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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민음의 시 188 - 침묵의 푸른 이랑 (이태수 시집)
아트코리아 | 조회 1,362

 

 

㈜민음사    펴냄 / 이태수    지음 / 124*210 / 양장 / 144쪽 / 2012년 11월 2일 / 값 8,000원
ISBN 978-89-374-0808-3
                 
  


“맑고 투명한, 진실하고 은은하게 깊은 시”로 이루어 내는
성스러운 침묵의 시학

 

 

 대구시문화상(문학),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 이태수의 <침묵의 푸른 이랑>이 출간됐다.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전통적인 서정시의 영역에서 꾸준히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시인이 선보이는 열한 번째 시집이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침묵의 푸른 이랑>은 「달빛」, 「구름 한 채」를 포함해 총 76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인 오생근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의 언어를 동경하는 이태수의 시 세계는 화려한 ‘말잔치’와는 거리가 먼 침묵의 시학으로 요약된다.”고 평했다. 이태수 시인은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넘어선 침묵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성스러운 침묵의 언어를 탐구한다. 그의 탐구는 절대적인 ‘무’와 초월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의 언어를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시의 언어로 귀환하기 위한 것이다. 침묵의 언어가 ‘비움’과 ‘내려놓음’의 가르침을 통해 어떻게 모험과 창조의 주체로 다시 깨어날 수 있는지 이 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은 이해타산적인 세속에 함몰되지 않은, 성자의 삶과 같은 교훈을 가르쳐 줄 것이다. 


(주)민음사 파주시 문발동 출판도시 519-2
담당: 편집부 남선영 02-515-2000 (내선 381)

 

 

■ ‘비움’과 ‘내려놓음’의 미학적 성취

 

 이태수의 시는 난해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시인은 난해시와는 다른 “맑고 투명한, 진실하고 은은하게 깊은 시”에 대한 동경과 희망을 표현한다. 이러한 희망의 의지처럼 그는 인공적인 조작의 난삽한 이미지들보다 쉽고 서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들을 선호해 왔다. “맑고 투명한, 진실하고 은은하게 깊은 시”란 시인의 시적 지향일 뿐 아니라, 40여 년간 이태수가 고집스럽게 지켜 온 그의 시 세계를 요약해 주는 대목이다. 「풍경(風磬)」은 이러한 시적 특징이 잘 나타난 시이다.

 

바람은 풍경을 흔들어 댑니다
풍경 소리는 하늘 아래 퍼져 나갑니다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속마음의 그윽한 적막을 알 리 없습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나를 흔듭니다
흔들릴수록 자꾸만 어두워져 버립니다

 

어둡고 아플수록 풍경은
맑고 밝은 소리를 길어 나릅니다

 

비워도 비워 내도 채워지는 나는
아픔과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두워질수록 명징하게 울리는 풍경은
아마도 모든 걸 다 비워 내서 그런가 봅니다

                                       풍경」 전문

시인은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겸손해지기 위해 시를 쓴다고 할 만큼, ‘비움’과 ‘내려놓음’은 그의 중요한 시적 주제들이다. 화자는 모든 것을 다 비움으로써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듯, 자신도 그러한 ‘비움’의 노력 끝에 “그윽하고 맑고, 밝은” 소리의 시를 쓰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 진정한 시의 언어로 귀환하기 위한 침묵

 

 이태수는 인간의 소음과 침묵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꿈꾼다. 초월적 세계의 ‘침묵’은 「어떤 신기루―침묵의 무늬」에서 하늘에 떠 있는 집의 침묵과 「저녁 숲―신성한 침묵」에서 “제자리에서 어둠을 그러안는” 숲의 침묵으로 이어진다. 또한 「밤하늘―침묵의 빛」에서 보이는 어두운 밤의 숲은 “느린 듯 느리지만은 않게 침묵 속으로 길을 트는 중”이라거나 침묵은 “나무들 사이로 낯설게 환한 길을 내고 있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길을 찾는다는 의미와 같은 길을 만든다는 행위로 연결된다. 침묵은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모험과 창조의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침묵의 주제가 의미 있게 나타난 시는 「달빛 속의 벽오동」이다.

 

달빛이 침묵의 비단결 같다
우두커니 서 있는 벽오동나무 한 그루,
그 비단결에 감싸인 채
제 발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깊은 침묵에 빠져들어
마지막으로 지는 잎사귀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벗을 것 다 벗은 저 늙은 벽오동나무는
마치 먼 세상의 성자, 오로지
침묵으로 환해지는 성자 같다
말 없는 말들을 채우고 다지고 지우는 저 나무,
밤 이슥토록 달빛 비단옷 입고
이쪽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오랜 세월 봉황 품어 보려는 꿈을 꿨는지,
그 이루지 못한 꿈속에 들어 버렸는지,
제 몸을 다 내려놓으려는 자세로 서 있다
달빛 비단 자락 가득히
비단결 같은 가야금 소리, 거문고 소리,
침묵 너머 깊숙이 머금고 있다

                       「달빛 속의 벽오동」 전문

 

이태수는 이렇게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넘어선 침묵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침묵의 언어를 탐구한다. 그의 탐구는 절대적인 ‘무(無)’와 초월의 세계에 이르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시의 언어를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시의 언어로 귀환하기 위한 것이다.


■ 침묵의 한가운데서 “말”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다

 

시(詩)에게」는 언어에 대한 시인의 반성적 사유를 읽어 볼 수 있는 시이다.

