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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축복과 재앙—경북신문 2018. 3. 29
아트코리아 | 조회 397

축복과 재앙—경북신문 2018. 3. 29
 
 중국 초(楚)나라 때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방패를 자랑하면서 굳고 단단해서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고 했다. 또 창을 자랑하면서는 어떤 방패든지 못 뚫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라고 물었다. 그 상인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못 뚫는 것이 없는 창은 이 세상에 함께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난일(難一)’에 나온다. 한비자는 요(堯)의 명찰과 순(舜)의 덕화를 서로 비교하기 어려우며, 둘을 동일한 관점에서 기릴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 ‘모순(矛盾)의 비유’를 들었다. ‘모순’은 ‘자상모순(自相矛盾)’이라고도 하며, 말이나 행동이 서로 어긋남을 비유하는 말이다.
 근래에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UAE 원전 1호기) 완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와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을 신문지상에서 보았다. 우리나라 원전기술의 자랑스러움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진과 기사를 보면서 한비자의 ‘모순의 비유’가 뇌리를 스쳤다.
 바라카 원전은 중동 지역 최초의 원전일 뿐 아니라 한국형 원전이 우리의 기술 자립을 발판으로 해외에 진출해 그 확산의 계기를 만든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미 바라카 원전에 이어 2020년까지 한국형 원전 4기가 건설돼 아랍에미리트의 발전량 4분의 1 정도를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영국 무어사이드 지역의 원전사업자인 뉴젠을 인수하는 우선 협상자가 되는 쾌거를 이룬 것도 이 원전과 함수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원전 기술은 이같이 세계가 인정하고 선호하는 위치에 올라 있다.
 원유 매장량이 엄청난 아랍에미리트는 에너지 걱정이 없는 자원부국이지만 앞날을 내다보면서 원전 프로젝트를 밀고 나가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마찬가지 움직임인 것으로 알려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00조원 규모의 원전 프로젝트 예비사업자를 머잖아 발표할 움직임이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원전이 앞으로 중동에 크게 뻗어나갈 여지를 30년 정도 염두에 둔다면 그 시장이 600조원에 달할 정도라고 내다본다. 더구나 아랍에미리트가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를 돕기로 했다고 하니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상황과 이 같은 우리의 기대감은 모순되는 양상으로 엇갈리고 있다. 벌써 중동 지역에서는 우리 원전이 효자 노릇을 하지만, 정작 똑같은 원전과 그 기술이 국내에서는 ‘불한당’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바라카 원전은 참으로 바라카(신이 내린 축복) 역할을 했다”고 한 말을 떠올리면 실소를 하다못해 씁쓸하기 그지없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고 나간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축복’이지만 국내에서는 ‘재앙’이라고 여기는 꼴이니 안팎으로 불합리하고 비과학적인 정책 방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른 나라에 수출하면서 국내에서는 금지하는 모순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축복은 축복이고 재앙은 재앙이다. 축복과 재앙이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 재앙이 축복이 되고 축복이 재앙이 된다고 한다면 소도 웃을 일이지 않은가.
 이 모순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원전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국내 원전을 뿌리 뽑는 정책으로 일관한다면 결국 세계 경쟁력을 갖춘 한국형 원전 기술과 인력 인프라는 점점 약화돼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출마저 불가능해지는 날도 오고 말 것이다.
 원전을 폐기하고 외면하던 나라들이 다시 원전으로 회귀하거나 원전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 근래의 추세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1956년에 콜더홀 원전을 건설했던 영국도 이젠 한국형 원전에 러브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런가는 자명한 일이다. 정부를 향해 묻고 싶다. 우리 원전이 왜 다른 나라에서는 축복이고 국내에서는 재앙인가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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