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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조선일보 2016. 8. 15 기사
아트코리아 | 조회 1,091

"詩의 도시 대구, 시인만 700명 넘죠"

 

고희 맞아 열세 번째 시집 펴낸 대구 詩壇의 좌장 이태수 시인   


2년간 일기처럼 쓴 시편 모아… 40년 넘게 詩作 활동
"나이 들어 찾아온 '적막' 탐구" 문학도서관 '이태수 글방'도 꾸며

"요즘 시단(詩壇)에선 나이 80세는 넘어야 원로 대접을 받는다. 70대는 중진(重鎭)이라고나 할까. 아, 세월이 벌써 그리 흘렀나."

대구에서 40년 넘게 시작(詩作) 활동을 펼쳐온 이태수 시인이 올해 고희(古稀)를 맞아 열세 번째 시집 '따뜻한 적막'(문학세계사)과 시론집 '대구 현대시의 지형도'(만인사)를 잇달아 냈다. 그는 "대구는 예부터 시문(詩文)을 숭상해온 '시의 도시'이고 현재 시인이 700명쯤 된다"라며 "민중 문학보다는 자유주의 문학의 전통이 더 강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가 펴낸 시론집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가 1922년 선도한 대구 현대시사(史)를 조감하고, 지난 90여 년 동안 활동한 주요 시인 500여 명의 시 세계를 요약했다. 일제강점기의 이상화와 이장희·이육사, 해방 공간의 박목월과 조지훈, 1950년대 이후 김춘수와 신동집이 이끈 대구의 시문학사는 1970년대 이후 이태수를 비롯해 이하석, 문인수, 정호승, 이성복, 박덕규, 안도현, 장정일, 송재학, 장옥관, 엄원태 등으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이태수 시인은 문학과지성사에서만 시집 10권을 냈고 대구시인협회장을 지냈다. 대구 매일신문 문화부 기자로 시작해 논설주간으로 정년을 마칠 때까지 음악·미술·무용 평론도 썼기에 '대구 문화예술계의 대부(代父)'로 꼽힌다. 그는 "대구는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성악가만 300명 넘게 있을 정도로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라며 "내 시 중 50편이 가곡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대구 시단(詩壇)의 좌장으로 꼽히는 이태수 시인. 40년 넘게 묵은 문예지를 비롯해 책 1만여 권으로 집필실 ‘이태수 글방’을 꾸몄다. /김종호 기자

이태수 시인이 대구 수성구에 마련한 집필실 '이태수 글방'은 60㎡(18평) 크기에 책 1만권을 소장한 문학 도서관이다. 요즘 공립도서관에서도 찾기 어려운 1970년대 문예지와 절판된 문학예술 이론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거나 쌓여 있다. 그는 "햇병아리 기자 시절부터 모은 책들 중에서 많이 버렸는데도 이만큼 남아 있고, 새 책도 자꾸 쌓인다"고 말했다.

그의 신작 시집 '따뜻한 적막'은 지난 2년 동안 일기처럼 쓴 시편들을 모았다. '적막'을 주제로 한 시집이다. '적막이 적막을 껴입고 또 껴입으면/ 혼자 그 적막을 지그시 눌러 앉히곤 한다/ 눌러 앉혀 다독이면/ 그윽하게 따뜻해지는 적막이 좋다/ 나 홀로, 늘 혼자라는 생각을 하면서'('요즘은 나 홀로' 부분).

그의 '적막' 탐구는 끊임없는 시적(詩的) 변화의 산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엔 실존주의 철학 영향을 받아 존재의 '그늘'에 대해 썼고, 존재의 상승과 하강이 '교차'하는 것을 다루기도 했고, 이어서 신과 인간의 중간 존재인 '그'를 탐구했다"며 "2010년 이후엔 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과 '침묵의 결'을 통해 침묵이 모든 것의 근원이란 생각을 다듬었다"고 풀이했다. 이제 '침묵'에서 '적막'으로 화두(話頭)를 바꾼 시인은 "나이가 드니까 쓸쓸하고 고독해지는 시간이 많아진다"며 모든 것이 허공 깊숙이,아득히 죄다 떠나가는 가운데 내 마음속에서도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 게 많아진다"고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 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는 시행을 배치했다. 그는 "이 조촐한 시집을 마음이 가난하고 적막한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대구=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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