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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서정적 서사, 질박한 휴머니티 —이무열 시집 『묵국수를 먹다』(문학세계사, 2019)
아트코리아 | 조회 480
서정적 서사, 질박한 휴머니티
—이무열 시집 『묵국수를 먹다』(문학세계사, 2019)
 
 
ⅰ) 이무열의 시는 서사적敍事的이면서 서정적抒情的이고, 서정적이면서도 서사적이다. 그의 서정적 자아는 주로 서사적 대상에 주어지며, 그 서사들은 어김없이 그 자아의 세례를 받으면서 ‘서정적 서사’로 빚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시에는 향토적, 토속적 정취가 물씬한 복고성향의 기억들과 떠도는 삶의 현실이 연계되고 있으며,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걸쭉한 해학諧謔과 희화화戱畵化에 사투리의 묘미가 포개지는가 하면, 한결같이 짙은 연민과 질박한 휴머니티가 관류하고 있다.
시인의 발길, 눈길과 마음눈이 가 닿는 곳은 그야말로 방방곡곡이며, 그 풍경들의 안과 밖에 다채로운 연결고리가 달려 있을 뿐 아니라 언제나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과 그 애환의 결과 무늬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 다양한 서사에는 또한 삶의 파토스들이 스미고 퍼져 흐르며, 허무와 무상감無常感, 애틋한 그리움의 정서들이 시인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질펀한 언어구사를 동반하고 있다.
 
ⅱ) 이무열의 글쓰기는 대개의 문인들과는 달리 산문에서 운문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소설을 썼던 그는 그 시기(1981)에 대학의 문학상 공모(영남대 천마문학상과 대구대 영광문학상)에 두 차례나 잇달아 입상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는 동화로 관심이 쏠리면서 《대구일보》의 대구문예(1996), 《매일신문》 신춘문예(1997)에 당선된 뒤 동화작가로 활동해왔고, 2010년 시전문지 《유심》의 신인 추천을 거쳐 시로 창작 영역을 넓히면서 시인으로 무게중심을 잡는 활약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세월 동안 그는 겸허謙虛하고 완만緩慢하면서도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해온 면모들이 산견된다. 동화를 쓰기 이전인 문학청년 때부터 은밀하게 시에 뜻을 두고, 이를 위한 담금질을 해온 사실을 그의 시가 말해준다. 소설에서 동화로 이행하는 과정의 심경도 뒷날의 시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오층 전탑을 배경으로 연꽃이 피었다
 
청련 홍련 백련 천상연 가시연 어리연
절정을 이룬 신문 보다가
권정생 선생 생각을 했다
 
언젠가 동화를 선보인 인연이 있는데
소설 쓴 사람 같다고
거친 표현 고치도록 해 당선시키셨지만
탑처럼, 감감
이십수 년 세월을 탕진하고 말았다
 
세상사 아득한 낭떠러지
동화 한 편 제대로 못 쓰고
어두운 물에서도 용서나 반성처럼 피는 꽃,
오래 앓고 난 뒷날처럼
조탑리 연꽃 공양하러 갈거나
—「조탑리 연꽃 」 전문
 
