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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대구에서 띄운 편지] 더디게라도 새 봄이 오리라 믿습니다_한국일보 2020.03.06
아트코리아 | 조회 245
오는 봄을 잘 전해 받았습니다/ 사진으로 맞이할 게 아니라/ 달려가 맞이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질 나쁜 바이러스 때문에 그럴 수가 없군요/ 사진 속의 눈새기꽃에 가슴 비비고/ 너도바람꽃에 마음을 끼얹고 있습니다/ 이곳은 지금 창살 없는 감옥/ 육지에 떠 있는 섬 같습니다/ 노루꽃, 꿩의바람꽃, 현호색을/ 데리고 오시겠다는 마음만 받겠습니다/ 안 보아도 벌써 느껴지고 보입니다/ 소백산 자락에 봄이 오고 있듯이 멀지 않아 /이곳에도 봄이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너도바람꽃이 전하는 말과/ 눈새기꽃 말에 귀 기울입니다

당신은 괜찮으냐고, 몸조심 하라고/ 안부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그런 문자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어서/ 고맙기는 해도 되레 기분이 야릇해집니다/ 이곳이 왜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집니다/ 마스크 쓰고 먼 하늘을 쳐다봅니다

오늘도 몇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날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억장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그 끝이 보일 때가 오겠지요/ 더디게라도 새봄이 오기는 올 테지요

며칠 전, 소백산 가까운 곳에 사는 한 지기가 인편으로 봄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야생화들을 사진에 담아 보내기에 그때의 심경을 진솔하게 쓴 자작시(‘봄 전갈—대구 통신’)다. 그 지기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곳곳에서 위로의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적잖이 보내온다. ‘힘내라’는 내용이지만, 대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괴감과 비애를 비켜서지 못하게도 한다.

서글프고 비통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가 격리’나 다름없는 칩거생활을 하다시피 한다. 가까스로 의지해야 하는 마스크마저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아우성들이다. 상점에 물건 사러 가는 건 물론이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문을 여닫을 때마저 두려워한다. 기침을 하는 사람을 피해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과 마주치기조차 꺼려한다. 상가는 문을 닫았거나 열어도 개점휴업이다. 사람은 살고 있으되 거리는 텅텅 비어 유령도시를 방불케한다. 게다가 어디로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타지 사람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경원시하기까지 한다.

어떤 이는 ‘정부의 리더십 부재와 무능이 코로나 19를 대재앙으로 키웠다’며 가혹한 피해를 입고 있는 대구 사람들에게 일부 친여ㆍ친정부 인사들이 망언으로 대못을 박아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고 흥분한다. 하지만 대구 사람들은 이제 이 공포의 도가니에서도 정부와 신천지를 탓하고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조심하고 격리하며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희생적인 헌신을 하다가 과로로 쓰러지는 의료진과 공무원들, 방역 협조에 미적대는 특정 종교집단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안타깝게 애태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대구시의사회(회장 이성구) 호소 이후 대구ㆍ경북뿐 아니라 전국에서 수백 명의 의사, 간호사들이 대구로 달려와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 나 늘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지만 우리는 이 미증유의 고통스러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 방역을 위해 과잉일 정도로 위기에 철저히 대응하고, 포비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모든 시민이 합심해 노력 중이다.

대구를 향한 무분별한 혐오나 두려움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코로나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대구 시민과 의료진을 향한 응원과 지지의 목소리가 전해진다면, 안팎의 협심으로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구에도 반드시 도착할 새봄을 기다리는 이 마음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이태수 시인
1947년 경북 의성 출생
1974년 현대문학 등단
대구시인협회장 역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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