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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꿈의 무늬를 삶에 새긴다 / OK NEWS / 2023.5.29
아트코리아 | 조회 694
꿈의 무늬를 삶에 새긴다

ㆍ등단 50년 이태수 시인 인터뷰
ㆍ5년 전부터 매년 시집을 출간


등단 50년을 맞아 새 시집을 펴낸 이태수 시인.   사진 제공=문학세계

 
이태수(76) 시인이 시력(詩歷) 50년을 맞아 스무 번째 시집 《유리벽 안팎》을 문학세계사에서 출간했다. 대구에서 활동 중인 이 시인은 지난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로 만 76세가 됐으니까, 76편의 시로 시집을 꾸몄다”라면서 “시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한테 흘러나오다 보니 시집을 내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시를 쓰면서 대구 매일신문 논설 주간까지 지낸 이 시인은 언론계 은퇴 이후 시작(詩作)과 예술 비평에 전념해왔다. 그는 지난 2018년 이후 해마다 시집을 냈다. 그는 이번 시집에 대해 “유리창을 ‘유리벽’으로 여기고 내면 성찰을 시도한 시를 모았다”라고 밝혔다. 시인은 ‘안과 밖을 갈라놓는 유리벽,/ 이 투명하지만 견고한 벽에 갇힌 나’라면서 면벽 수행(面壁修行)하듯이 생을 관조한 뒤 최근에 이르러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내 마음이 그 풍경 속으로 갔다 오고

돌아와서는 가는 것들을 따라간다

라고 노래했다. 유리창은 시인이 지닌 ‘인식의 틀’을 이미지로 구현하기 때문에 투명하지만, 그것을 경계로 자아와 세계가 갈리므로 때로는 견고한 벽이 된다. 시인은 오랜 세월 그 벽을 투시하면서 시를 써온 덕분에 벽 너머의 풍경 속으로 갔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해왔다. 시를 쓰면서 50년을 지낸 시인은 그러한 정신의 오랜 왕복운동으로 얻은 모든 것이 어느덧 세월의 저편으로 흘러가는 것을 감지하면서, 이제는 그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레 따라가는 자신을 깨닫는다.

시인은 “물방울처럼 우주 전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무위자연 또는 관조와 달관을 시로 담아보려고 했다”라면서 “자기 삶의 안팎을 바라보면서 성찰하는 과정에는 멈춤이 없다”라고 말했다. 시인은 삶의 안팎을 넘나드는 정신의 왕복운동을 ‘영감(靈感)’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날이면 날마다 밤낮으로 꿈꾸지만/ 악몽과 길몽이 길항하며/ 빚어내는 비의의 결과 무늬들같이’라는 것. 시인은 밤낮으로 꾸는 꿈의 숨은 의미를 삶에 문신처럼 새긴다는 것이다.

시인은 시집의 첫머리를 장식한 시 ‘바다 이불’을 통해 노을의 순간을 관조하면서 이미지의 무늬를 마음에 새겼다.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잠자는 동안은

달과 별들이 바다의 무늬,

바다와 해의 꿈결이라고 해도 될까.
 

이태수 시인의 시집 '유리벽 안팎'. 사진 제공=문학세계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조창환 시인은 76편의 수록작 중에서 시 ‘꽃 한 송이’를 절창으로 꼽았다.

마음 비운 자리에 꽃 한 송이 핀다

저 생명의 절정인 꽃,

비워서 차오르는 저 절정의 찰나를

처음이듯, 마지막이듯

깊이, 더 깊이 끌어당겨 그러안는다

이 찰나가 영원이듯,

영원이 바로 이 찰나이듯, 피어나는

절정의 꽃 한 송이

마음 내려놓은 자리에 그 꽃이 핀다

조창환 시인은 “이 시에서는 비움과 갖춤을 함께 지닌 영성적 정신의 깊이가 느껴지고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미학적 관찰의 섬세함이 느껴진다”라면서 “시인이 바라보는 꽃 한 송이는 그 생명의 절정이면서 그 절정의 찰나를 영원으로 승화시키는 절대적 아름다움의 환희가 있다”라고 풀이했다.

해마다 시집을 내면서 왕성하게 창작열을 불태우는 이태수 시인은 시 ‘술잔 속의 파도’를 통해 여전히 명정(酩酊)의 순간에도 시의 영감을 얻는다고 내비치기도 했다.

술잔을 비우고 다시 가득 채우면

밀려오는 그 원시의 말,

포말들이 또 춤을 춘다

술에 잔뜩 취해서 들여다보니

술잔 속 술이 바로 그 파도다

시인은 “제 시집을 읽은 시인들이 문자를 보내 ‘상상력이 나이가 들어도 역동적이라서 부럽다’라고 한다”라면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hhpark@oknews.news

출처 : 오케이뉴스(http://www.oknew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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