 

나는 이제 너를
그윽하고 투명하게 띄워 주고 싶어
말들을 붙들어 가두지 않고
어둡고 무겁게 질식시키지 말고
말의 고삐들을 하나하나 풀어 주고 싶어
사닥다리까지 놓아 주고 싶어

 

너는 언제나 침묵의 한가운데서,
또 다른 침묵으로 가는 길 위에서
설레며 눈을 뜨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낮게 그러안고 있지

 

침묵만이 말의 깊은 메아리를 낳듯,
그 메아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듯
침묵 위의 은밀한 비상을 위하여,
너를 위하여 날개를 달아 주고 싶어
나는 진정 이제 너를
투명하고 그윽하게 보듬고 싶어

 

                           「시에게」전문

 

 시인은 말들을 “가두지 않고”, “질식시키지 말고”, 자유롭게 풀어 주고 싶다는 뜻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인이 바라는 말들의 자유와 해방에는 전제가 있다. 그것은 “침묵의 한가운데서”, “또 다른 침묵으로 가는 길 위에서” 태어나는 시의 언어는 “침묵만이 말의 깊은 메아리를 낳”기 때문에 그것의 자유를 위해서는 언제나 침묵과의 긴장 관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침묵의 언어를 동경하는 이태수의 시 세계는 침묵의 시학이라고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의 말

 

 이태수, 젊은 나이에 시업(詩業)을 시작해서 지하철 경로권을 사용하게 된 지금까지 자연과 신 앞에 놓여 있는 인간의 조그맣고 불편한 진실을 그처럼 쉬지 않고 꾸준히 노래한 시인을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그는 ‘주님의 은혜’를 내놓고 찾거나 찬양하지 않지만 그의 시들은 ‘성스러움’으로 차 있다. 그 성스러움은 삶의 구차함 속에서 때로는 침묵 속에서 “침묵으로 환해지는 성자”(「달빛 속의 벽오동」)처럼 더 빛을 낸다. -황동규(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시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구이며, 그 동시적 현재화이고, 그 언어적 대리 구축일 수밖에 없다. 이태수 시학이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초월의 감각과 형이상학적 꿈에는 그러한 기율과 열정과 일관된 방법적 자의식이 담겨 있다. 그의 시학은 상처와 우울을 넘어 멀리 비상하면서, 동시에 지상으로 내려와 상처와 우울을 견디고 치유한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 작품 해설에서


 이태수는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넘어선 침묵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성스러운 침묵의 언어를 탐구한다. 물론 그의 탐구는 절대적인 ‘무(無)’와 초월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시의 언어를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시의 언어로 귀환하기 위한 것이다.
시인이 바라는 말들의 자유와 해방에는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침묵의 한가운데서”, “또 다른 침묵으로 가는 길 위에서” 태어나는 시의 언어는 “침묵만이 말의 깊은 메아리를 낳”기 때문에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언어는 언제나 침묵과의 긴장 관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의 언어를 동경하는 이태수의 시 세계는 화려한 ‘말잔치’와는 거리가 먼 침묵의 시학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오생근(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 차례

 

자서

 

1부

 

달빛
구름 한 채
정오 한때 -뜨거운 침묵
어느 빈 마을 -침묵의 영토
어떤 신기루 -침묵의 무늬
저녁 숲 -신성한 침묵  
밤하늘-침묵의 빛
새벽 풍경 -깨어나는 침묵
달빛 속의 벽오동
우울한 몽상
꿈속의 집 1 
꿈속의 집 2 
꿈속의 집 3  
점등(點燈)을 꿈꾸다 
잠 안 오는 밤 
마음눈
눈 감고 눈뜨기 
풍경(風磬) 


2부

 

둥근 길

돌탑 옆에서 
파계사 가는 길 
몽돌꽃  
군위 삼존 석굴 
산다는 건 언제나  
나무의 말 
나무의 마음 
저 광대무변 
눈, 눈, 눈  
아득한 길 1 
아득한 길 2  
아득한 길 3  
아득한 길 4  
아득한 길 5 
산그늘 
산바람 
꿈, 부질없는 꿈 
아, 아직도 나는


3부

 

봄 길목  
영등날 
가혹한 복음  
봄 몸살  
봄비 소리 
복사꽃 봄밤  
벚꽃 위의 눈꽃  
비 갠 아침 
한여름 한낮 
한여름의 몽상 
가뭄
소나기 
장마, 맑게 갠 하루 
여름 숲 
이른 가을 
가을 강가에서 
가을저녁 숲 
저녁 강  9
조락(凋落) 
늦가을 아침 


4부

 

다시 칩거(蟄居)  
물거품 
어떤 포물선 
문이 나에게  
유리컵 
벌레 소리 
시간에게
근황 
끽연 
제자리걸음 
비몽사몽 
따스한 골목길 
평행선 -아우 생각 
맥문동(麥門冬) 
자작나무숲 -톨스토이 영지에서 
어떤 풍경 -코로보프 블라디미르 보리소비치에게
고향 가는 길
비가(悲歌) -또 아우 생각
시(詩)에게 


작품 해설 / 오생근
길과 침묵의 시학 


■ 작가 소개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 회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그림자의 그늘』,『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 『그의 집은 둥글다』, 『안동 시편』, 『내 마음의 풍란』,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회화나무 그늘』 등 시집 10권을 냈고, 육필시집(시선집) 『유등 연지』, 미술 산문집 『분지의 아틀리에』, 『천주교대구대교구 100년 가톨릭 문화 예술』등의 저서가 있다. 대구시문화상(문학),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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