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8    업데이트: 23-12-13 15:49

언론 평론

2010 4 문화교양지 일하는 멋
아트코리아 | 조회 2,801

겨울과 봄 사이

이태수 시인의 글방을 다녀오다

글 김은주(수필가) 사진 일멋

 

비가 잦은 봄이다.

이르게 닿은 약속장소에서 우리는 잠시 진밭골을 헤맸다. 그러다 얼추 약속시간이 다 되어 갈 즈음 이태수 글방 앞으로 갔다. 약간은 도톰한 카키색 양복을 입은 그가 이미 계단 들머리에 나와 서 있었다. 금방 들이닥칠 객들을 기다리며 담배 한 모금 달게 피우는 중이었다. 반갑게 손을 내미는데 손목에 카우스버튼이 눈부시다. 순간에 풍기는 멋스러움이 예사롭지 않다. 양복의 각(角) 안에 이미 시(詩) 여러 줄이 내재해 있음이다. 좁은 상가 복도를 지나니 글방이 나타났다. 적당히 햇살이 배제된 복도 끝 방이다. 작업공간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싶다. 문을 여는 순간 와! 하는 탄성이 나올 만큼 글방은 완벽했다. 단 한 곳도 흐트러진 공간 없이 모든 사물이 제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조끼, 투톤이 나는 양복 앞에서 이미 깔끔한 성격임을 알아챘으나 잠시 후 서재에 꼽힌 책들을 손수 하나씩 찾아올 때는 그 완벽함에 짐짓 놀랐다.

 

 

 

 

 

일과 문학

작가 이태수는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를 열두 살에 여위므로 해서 마음이 채 영글기도 전에 맏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끌어안는다. 공부를 미루고라도 가장 노릇을 해야 했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이나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대학시절에 이미 천마문학상도 받았다. 대학졸업 후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그해 매일신문사에 입사하게 된다. 신문사 일을 하는 내내 그는 문화부 쪽 일만 고수했다.

“문화부에서 다른 부서로 보내면 일을 그만두려고까지 했어”

시(詩)를 놓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가 아닐까 생각됐다. 일과 문학을 병행하기 위해 그는 그렇게 바쁜 신문사 일을 하면서도 시(詩)가까이 가려고 안간힘을 쓴 것 같다. 그런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계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가진 문화예술계의 대부였다.

그는 197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해 문단에 첫발을 내딛는다. 1976년 이하석, 이기철, 이동순, 박해수 등과 자유시 동인을 결성한다. 훗날 ‘반시’ 동인과 함께 70년대 대구 문단을 대표하는 동인으로 부상한다.

그의 첫 시집은 1979년에 나온 <그림자 그늘>이다. 그림자 그늘은 제목이 암시 하는 바와 같이 일상 안에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으로 표류하는 현실적 자아인 그림자와 현실을 제어하지 못한 채 어두운 그림자에 이끌려 방황을 거듭하는 내면의 모습인 그늘을 서로 교차시켜 잃어버린 나를 노래했다.

두 번째 시집 <우울한 비상>에서 시인은 “꿈에게 퍼덕이는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암울한 현실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미래를 향한 꿈은 버리지 않는다. 매번 절망하면서도 그 절망을 넘어서려는 완강한 몸짓이 실존적 이미지에 상승효과를 부여한다.

세 번째 시집인 <물속의 푸른 방>에서는 이전의 암울이 다소 밝은 빛을 얻는다. 비록 현실은 추하고 불순하지만 그 깊숙한 내면에서 명징한 순결을 길어 올린다. 이전의 시가 비상을 꿈꾸었다면 이 시집을 깃 점으로 하강의 이미지로 방향전환이 이루어진다. 이 시집은 역설에 묘미가 있다.

90년<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93년<꿈속에 사닥다리>95년<그의 집은 둥글다>97년<안동시편>99년<내 마음의 풍란>2004년<이슬방울 또는 얼음꽃>을 내면서

그의 시 중심에 늘 꿈과 그늘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꿈을 꾼다, 즐거운 꿈을 꿀 때도 있지만 가위눌림의 괴로운 꿈도 꾼다. 꿈을 꾸고 그것을 지우며 다시 꿈을 꾸는 과정에서 꿈은 그의 시 쓰기의 원동력이 된다.

