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8    업데이트: 23-12-13 15:49

언론 평론

202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아트코리아 | 조회 389
202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시 심사평
꽃 핀 산수유 매개로 자연 변화 따른 삶의 이치 일깨워
 
 
본심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최종까지 논의된 시는 김지영 씨의 「간기 벤, 교차로」, 김은 씨의 「태양을 가동하는 방법」, 최란주 씨의 「남쪽의 집 수리」 등 세 편이었다.
「간기 벤, 교차로」는 남해섬 일대의 땅과 바다에 깃든 삶의 욕망과 열망을 차분한 어조로 그리고 있다. 특히 계단식 논이 많은 다랑이 마을의 풍광에서 삶의 그늘과 쇠락한 시간의 주름을 읽어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일부 언어가 평이하고 관념적인 사변의 진술로 치우쳐 시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태양을 가동하는 방법」은 역동적인 언어와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는 검은 폐유를 닮은 그림자들이 흘러나왔다”는 시구 같은, 현대 도시 문명의 음울함을 가리키는 선명한 이미지도 여럿 눈에 띄었다. 같이 응모한 작품들도 안정되고 개성이 두드러졌지만, 시에 힘이 너무 들어가 경직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지켜보며 다음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었다.
「남쪽의 집 수리」는 눈에 번쩍 띄는 시였다. 꽃핀 산수유나무를 매개로, 자연과 계절의 변화과 순환에 따른 삶의 이치를 시로 넌지시 일깨우고 있다. 봄이 오면 저절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산수유나무도 ‘집 수리’라는 부단한 자기 삶의 갱신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 꽃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거렸다.”라고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삶의 시차와 간극을 좁힐 수도 없고 매양 어긋나기만 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화를 체감하면서도, 북상하는 꽃소식에 귀 기울이며 봄이 오는 길목 어디쯤에서 자기 나름의 ‘남쪽의 집 수리’에 골몰하는 인간살이를 적실한 언어로 표현했다. 요란한 시적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도 시의 깊이와 무게를 확보한 좋은 예이다.
최란주 씨의 다른 작품들의 수준도 고르고 높아 치열한 습작의 모습이 엿보였으며,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아도 신뢰할 만했다. 주저 없는 의견일치로 「남쪽의 집 수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이태수 시인, 송찬호 시인
 
 
 
 
 
남쪽의 집 수리
 
 
최란주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
꽃 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거렸다.
그때 산수유나무에는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가 있다.
얼어있던 날씨의 아랫목을 찾아다니는 삼월,
나비와 귀뚜라미를 놓고 망설인다.
봄날의 아랫목은 두 폭의 날개가 있고
가을날의 아랫목은 두 개의 안테나와 청기聽器가 있다.
뱀을 방안에 까는 것은 어떠냐고
수리업자는 나뭇가지를 들추고 물어왔지만
갈라진 한여름 꿈은 꾸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오고 가는 말들에 시차가 있다.
그 사이 표준 온도차는 5도쯤 북상해 있다.
천둥과 번개 사이의 간극,
스며든 빗물과 곰팡이의 벽화가
문짝을 7도쯤 비틀어지게 한다.
북상하는 꽃소식으로 견적서를 쓰고
문 열려있는 기간으로 송금을 하기로 한다.
꽃들의 시차가 매실 속으로 이를 악물고 든다.
중부지방의 방식으로 남쪽의 집 수리를 부탁하고 보니
내가 들어가 살 집이 아니었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서 계약이 성립된다.
산수유 꽃나무가 화르르
허물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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