조탑리 전탑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연꽃들을 신문지상을 통해 보다가 그곳에 살았던 동화작가 권정생을 떠올린다. 등단 무렵 심사를 맡았던 그의 충고와 배려를 되새기면서 이십 몇 년을 동화 한 편 제대로 못 쓴 것 같다는 자괴감自愧感도 진솔하게 토로된다.
“어두운 물에서도 용서나 반성처럼 피는” 연꽃들과 그와는 거리가 멀게 “세상사 아득한 낭떠러지” 같았던 날들을 대비시키면서 그 연꽃들(권정생과 동화들로도 읽힘)을 공양供養하러 가보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 공양은 기실 “오래 앓고 난 뒷날처럼”이라는 수식을 받고 있듯, 오랜 세월이 그냥 ‘탕진蕩盡’만은 아니었다. 오래 앓았을 뿐 아니라 “용서나 반성”을 역설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지내는 홍승우 시인의 출판기념회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만 역시 자성自省으로 마음눈을 돌린다. “제 호주머니 털어 책 내고 신바람 나 공짜로 돌리면서 / 야, 오늘 장사 잘 된다 기분 참 조타!”(「마른 봄날」)고 그 풍경을 희화적으로 그리면서도 “목 매단 30년 시업 춥고 외로웠던 모양”이라고 연민을 끼얹지만, 그 시선은 이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이날 입때껏 책 한 권 펴내지도 못하고 / 명색이 신춘문예 출신 동화작가인 나는 / 갑자기 똥마려워 전전긍긍 / 마른하늘 별이라도 따고 싶은 봄날”(같은 시)이라고 쓴다. 이 같은 자책의 마음자리에는 안으로는 얼마나 치열하게 글쓰기를 열망해왔는지도 암시한다.
이런 자조自嘲와 자책自責은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을 때 또 다른 양상으로 번지면서 ‘낭패’라는 반어反語를 끌어들여 딴전(너스레)을 피우게도 한다. 쉰을 훌쩍 넘어 받은 신인 추천 소식에 “잠시 허청거렸던가 더듬거렸던가 / 맹독이 심장 쪽으로 스멀스멀 퍼지면서 / <중략> / 말이 궁색하던 오랜 병통 / 허물 벗으며 드러났다”(「낭패」)면서
 
이것 참, 낭패로구먼
무심하게 딴전 피워 보는데
이 보게 신인!
앞발 긴 이리[狼]와 뒷발 긴 이리[狽] 함께
업고 업혀야만 다닐 수 있다는 그 깊은 뜻 아는가
치명에 들리도록 서른 해
가뭇없이 허우적거리던 진창길에서 만난
우리 서로 낭패 볼 일만 남았다네
축하 축하함세!
이제 밤잠 설칠 일만 기다린다며
모르핀 같은 극약 처방이라고 낄낄거리는 이 누구신가
—「낭패」 부분
 
라는 익살로 자기희화화를 한다. 이는 완곡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날을 기다려온 서른 해가 치명致命에 들리도록 허우적거리던 진창길이었다면 이제 그 길을 벗어나게 되고 낭패 볼 일이 밤잠 설칠 일이더라도 극약처방이 됐다면 정진이 담보돼야겠지만, 일단 목숨이 끊어질 지경은 넘어서게 되지 않았는가. 이 같은 역설 속의 안도감과 새로운 마음가짐은 「난실이」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시마詩魔 들린 옛사람 누구는
시 짓느라 이빨이 다 빠지고 눈썹이 떨어져 나갔다는데
온갖 적요와 갖은 마음의 궁기와 세상살이 부끄러움 온전히 감당하지 못할 때
때로 비겁한 변명인 듯,
아니 막판에는 뜬소문에 홀린 것처럼
남몰래 숨겨둔 애첩 난실이 만나러 가곤 했다
 
아무도 모르리라
오십 줄 넘어 돈 안 되는 시인되어 끙끙 늦바람인 양 꿍꿍이속 감추었다가
장다리꽃 같은 수줍음, 깻단 같은 설렘 머금고
님 보고 온 듯 다시 씽씽해지곤 하던 내 얼굴을
 
<중략>
 
종종걸음으로 하늘거리는 꽃대 끝
난꽃 향기 품은
하늘의 말씀과 부지불식간 땅의 언약을
시시때때
총, 총, 총
오체투지로 받아쓰기 하고 싶은 것이다
—「난실이」부분
 
동화적인 발상에다 시니컬하면서도 구수한 수사의 옷을 입힌 이 시의, 앞부분 열네 행은 건너뛰어 그 부분의 서사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다소 아쉬우나, 인용한 부분만으로도 그 심경을 짚어볼 수 있다. 그의 시로서는 드물게 감성적感性的이고 감각적이면서도 시인으로서의 완강한 결의가 내비쳐져 있다.
시인은 “온갖 적요와 갖은 마음의 궁기와 세상살이 부끄러움 온전히 감당”하고 싶을 뿐 아니라 “남몰래 숨겨둔 애첩 난실이 만나러 가”듯 시에 빠져든다. 더구나 그 ‘늦바람’은 “장다리꽃 같은 수줍음, 깻단 같은 설램”으로 얼굴이 씽씽해지게 하는가 하면, 급기야 “애첩 난실이”가 “하늘거리는 꽃대 끝 / 난꽃 향기”로 환치되면서, 그 “향기 품은 / 하늘의 말씀과 부지불식간 땅의 언약을 / 시시때때 / 총, 총, 총 / 오체투지로 받아쓰기 하고 싶”다고 하는 말은 거듭 곱씹어 보게 한다.
시인은 이윽고 향기 그윽한 ‘하늘의 말씀’과 알게 모르게 ‘땅의 언약’을 한결같이 온몸으로 경건히 절하듯 받아쓰려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마음가짐도 자연 앞에서는 부끄러우며 무색해지는 건 역시 겸허한 마음자리 탓일 것이다. 채석강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저 책 짓는데 누구는 일만 년 걸렸다 하”(「채석강에서」)는 말에 마음 가져가면서는
 
