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8    업데이트: 23-12-13 15:49

언론 평론

머니투데이 2017.11.25. ‘인간은 허공에 떠도는 한 점 먼지’ 발췌
아트코리아 | 조회 287
머니투데이 2017.11.25.
‘인간은 허공에 떠도는 한 점 먼지’ 발췌
 
 
외딴 빈 집
 
이태수
 
한차례 스치고 간 게릴라성 비,
외딴집 마당가 낮은 쥐똥나무 울타리에
마른 쥐똥처럼 햇살이 반짝인다
 
그 아래는 이빨 빠진 개밥그릇 하나,
개는 마을로 바람 쐬러 갔는지
멧새들이 불어터진 밥알들을 쪼아 댄다
 
물 한 사발 얻어 마시러 들렀건만
아무도 없는 빈 집,
울타리 곁에 앉아 젖은 옷을 말린다
 
새들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한가로이 떠가는 구름 몇 점,
개 짖는 소리에 더욱 목이 마르다
― 시집 『따뜻한 적막』(문학세계사, 2016)
 
소나기가 다녀간 외딴집, 마당가 쥐똥나무 울타리, 이빨 빠진 개밥그릇, 개밥그릇에서 밥알을 쪼아 먹는 멧새들, 하늘에 한가로운 구름, 개 짖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이는 공간의 시다. 비가 온 후라 쥐똥나무 잎에 매달린 햇살이 쥐똥처럼 반짝인다. 시인은 이런 반짝이는 것에서 무상이라는 자연과 인생의 원리를 본다.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바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고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다. 인간의 근원을 묻는 사유방식이다.
사유의 결과 자신이 ‘허공의 점 하나’임을 인식한다. 길은 가도 가도 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고 해도 또 다른 산과 강이 기다리는 “아득한 무명”일 뿐이다. 실재로 가는 것 같지만 가는 게 아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우주 안의 일이다. 그러니 인간은 공활한 허공에 떠도는 한 점의 먼지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이다. 공광규 시인
 
*이태수 : 1947년 경북 의성 출생,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자유시> 동인. 시집 『그림자의 그늘』(1979), 『우울한 비상의 꿈』(1982), 『물 속의 푸른 방』(1986),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1990), 『꿈속의 사닥다리』(1993), 『그의 집은 둥글다』(1995), 『안동 시편』(1997), 『내 마음의 풍란』(1999),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회화나무 그늘』(2008), 『침묵의 푸른 이랑』(2012), 『침묵의 결』(2014), 『따뜻한 적막』(2016), 『거울이 나를 본다』(2018), 『내가 나에게』(2019), 『유리창 이쪽』(2020), 시선집 『먼 불빛』(2018), 육필시집 『유등 연지』(2012), 시론집 『여성시의 표정』(2016), 『대구 현대시의 지형도』(2016), 『성찰과 동경』(2017), 『응시와 관조』(2019), 등을 냈다.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 회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냄.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