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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김성춘의 詩의 발견] 저무는 강가에서 경북신문 2023. 11. 10(금)
아트코리아 | 조회 368
 경북신문  2023. 11. 10(금) 

[김성춘의 詩의 발견]   저무는 강가에서

시인 김성춘 gyeong7900@daum.net 입력 2023/11/09 17:34수정 2023.11.09 17:37
 
날이 저문다고 생각하다가
아침을 잉태한다고 생각을 바꾼다

어둠이 밀려온다고 썼다가는
달이 뜨고 별들이 뜬다고 고쳐 쓴다

알몸의 겨울나무들이 안쓰럽다가도
새 옷을 갈아입는 중이라 늠름해 보인다

오면 가게 마련이라는 무상감에 젖다가
가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등 돌리고 떠나간 사람을 원망하다 말고
왜 등을 돌리고 갔는지 생각해 본다

세상살이 새옹지마라고 슬퍼하다가
상선약수라는 말을 떠올린다

저무는 강을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태수, '저무는 강가에서'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언젠가 많은 것을 말해야 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 침묵해야 하고 언젠가 불을 붙여야 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 구름처럼 떠돌아야 한다"고.

세상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이 바뀌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성공하기도 하는 참 묘한 세상이다. 이태수의 시는 철학적인 사색이 깔려 있다. 삶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날이 저문다고 생각하다가 아침을 잉태한다고 생각을 바꾼다. 어둠이 밀려온다고 썼다가는 달이 뜨고 별이 뜬다고 고쳐 쓴다' '오면 가게 마련이라는 무상감에 젖다가/가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시가 언어의 마술적 표현이라고 말할 때, 시가 언어의 표현이지만 기교가 아니다 정신이다.

니체가 말했던가, "모든 글 가운데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고" 글을 쓰려면 피로 쓰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책을 읽는 자를 미워한다고.

'세상살이 새옹지마라고 슬퍼하다가/ 상선약수라는 말을 떠올리고/저무는 강을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강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태수의 시가, 저무는 한때에, 강물 같은 넉넉한 육성으로 반짝인다. 생은 '상선약수'라고, 아름다운 삶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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