젊은 날
하고많은 공수표
밀린 외상값,
벅찬 문장을 좇아 끙끙대던 일
나는 왜 바다의 빈손만 비비며
자꾸 딴전을 피우고 있는가
—「채석강에서」 부분
 
라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겸양지덕謙讓之德을 잊지 않는다. ‘하늘의 말씀’과 ‘땅의 언약’을 저버리지 않고 받들려면 언제나 이 같은 자성이 담보돼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시를 쓰면서는 그 길을 어떻게 나서며, 과연 어떤 자세로 시를 쓰고 있는 것일까.

내 홀로 어쩌자는 마련도 없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운주사 거쳐 유달산 지나 보길도까지
어기적어기적
세상의 끝이랴 싶던 그때가 언제던가
목숨은 마냥 서러웠다
어인 밤 기우뚱
섬 하나 지울 듯 파도는 쳐쌓는데
민박집 전등불 촉수가 낮거나 말거나
썼단 구겨버리고 다시 쓰며
밤새도록 버려지던 헛된 반성문이여
—「섬」 전문
 
이 짧은 시에서는 ‘지금․여기’에서의 떠돌이 행각行脚을 ‘최대공약수’로 떠올린다. 연 구분 없이 열한 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몸과 마음의 행로를 압축해서 보여줄 뿐 아니라 ‘시 쓰기=삶 자체’라는 등식으로 그 떠돎과 서러움(고난), 부단한 지향과 자성의 과정을 그려 보인다. 시인은 어떻게 하겠다는 작정도 없이 홀로 길을 나서지만, 산사山寺를 찾게 되고 바다 인근의 산을 지나 남도의 섬에 다다른다. 그 섬에서 밤을 맞으면서는 ‘섬’을 ‘나’와 ‘시’로, 다시 ‘삶=시’로 들여다보면서 반성적 자기성찰自己省察을 하게 된다.
하지만 화자(시인)의 이 길 나서기는 “어쩌자는 마련도” 없고, 어기적거리며 가는 떠돎의 연속이다. 게다가 “세상의 끝”이라는 절망이나 좌절감을 거쳤음에도 “마냥 서러”우며, 깃들어 머물게 된 곳도 밤새워 거센 파도가 치는 작은 섬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을 지울 듯 치는 파도와 민박집 전등불 촉수와는 아랑곳없이 반성문(시)을 밤새도록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시간에 놓인다.
이 대목은 시인이 바로 그런 정황 속에 놓인 ‘섬’에 다름 아니며, 시인의 삶(시 쓰기)이 홀로 “헛된 반성문”을 썼다 버리고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무상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숙명이 ‘시(시인)의 길’이라는 뉘앙스를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읽히게 한다.
 