서른아홉 되던 해에 대구시문화상을 수상했고 86년에 동서 문학상, 2000년에 카톨릭문학상, 2005년에 천상병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대구대 경일대 대구 한의대 경주문예대학에 출강 중이다.

 

겨울과 봄 사이

그의 시 세계를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는 가장 최근에 나온 시집 <회화나무 그늘>을 한 권씩 나누어 준다. 손수 서명까지 해 우리 손에 들려주며 아우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아우의 이름을 내가 지어 주었어요.”

부모 맏잡이로 그는 아우에 대한 정이 형제간의 우애가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사랑처럼 깊게 느껴진다. 전형적인 한국의 맏이다. 화화나무 시집 제 3부에는 먼저 보낸 아우에 대한 사랑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시의 행간에서 울컥 목이 메이는 곳이 많다. 아우의 첫걸음, 맑던 눈빛, 주거니 받던 술잔. 그의 기억안의 아우는 아직 숨을 쉰다.

 

                                            

 

첫 시집에서의 그늘이 최근시집 회화나무 그늘과 교차하면서 내면의 그늘이 자연의 그늘로 걸어 나왔다. 햇살 아래서의 그늘은 이미 그늘이 아니다. 두껍기 그지없는 그늘이기는 하나 그 안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따뜻한 저녁상을 앞에 두고 그는 말한다.

“나는 겨울과 봄 사이가 너무 좋아요. 벚나무나 목련이 막 봉우리를 밀어 올리는데 그 위에 잔설이 분분히 내릴 때, 딱 고 계절이 좋아요. 새싹위에 쌓인 눈을 볼 때 ”

계절의 사이를 읽어 내는 그의 감성이 환하다. 봄인 듯 쌀쌀한 날씨를 따뜻이 녹이는 말이다.

젊어서는 가을을 좋아했지만 그것도 바뀌더라는 그의 말에 세월이 묻어난다.

“색깔은 보라색을 좋아해요.”

시인다운 색이다. 그 말을 할 때는 잠시 아이 같은 눈빛이 된다. 약주 한잔에 흥취가 오른 일행이 그의 시 한 수를 낭송한다.

 

마음 가는 길로만

 

너무 오래 떠돈 걸까, 구불구불하고

떠내려가거나 떠밀려 다니던 길,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하고,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던 길들이 엉켜 있는 쳇바퀴를

뛰어내렸다. 어느 봄날, 눈 딱 감고

 

떠밀려서, 어쩌면 떠밀리도록 내버려뒀던

길을 접었다. 보기 싫은 건 안 보려고,

뒤통수치는 몇몇 검은 손이 싫어

늦을 때가 빠를 수도 있다는 말을 믿으며

구차스런 밥그릇을 던져버렸다. 설령

 

멀건 죽그릇 안에 달이 뜨더라도.

오직 한 길, 가고 싶은 길을 가기로 했다.

미련하게, 때로는 미친 듯이, 고집스럽게

더 이상 안 가고 싶은 길을 가지 않기로 했다.

오래 꿈꿔온 길로만 가기로 했다.

_중략_

 

“담배를 줄여야겠어요.”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줄였어”

우리가 하는 염려를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시(詩)와 술 그리고 담배는 그의 버릴 수 없는 위안이었지만 이제 몸을 생각하는 나이가 됐다.

“시간의 여백이 많으니 시 작업은 일할 때 보다 나아. 가끔은 늦잠도 즐긴다니까?

그의 말에 평화로움이 깃든다.

평생 새벽잠을 물리치고 뛰어야 했던 신문사 일을 접고 그는 잠시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섰다. 일속에서 출렁이던 우물이 이제 고요해 졌다. 그 고요함 속으로 용지골의 바람이 드나들고 어린 손자의 재롱이 들어찬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바쁜 쳇바퀴에서 뛰어내린 그는 어두울수록 영롱한 자신만의 오솔길을 간다. 조금 쓸쓸하더라도 마음 가는 길로만 가기로 했다고 그는 시(詩)의 말미에 다짐을 한다.

그 다짐이 봄밤을 가른다. 돌아오는 밤길이 때 없이 살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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