순한 시 앞에서 우리는 그가 동조했던 칠레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던 주간에 타계한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부르면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그의 시는 아름다운 향기를 끝없이 안겨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이 놓인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되기도 했다. 더구나 그런 반응과 함께 인간성 회복과 그 고양, 억압 체계에 대한 저항, 자유의 존귀함 등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부드러우면서도 완강한 힘’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랑받기도 했다. 구텐베르크 이후 활자 매체는 정신문화의 무게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으며 문학, 그 중에서도 시는 오랜 세월 동안 그 꽃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벌써 오래 전부터 문학이 사양길을 걷고, ‘시가 죽어간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상화 시대를 맞아 문학이 제공하던 영향력과 재미가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나 휴대전화기의 화면 등으로 넘어간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세상이 빠르게 달라지는 디지털의 물결과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그 기능은 소멸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가 하면, 시가 그 무엇을 진단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수동성의 위치에서 고유의 장르 자체마저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적인 관측마저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가 마냥 변두리로 밀리는 현상은 우리의 정신문화는 날이 갈수록 뒷걸음질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시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 옹호가 지상과제라면 씁쓰레해질 수밖에 없다. 세태가 그렇듯이 시인들도 엄청난 속도로 달라지는 세상에서 움츠릴 대로 움츠려 방향감각까지 흐릿해지고 있는 감도 없지 않다. 시인과 시 잡지들은 계속 크게 늘어나는데도 정작 그 알맹이인 시는 갈수록 소외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시는 시인과 시문학도들만의 ‘폐쇄 회로’에 갇히는 현상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 장르론적 운명이 시인들을 더욱 작아지는 추세라고 한탄하는 소리도 들린다.
 시의 소외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문명화와 기술 사유화의 시대, 자본주의로 수렴되는 균등한 경제 체제의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오늘의 상황과 시는 깊은 함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의 소외 현상은 시인의 몫임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시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깊이 있게, 감동적으로 읽히고 외워져야 한다는 논리도 문제지만, 전업시인들이 돈벌이를 위해 사랑 타령이나 하고 시적 분위기만 만들고 있는 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게다가 시를 가르치는 곳이 많아진 데 따르는 창작 과정, 시의 수준에 관계없이 양적으로만 팽창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부채질해대는 느낌이다.
 ‘느린’ ‘비경쟁적’ ‘차선적’ 상상력의 바탕 위에서 시의 새로운 꿈이 가능해진다고 한 비평가가 전망한 바 있다. 시인들이 시대를 과감하게 거슬러 오르면서 ‘타락한 언어’를 ‘신성한 언어’로 바꾸는 의지력과 인문주의적 상상력의 치열성을 견지하는 슬기가 더욱 요구되는 시대가 아닐는지…….
 문학과 예술외적인 일과는 단절하고 오로지 전업시인으로만 살겠다고 마음먹으며 외로운 길을 걸어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어렵게 살더라도 오래 꿈꿔온 길로만 가겠다는 나름의 고집 탓이다. 60대 이후에도 세상잡사에 떠밀려간다는 건 싫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결벽증’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에도 시집 ‘거울이 나를 본다’와 시선집 ‘먼 불빛’을 동시에 냈다. 돈도 안 되고 별 명예도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다. 더러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 몇몇이 따뜻한 정을 끼얹어 주기도해 적잖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 외진 오솔길이 내겐 그래도 좋은 걸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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