ⅲ) 이무열의 시는 소설과 동화를 써온 작가답게 이야기가 담긴 서사를 바탕으로 동화적인 환상이나 상상력을 끌어들이고, 질펀한 서정적 자아가 투사投射되는 점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거슬러 오르며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추억들을 불러 모아 그에 걸맞은 사투리들을 포개놓음으로써 질박한 분위기도 고조된다. 더구나 이 와중에 그 중심에는 거의 어김없이 사람을 끌어들여 입김을 불어넣는 휴머니티가 관류한다.
시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성냥공장의 숱한 애환과 그리움의 정서들을 질박하고 해학적인 입담으로 풀어놓은 「다황을 긋다」에서 지난날의 시대상時代相과 화자의 추억을 불러 모으면서 “오늘은 유황냄새 피어오르던 그때처럼 / 따닥 따닥, 다황이든 당황이든 / 다시 못 올 낭만의 마찰판을 그어보고 싶다”고 그리는가 하면, 가고 오지 않는 옛날을 회상하는 「어떤 흐린 날」에는 “먹다 밀쳐둔 수제비 같은 / 유년의 운동장 가에는 / 분홍의 바람개비 저 혼자 돌아가”고 “아직도 국기 게양대 옆 미루나무 잎사귀는 / 저요 저요 선생님 저요! 잎잎이 눈부신데”라는 그리움의 환상이 마치 동화 속의 아련한 장면들처럼 펼쳐진다.
그의 언어구사는 돌이킬 수 없는 ‘당황’마저도 성냥을 켜듯 “낭만의 마찰판에 그어보고 싶다”거나 추억 속의 학교 운동장을 “먹다 밀쳐둔 수제비 같”고, ‘미루나무 잎사귀’를 ‘어린 학생’으로 바꿔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과 특유의 풋풋한 희화적 상상력을 대동한다.
그런가 하면, “너와 나 사이의 연분도 / 연분홍 봄길 혹은 밀물 드는 가을 강가에서 / 기우뚱 저물거나 / 온 발목 무장 젖어 흘러간 세월 같다”(「'사이'라는 말—K에게」)에서와 같이 언어(어휘)가 촉발하는 연상聯想과 낯선 비유를 통해 신선한 표현의 묘미를 돋운다. 이 같은 표현의 묘미는 “그리워라 애니로리 / 머나먼 스와니강 출렁거려 / 노랫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리 아라리로 엮는, / 산다는 일의 곡절 / 그 가쁜 숨결”(같은 시)과 같은 대목에 이르면 더욱 번득인다.
시인의 발길, 눈길과 마음눈이 닿는 곳은 그야말로 종횡무진縱橫無盡이다. 성악가 지망생이던 이창수(1921~2011)가 대구 도심을 전전하며 어렵사리 평생 꾸려온 국내 최초의 고전음악감상실 ‘녹향’ 이야기,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린 경기도 파주의 미군부대 풍경, 젊은 시절 회상에 삽입된 1998년 안동 고성 이씨 무덤에서 ‘원이 엄마’의 사랑 편지와 함께 출토된 미투리(마와 머리카락을 섞어 짠 신발) 애사哀史, 청도 한재미나리꽝이나 초등학생 시절 쥐잡기와 쥐갈비에 얽힌 슬픈 일화, 전남 곡성 오일장의 한 할머니 좌판과 대구 서문시장 열 뼘 가웃 외할머니 점방을 배경으로 한 질펀한 애환의 서사들은 삶의 풍경들을 다각적으로 희화화하면서 걸쭉한 입담과 해학으로 풀어놓은 경우다.
어디 그뿐인가. 이 같은 사례들을 열거하자면 가히 그 끝이 안 보일 정도다. 홍콩 마카오 성 바울 성당, 경남 남해 문항마을 개펄, 경북 영천의 거조암, 경남 산청의 심원사, 경북 영주의 무량수전,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 경남 하동의 쌍계사, 대구의 출판사 만인사와 파티마병원 장례식장, 경상감영공원 뒷길의 국숫집, 대경교통충전소, 동아백화점 수성점 앞 횡단도로변, 전남의 순천만, 경남 남해의 죽방렴, 경북 안동의 지례예술촌 앞 강변, 경기 부천의 현대요양병원 중환자실, 부인과 함께 경영하는 ‘박가분朴家粉’ 앞 난전 등도 삶의 다채로운 파토스들과 질펀한 추억들을 특유의 서사적 어법으로 떠올린다.
「녹향에 간다」에서 시인은 6․25 한국전쟁 피난 시절 ‘녹향’에 자주 드나들었던 이중섭, 박태준, 양명문, 유치환, 양주동 등의 당시 활동상(일화)과 64년간 1,510회나 열렸던 예육회 정기음악감상회 등을 더듬어 부각시키면서

