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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야기

이태수 선생님께_장하빈
아트코리아 | 조회 966

아침 한때
  

                        이태수

앞산에서 뻐꾸기 울고 아침이 온다
창문 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그레고리오 성가
    
갤 듯 말 듯 찌푸린 하늘에
낮게 떠 있는 구름이 성스러워 보인다
    
간밤에는 악몽에 시달렸으나
꿈 깰 무렵에야 황감히 받아먹은 만나
낯선 광야에서 헤매던 내가
환한 얼굴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일까
멧새 소리도 유난히 밝다
    
트릴 리듬을 타기라도 하듯이 구름은
내리는 햇살과 어우러진다
    
더욱 성스러워 보이는 앞뜰의 산딸나무
    
심금을 울리던 성가가 멎어도
음반은 여전히 돌고 있는 것만 같다
    
                          
      ―시집 『거울이 나를 본다』 (문학세계사, 2018)
    
                                                         *  *  *

 
 그레고리오 성가가 들려오는 성스러운 아침이다. 천주교 전례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로 인하여 낮게 떠 있는 구름, 앞뜰의 산딸나무는 말할 나위도 없고, 밝고 경쾌한 아침을 여는 뻐꾸기 울음과 멧새 소리, 높고 빠른 리듬을 타는 구름과 햇살도 성스러운 아침을 맞이하는 주인공이다.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 여호와께서 주신 광야의 양식 '만나(manna)'를 만나 갓 깨어난 나도 성스러운 아침을 맞는 성스러운 얼굴로 탄생된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 나무라는 산딸나무에게로 다가가 두 팔 벌려 공중 높이 매달려 보고 싶은 아침이다. 이웃집 성가가 멎어도 음반을 돌리는 신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아 신의 음성이 은은하게 들려오는 아침이다. 
 시력(詩歷) 45년, 이상 세계 꿈꾸기와 그 변주를 추구해온 시인! “그의 언어는 성스러운 기도이자, 인간의 언어이면서 끊임없이 신성을 환기시킨다”(김주연)는 오늘의 신문 기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아침이다.
                                             
                                              * 2018년 5월 31일 매일신문에 실림  



  이태수 선생님께

  이태수 선생님의 열네 번째 시집 <거울이 나를 본다>와, 삶과 시의 지향 세계를 갈무리한 선시집<먼 불빛>의 상재를 축하합니다. 실존적 방황과 초월의 꿈_ '너, 나, 그'와 둥글음의 지향_ 세기말의 연민과 신성한 세계 꿈꾸기_ 침묵에 들기와 떠받들기_ 그윽한 적막, 역설적 자기 성찰 등으로 분류된 자작시 해설 '나의 시, 나의 길'을 통해 선생님의 시 세계에 한층 다가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문학의 집 '다락헌'에서 장하빈 손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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