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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마음이 머무는 詩 / 천지일보 2020. 3. 22
아트코리아 | 조회 202
산문(山門) 점묘
 
이태수(1947 ~  )
 
햇살 노곤한 산문의 봄날
낯선 새 한 마리 낮게 지저귄다
암자 바깥의 노송 그늘에
두 뺨이 발그레한 사미승이 앉아 있다
졸고 있는지
서러운 건지
꿈을 꾸는지
산마루에 한가로이 걸린 구름 한 자락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걸까
노스님의 독경 소리가 나지막이
새소리에 포개지고 있다
 


[시평]
봄은 흔히 춘곤증(春困症)과 함께 하는, 노곤한 계절이라고 말들을 한다. 왜 노곤할까. 아마도 햇살이 따스하고 또 기후가 포근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가 하면, 엄동(嚴冬)의 긴장이 풀리고, 그래서 잔뜩 추위 속 움켜잡았던 마음의 끈을 슬그머니 놓으면서, 봄기운과 함께 노곤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봄이 되면 유독이 많은 새들이 지저귄다. 아마도 봄을 맞아 짝을 찾기 때문이리라. 노곤한 봄날 아무도 오지 않는 산문(山門)에 앉아 졸 듯 말 듯, 새들의 지저귐이나 듣는다는 것, 참으로 봄날의 한 폭 그림 같은 정취가 아닐 수 없다.
암자 밖 노송 그늘에 앉아 있는 사미승, 출가한지도 얼마 되지를 않아, 그래서 산 생활에 아직 익숙하지도 못하고, 스님들이 매일 같이 행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인 선(禪)과 독경(讀經)에는 많이 미숙하리라. 그래서 봄날의 노곤함 어쩜 사미승에게는 더 많이 엄습하리라.
두 뺨이 발그레한 아직 나이 어린 사미승 졸고 있는 건지, 서러운 건지, 꿈을 꾸는 건지, 산마루에 한가로이 걸린 구름 한 자락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건지. 다만 무심히 앉아 있다. 이 한가로운 산사 풍경 속, 은은히 퍼지는 노스님의 독경 소리, 그리고 이 소리와 나지막이 지저귀는 새소리가 포개지는 산문의 봄날, 어쩌면 저 사바(娑婆)를 교화하고자 하는 독경 소리보다도 더 한가로운 평화의 모습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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