녹향, 푸르른 세월의 향기를 품고
향촌동 남일동 사일동 포정동 동성로 화전동 옮겨 다녔건만
끝내 임대료도 못내 문 닫는단 풍문에
내 청춘의 18페이지 하단, 붉은 잉크로 밑줄 그어진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
죄 많던 어느 가을날의 눈물을 떠올렸거니
 
첫사랑 애뜯는 안부를 묻듯
개망초 술패랭이 하늘나리 쑥부쟁이 구절초의 노래
오선지 나달나달한 악보 같은 길 걸어 녹향에 간다
—「녹향에 간다」 부분
 
고, 그 “푸르른 세월의 향기”와 재정난으로 끝내 문을 닫게 된 ‘녹향’에서 듣던 음악이 “내 청춘의 18페이지 하단, 붉은 잉크로 밑줄 그어”질 정도로 절절했던 첫사랑 사연과 함께 되새기며 안타깝게 그리워하는가 하면, 애틋하고 오래된 추억의 길을 더듬어 찾아 나선다. (이 음악감상실은 현재 대구문학관 지하에 복원해 운영되고 있음)
“저벅저벅 코 큰 양코백이 쏼라 쏼라 걸어오는 거 자알 보인다”로 시작되는 「연풍리 가는 길」에서는 미군부대가 있던 파주의 풍경을 “한 됫박의 그리움과 설렘과 신열이 덕지덕지 껴묻은” 곳으로 그리면서 당시 모습을 특유의 걸쭉한 재담才談으로 되살려 보인다.
 
솜틀집 기계는 숨죽인 솜을 터느라 연신 툴툴 털털, 바께쓰 숯불에 달구어진 양철집 인두는 납땜을 하느라 푸시시식, 도르래 고장 난 왕대포집 판자 문짝은 삐딱하게 열리다 말다 덜컹 덜커더덩, 순댓국집 조선 솥뚜껑은 뿌연 수증기를 뱉어내며 연락부절로 스르렁 스렁, 불콰해진 강냉이 김 씨와 조선팔도 칼갈이 강 씨거나 운전수 털보의 따따부따 언성은 높아만 가고 오리궁둥이 주모는 뒤뚱뒤뚱 혼자 바빴다
 
아슴푸레하여라 이음매마다 총총 도려낸 깡통 뚜껑을 박아둔 루핑지붕에는 자글자글 햇살 녹아내리고 문득 끝 간 데 없이 장대비가 내렸다 부인상회 우리양행 파주목욕탕 나무 간판은 반나마 페인트칠이 벗겨진 채 건들거리고, 신영균 최무룡 황정순이 얼굴이 주름잡던 문화극장 옆 낡은 앰프는 신 프로가 들어올 때마다 진종일 왱왱거렸다
—「연풍리 가는 길」 부분
 
세월의 흐름에 묻힌 오래된 추억을 이같이 애틋하거나 질박하게 끌어당겨 그리는 시편들은 거의 부지기수다. 봄밤에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접하며 대학 시절 한 새내기와의 추억을 “꽃이 왔다”고 “먹먹하”게 떠올리는 「사월, 꽃이 왔다」는 그 그리움의 정서를 “못다 한 노래 잊힌 후렴구 같은 것”이라고 노래한다. 안동의 한 무덤에서 출토出土된 ‘원이 엄마’가 삼은 미투리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인유引喩해 “옛 여인의 머리카락짚신 같은 맹세”에 비유하는 발상이나 홍콩 마카오 성 바울 성당의 “첨탑에 걸려 웅얼거리는 / 그 옛날의 종소리에 오래 귀를 열면서”는
 
산다는 건 문득,
지지마꿈 등 기대고 서서 불러볼
화살기도 하나 바치고 싶은 것이려니…
—「시월에」 부분
 
라는 대목 역시 같은 맥락脈絡으로 보인다. “기돗발 좋다는 소문 듣”고 영천 거조암에 가서는 “세상에나! 영산전에 들자 앉은걸음으로 다가오는 것 있지요 / 똥기마이 할배가 키득키득, 김칫국 아재는 킥킥, 빼빼장구 당숙이 멀뚱멀뚱 / 웬걸 해파리 숙부님 둘레둘레 화등잔만 한 눈 치뜨는데요”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오백 나한五百羅漢을 향해
 
