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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이태수 시인 열여덟번째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 출간 / 경북신문 2022.1.19
아트코리아 | 조회 453


이태수 시인 열여덟번째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 출간

‘실존·현실·초월’ 화두의 자아성찰
존재론적 구원 의지로 승화시켜





[경북신문=장성재기자] 등단 48년차 원로 이태수 시인의 열여덟번째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문학세계사)가 나왔다. 이 시집에는 ‘나의 카르마’, ‘길과 나3’, ‘다시 코로나에게’, ‘입 막고 코 막고-코로나 블루1’, ‘연꼭 갈피’, ‘목련나무, 산딸나무’, ‘어떤 여운’ 등 72편이 실렸다.
  이 시인은 이번 시집에 거친 세태 속에서 ‘실존·현실·초월’을 화두로 ‘길-흐름-비움’, ‘상처-자연-꿈’, ‘지상적 그리움-영적 그리움-구원’이라는 의미망을 떠올리며 담박하고 정갈하게 존재론적 구원 의지로 승화시킨다. 특히 황향한 세계에 던져진 실존의 처지와 그 고뇌를 형상화하면서 한결같이 꿈을 통한 존재 초월을 추구한다. 이 지향은 이성에서 영성으로, 지상적 삶에서 천상적 가치로 자아를 투영하며 존재의 부름에 대한 영혼의 응답으로 진전되고 있다.
  최근 들어 ‘거울이 나를 본다’, ‘내가 나에게’, ‘유리창 이쪽’, ‘꿈의 나라로’ 등의 시집을 해마다 내는 필력을 보여주는 그의 이번 시집에는 ‘길’을 모티프로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 자아의 근원에 천착하며 영혼의 목소리를 듣거나 내적 대화를 나누는 존재론적 몸짓이 두드러진다.
  “길을 가다가 왜 이 길로 가고 있지,/라고 스스로 묻게 될 때가 있다/멈춰서서는 가지 않으면 어쩔 테지,/라고 다시 되묻게 될 때도 있다/가려고 하는 곳이 분명히 있더라도/가다가 안 가고 싶을 때가 있다/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불현 듯/나도 몰래 가고 있을 때도 있다//내가 가는 길은 내 것이 아니라/길의 것일 따름이어서 그런 것일까/가고 싶거나 가고 싶지 않아도/길이 부르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지,/아무리 가고 싶은 곳이라 해도,/아무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일지라도/길이 나를 부르면 가야 하지만/불러 주지 않으면 못 가는 것일까//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 해도,/안 가고 싶은 곳으로 안 가려 해도,/길은 나를 부르다가 말고 그러다가/다시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길과 나 1’ 전문)


↑↑ 이태수 시인의 열여덟번째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


  아픔과 불안, 방황과 좌절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시인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통해 느끼는 존재의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도 ‘나’와 세계 사이에서 길의 부름에 응답한다. 이 부름은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심혼의 목소리며 본연의 자아로 회귀하려는 실존적 기투 행위이기도 하다.
  인간 소외와 단절감이 만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역병의 창궐은 인간관계를 더욱 차단하고 불신감마저 팽배하게 해 “사람과 사람은 이제/서로 못 믿어 멀어지는 사이입니다”(‘입막고 코 막고 코로나 블루 1’),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시달리다 지쳐/분노의 무기로 바뀐 이들도 있습니다”(‘코로나 레드’)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이런 악몽 속에서도 “잉걸불로 타오르는 비애마저도/깊이 그러안고 싶”은 포용력과 정신적 성숙성을 내비치며, ‘자연’을 통해 치유하려 한다.
  시인은 “깊은 산골짜기, 솔숲”(‘소나무 그늘’)에 들어 세상에서 짙게 드리운 “마음의 그늘들”을 씻어내며 위로를 받는가 하면, 그 자연은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던/바로 그 비단 자락”(‘은사시나무와 안개’)과도 같다고 노래한다.
  한편, 세상과 타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꿈’을 통해 초극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나의 카르마’에서는 “더 나은 삶을 향한 꿈꾸기와/가위누르는 꿈이 밤낮으로 길항”하지만 이 길항은 곧 반전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그 상처의 ‘그늘’에서 “세상의 말들이 빚어지고/가혹하게 지워지고 밀려나기”를 거듭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열망하”게 되며, 마침내 “이젠 밤낮없이 꿈을 꿉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새 희망으로 나아가는 꿈을 꾼다. 이같이 시인에게 꿈은 자아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존재론적 탐색 활동이며, 훼손된 자아를 빛의 바늘로 봉합하고 존재의 상승을 갈망하는 날갯짓이다.
  ‘날아오르는 꿈’에서는 “꿈을 깨고 나면 사방이 벽인데/여전히 벽 속에 갇혀서도” 꿈꾸며, 꿈속에서나마 “옥빛 하늘” 멀리 날아가 “몽매에도 그리던 천사를/잠시나마 가까이 만나”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꿈꾸기는 존재의 비약과 상승 의지의 표현이며, 삶의 새로운 길트기를 위한 몸짓이기도 하다.
  시인은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의 정조를 여러 편의 시에서 그려 보인다. 고향이 시인에게는 가장 순수한 존재의 원적지이자 자아의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시인의 지상적 그리움은 궁극적으로 영적 그리움으로 귀결된다. 시집 후반부에는 신앙시들을 다수 배치함으로써 시인은 자신의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의 삶도 결국은 이성적 가치에서 영성적 가치로 승화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으로 읽힌다. ‘낮은 기도’에서 그리고 있듯이 참사랑이 이끄는 길로 걸어가려 하는 도정에서 그는 “어떤 유혹에도 삿된 일은 하지 않으며/가지 말아야 할 길은 가지 않고/묵묵히 주어진 길로/물 흐르듯이 가려고”도 다짐한다.
  이진엽 시인은 이 시집의 해설에서 “그의 투망에 낚인 시들은 흐름과 비움, 상처와 치유, 꿈과 구원 등이 상응하는 진면목을 드러내며, 그 도정의 아픈 상흔 속에서도 영혼의 빛에 달궈진 돋을새김처럼 따뜻하게 떠오른다”며 “황량한 세계에 던져진 실존의 처지와 그 고뇌를 형상화하는 그의 시들은 한결같이 꿈을 통한 존재 초월로 나아간다”고 풀이했다. 또 “이 낮지만 그윽한 울림들은 시인이 이성에서 영성으로, 지상적 삶에서 천상적 가치로 자아를 투영하면서 존재의 부름에 대한 영혼의 응답을 진실하게 빚어 보이려 한다”고 평가했다.
  이태수 시인은 1947년 의성에서 태어나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대구시문화상,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상화시인상,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으며,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 회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정성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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