아재요, 탁배기 한 잔 자실랍니꺼?
사는 일 좀스럽고 짜잔해지는 이 노릇 우야만 좋겠는교?
<중략>
애오라지 곰삭은 절 한 채 품었다 뱉어놓는 일로
하루가 한 생이 저물도록
마 괘않타, 전부 괘않을 끼다
앉으나 서나 오백나한님은 다 알아주실 것만 같았지요
—「거조암 오백나한」 부분

와 같은 눙치기도 순전히 그만의 몫이 아닐 수 없다. 만인사(출판사)에서의 화투놀이를 통해 시인들의 캐릭터를 경상도 사투리로 희화화한 시에서는 “동양화 마흔여덟 장 요리조리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폈다 트집도 잡아 보고, 뜬 구름의 경전 패를 읽느라 도끼자루 썩어 나자빠질 토요일 봄밤”을 “시름을 달래보는 뷰티풀 선데이”(「만인사 1」) 로 그리지만, 이 역시 그 자리에 초대받아 “행장도 못 꾸린 맨발로 부르면 피바가지 쓰듯 불리가는 기 세상살이”(「만인사 2」)라는 비애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같은 파토스의 정서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엎드려 목어木魚를 바라보면서
 
오장육부 구석구석 비우도록
천수경인지 해탈경인지
차마 그 많은 독경 혼잣말로 다 삭인
목어는 어찌 그리 우렁우렁거리던지요
무량 무량
저, 헤아릴 수 없는 물소리로 흘러간 이름
백골단청 배흘림기둥이나 부여잡고 불러보는
탑 그늘은 오소소 깊고
무진장으로 우는 짐승 소리 오래오래 들렸습니다
—「물소리 무량하다」 부분
 
라는 경지로 승화昇華시켜 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온전히 천년을 견딘 고리비사리나무조차 사랑하다 끝내 앉거나 선 채로 죽어버릴 수도 있으려니 외로운 스님들, 쌍계사 구유가 되었다는 소식 어느 먼 바람결에 나부끼고 있었다”(「쌍계사 지나며」)거나, 부인사 요사채 앞마당의 낙엽을 주우며 “주장자로 때려줄까 보다 / 서둘러 얼굴을 가리고 / 안간힘으로 버티고 선 석탑 너머 / 천 년 전의 빗줄기 서서히 그치는가”(「지윤 노스님」)라는 무상감에로의 회귀에서도 자유롭지 않게 돼 버린다.

ⅳ) 시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視線은 기억(추억) 여행에 주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 그리움의 정서는 궁극적으로 허무와 무상감을 끌어안게 마련이다. 특히 사람들을 향해서는 흥건한 휴머니티를 바탕에 깔면서 짙은 연민을 끼얹거나 애틋한 그리움을 착색하는 양상을 띠고 있으며, 때로는 고향이나 자연 회귀의 빛깔을 띠기도 한다.
봄날 오후 한재미나리꽝에 가서는 어린 시절에 위암을 오래 앓아 수척한 큰 외숙부外叔父가 약으로 쓰게 하기 위해 외종과 함께 “미나리꽝에 부록같이 엉겨 붙던” 거머리를 잡던 기억들을 반추하는「봄날, 거머리 같은」, 약밥 싸 들고 모처럼 그 외갓집에 갔을 때 작은 외숙부모의 근황(노후생활)을
 
뭘 이런 걸 다 가져 왔냐
외숙모 연방 손사래 치시고
우물가 석류나무 볼그족족 잇바디 수줍게 드러났다
외삼촌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아파트 경비 일도 떨어지고
내외간 조곤조곤 얼굴이나 맞대고 있지 뭐
—「쭈뼛쭈뼛 석류나무」 부분
 
라고 담담하게 그려 보이는 「쭈뼛쭈뼛 석류나무」는 삶의 비애와 그 무상감을 연민의 휴머니티로 감싸 떠올리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동화책을 읽어주곤 하던 이모의 박복薄福한 삶과 죽음을 회상하며 동화 속에서처럼 “상아가 지천으로 쌓여 눈부신 곳 / 세상모르는 그런 곳”을 찾아갔기를 염원하는 「오래된 동화」, 열 뼘 가웃 비좁은 외할머니 점방에 들면 1원짜리 붉은 종이돈 하나 꼭 쥐어주던 기억을 더듬으며 그 돈으로 주전부리 함께 하던 “서울내기 다마네기 맛좋은 고래고기 날 놀려먹던 / 상고머리 땜통머리 도장밥 버짐 기계총 비루먹은 / 꼬찔찔이 동무들 다 어디 갔을까”라며 “그 보랏빛 향기와 풋것들”을 회상하는 「장터에 갔더란다」 등도 그 빛깔이 다소 다르게 연민과 그리움의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아버지의 입맛」은 군에서 휴가 왔을 때 중국집에 데려간 아버지가 “그날따라 입맛 없다며 / 세 젓가락 뜨고 내 앞으로 물리던 짜장면”도, 평소 식사 때 “머리는 내 주렴, 생선은 자고로 머리가 맛있는 기다!”라던 그 생선도 기실은 “갈고 심고 거두고 찧고 까불고 지져 나를 키워오신” 바 그 눈물겨운 배려였음을 반추하며 선친先親을 곡진히 기리는 마음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예전 여름날 저녁의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는
 
구불구불 말린 멍석 다 펼치기도 전에
들들들들 맷돌에는 되직하게 녹두가 갈리고
채 썰고 버무리고 기름 둘러 온갖 양념에 채소 돼지고기로 빚은
고스톱 판처럼 걸쩍지근한 녹두전과 막걸리 한 상을 차린다
오글오글 사촌 아니면 육촌 계집애들과 장맛비에 척척 감기는 손목 때리기 패를 돌리랴
외할머니 어깨 너머로 훔치던 신수보기 화투장을 떼어보랴
그 예전 젊은 어머니는
곰방대에 풍년초 쟁이고 연신 구름과자 피워 올리던 외할머니처럼
-목 맥히겄다 년석아 좀 천천히 묵어라
-논빼미 물 들어가고 자석 입에 밥 들어가 좋을래라
뭉게뭉게 자꾸 그런 군말을 털어내고 있는데
님 소식이나 돈 횡재 그런 패를 꿈꾸던 날은 굴뚝같은데
—「굴뚝같다」 부분
 
라고, 토속적인 정취 속의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생생하게 형상화形象化하면서 그 시절의 그 내리사랑의 농도를 그대로 착색해 보인다. 아파트 마당귀에 버려진 꽃나무 화분 보면서는 요양병원에서 “이젠 여가 내 집”이라며 치매 앓다 94세로 세상 떠난 장모 생각을 풀어 놓은 「여가 이젠 내 집이다」 역시 같은 맥락의 따스한 정한과 무상의 서정적 서사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가 하면, 「쥐덫 생각」은 코베이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쥐덧’에 착안, 아들이 몸 약해 밤눈 밝게 해준다고 “연탄불 석쇠 위에 기름기 좔좔 흐르던 쥐갈비”를 먹이던 “곱슬머리 옥니박이 최가네 철수 아버지”의 사랑법을, 한 시인(박곤걸)을 문상하는 지기(문인)들의 모습을 고인이 즐겨 가던 “춘자 아지매 국시집 / 먹다 남긴 국숫발마냥 / 맥짜가리 하나 없는 등신 어바리가 되어 / 모두들 한세상 개개풀린 낯빛"(「춘자싸롱 가고 싶다」)이라고 특유의 어법으로 형상화해 시인의 마음자리를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부인과 함께 경영하는 ‘박가분’ 매장 앞 텃밭머리에 난전을 편 세 할머니들이 오물오물 떡볶이 먹는 장면을 바라보며 “저승꽃에도 미소란 게 있다면 이런 때 만화방창 절창이겠다”는 「할머니들, 난전을 펴다」나 “머리 터져 뿌가 할매 박스도 못 줍고 오늘 박스 팔아 국밥 한 그릇 못 사묵꼬 결국 지가 박스처럼 구급차에 실려 가뿠는데……”라고 폐품주이 할머니 부상 이야기를 사투리의 묘미로 극대화한 「박스 이야기」는 또 어떤가.
외지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 같은 연민의 휴머니티는 월급 칠십만 원으로 불우한 아이들을 후원하는 게 유일한 보람이자 희망이었던 ‘철가방 아저씨’(중국집 배달부)가 뺑소니 차에 치어 죽은 뒤에도 장기 기증으로 보험금 사천만 원을 후원회에 남기고 쪽방 영정影幀사진 속에서 웃는 모습을 그린 「김수우 씨」에 이르면 그 절정에 이르듯 뜨겁기 그지없다.
하지만 눈을 안으로 돌리면 산다는 게 무상과 고해苦海, 허무와 고행苦行에 다름 아닐 따름이다. “사는 일, / 수수 백년 구부야구부구부가 열 두 고개”(「순천만 풍경」)라는 상두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질라래비훨훨 / 내 흘러온 길 뒤집히고 흐트러진 신발짝만 같다”(「노래나 한 곡」)는 자기희화화의 독백도 그런 빛깔을 묻히기는 한가지지만, 이 절절함은 그 초극과 초월을 향한 역설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시집의 표제시 「묵국수를 먹다」를 각별히 거듭 읽게 하는 까닭은 무얼까. 깊은 울림을 대동한 서정적 서사로 고단한 삶의 파토스를 진솔하면서도 절실하게 떠올릴 뿐 아니라 시인 특유의 질박한 언어구사와 그 묘미들이 이를 떠받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백년만의 폭설暴雪이 내린 먼 곳과 흩날리는 눈발로 질척거리는 시장통은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서도 시인이 가깝게 느끼며 떠도는 ‘하나의 현실’이며, ‘허기진 시간’과 ‘위로 받고 싶은 시간’이 함께 어우러진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허름하고 비좁은 난전 묵집의 주인 노부부와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설운 심사로 묵국수를 먹는 화자는 그 모습이 다르더라도 공동운명체共同運命體가 아닐 수 없으며, ‘분노와 용서’를 아우르며 살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이요 현실이긴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연신 메밀 솥을 휘젓고 묵을 치는 노부부의 모습과 묵국수 사발에 꾸역꾸역 고개를 쳐박는 화자의 모습은 그 빛깔이 다를지라도 목이 메도록 쓸쓸한 삶의 단면斷面이기는 한가지일 것이다. 다만 이 시에서 화자가 떠올리는 현실은 화자의 시선을 통한 현실의 결과 무늬들이며, 화자의 서정적 자아가 대상에 투사되거나 투영된 경우이기도 하다.
 
강원도에 백년만의 폭설 내린 날
질척거리는 불로시장을 어슬렁거렸다
식욕에도 무장 눈발 어룽진 얼룩 같은 것이 있다면
더러는 위로 받고 싶은 허기진 시간도 있어
묵밥, 묵국수 팝니다 허름한 현수막 펄럭이던 묵집에는
마지막 끼닛거리처럼 식탁이 달랑 두 개뿐
주인 할아버지는 끓는 메밀 솥을 주걱으로 연신 휘젓고
묵 치는 할머니의 등은 해거리 비탈밭처럼 꾸부정한데
답답하고도 설운 심사 달래듯
묵국수 사발에 꾸역꾸역 고개를 처박았다
십 년 넘게 꾸려온 화장품 점포를
무조건 비우라는 집주인의 건물인도 청구소송에
오늘은 어쩔 수 없는 답변서를 작성해야겠다
애꿎은 송사에 변호사도 사지 못한 자에게
때로 산다는 건 쓸쓸한 식탐처럼 자꾸 목이 메는 것이라서
귀때기 파랗게 질리는 난전 시장통을 돌아
지지눌러온 분노와 용서 사이
봉두난발로 분분한 눈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묵국수를 먹다」 전문

“식욕에도 무장 눈발 어룽진 얼룩”, “마지막 끼닛거리처럼 식탁이 달랑 두 개뿐”, “할머니의 등은 해거리 비탈밭처럼 꾸부정한데”, “쓸쓸한 식탐처럼 자꾸 목이 메는”, “귀때기 파랗게 질리는 난전”, “봉두난발로 분분한 눈길” 등의 표현이 특유의 시적 분위기를 북돋워주며, 시인의 걸쭉하고 질박한 체취體臭처럼 구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무열의 매력은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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