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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인연 .15] 구본숙 현대무용가와 이태수 시인 2014-10-07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1,319

구 무용가와 이 시인이 이 시인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태수 시인(왼쪽)의 사무실 옆 커피숍에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시인과 현대무용가 구본숙씨. 마치 오누이가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구 무용가와 이 시인이 구씨가 2006년 펴낸 자서전을 보며 그들이 작업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구본숙

“대구서 첫 무용발표회 때

명성만 듣고 李 시인 찾아가

대본 등 공연 전반 도움받아

그후 10편 이상 함께 작업

상대방 배려하는 성품

항상 고맙고 감사하지요”

 

◆ 이태수

“열정 넘치는 춤꾼 具 무용가

무대선 남자 못잖은 카리스마

탁월한 안무력·실험정신

독선과 강한 고집보다는

조언 귀담아 듣는 자세 장점”

 

 

구본숙 현대무용가(68)와 이태수 시인(67)은 대구를 넘어서 한국 문화계를 대표할만한 지역출신의 예술가다. 40년 가까이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이 시인의 사무실을 찾은 날, 구씨가 약속시간을 5분쯤 지나 도착했다. 사무실로 들어서며 “안녕하십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구씨를 향해 이 시인은 “언니, 별로 안늦었는데요”라며 답한다.

 

이 시인의 ‘언니’라는 호칭에 기자가 약간 놀란듯한 표정을 짓자, 이 시인은 기자를 향해 “나보다 한살 많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언니라고 부르지요”라고 말했다. 가까이 온 구씨를 이 시인은 가볍게 포옹까지 한다. 그 포옹에 구씨는 환한 웃음으로 답한다. 전혀 어색한 몸짓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만나서일까. 이들은 처음 만난 해가 언제인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1975~76년쯤 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하지만 이 시인은 구씨의 첫인상만은 뚜렷하게 기억했다.

 

“처음 본 언니의 모습은 수줍은 소녀 같았습니다. 20대 후반이었으나 일상 속에서의 자기 표현이 마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처럼 순진무구하다고나 할까요. 대화 도중 가끔 얼굴을 붉히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그 수줍은 소녀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구씨는 1976년 대구시민회관에서 공연한 자신의 첫 무용발표회 때문에 그를 찾았다.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무용공부를 했던터라 고향에서의 첫 무용발표회를 진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철철 넘쳤다. 그래서 공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는데도 시인이자 신문기자였던 이 시인을 찾아나섰다. 생면부지의 그를 명성 하나 듣고 찾아나선 것이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구씨는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구씨는 이 시인을 자신의 작품 대본을 써주신 분이라고 소개했지만 이들이 처음 만났을 당시만 해도 무용대본이라는 개념조차 불명확했기 때문에 이 시인이 구씨의 첫 공연 전체 기획 및 연출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연 전반에 걸쳐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예술가들은 자기 주장이 강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저는 무용밖에 모르기 때문에 저와 다른 시각을 가진 분이 공연을 이끌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분야까지 아우를 수 있어 좀더 색다른 공연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첫 무용발표회는 성공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현대무용이라는 것이 지역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구씨의 작품은 대구시민에게 현대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공연에 도움을 줬던 이 시인도 만족감을 드러내고, 구씨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도 됐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늘 수줍어하며 말 한마디 할때도 조심하던 언니가 무대에 서니 전혀 다른 모습이더군요. 억제됐거나 자제됐던 열정이 춤속에서 뜨거울 정도로 분출되는가하면, 남자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보여줬습니다. 진실된 마음을 지닌 인간 구본숙에서 열정이 넘치는 예술가 구본숙의 실체를 제대로 볼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됐던 예술적 유대관계는 그 이후에도 쭉 이어져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공동작업한 작품이 몇개가 되느냐고 묻자 두 사람 모두 정확히 잘 모르겠다며 하여튼 꾸준히 작업해왔다는 말만 거듭했다. 그들은 최소 10편 이상 함께 작업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같이 많은 작업을 같이 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구씨는 이 시인의 배려하는 마음을 꼽았다.

 

“이 시인은 지역예술계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작업세계를 구축해오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제 작업을 도와줄 때는 자신의 색깔을 없애버리지요. 저도 같은 예술가이지만 자신의 색을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이 시인의 배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시인도 왜 작품에서 자신의 색깔을 내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시인은 구씨의 공연에 있어서 자신은 단지 도움자일뿐이라는 생각을 늘 놓지 않았다. 개성이 강한 예술인, 그리고 이 개성으로 자신의 색깔을 만들고 작품세계를 발전시켜가는 예술인이 자신의 색깔을 죽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다른 이들과 공동작업을 할 때 이 시인은 자신의 역할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해왔다. 이 시인은 이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과 공동작업을 하고 소통해올 수 있었다는 말도 했다.

 

“공동작업을 하는데 있어 한 사람의 개성이 두드러지면 결국 그 작품은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작가의 아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작업은 예술인 각자의 작업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힘을 합침으로써 좀더 발전된 작품을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류가 되면 이는 발전이 아닌 퇴보가 되는 것이지요.”

 

이쯤에서 이 시인은 구씨의 장점 한가지를 이야기했다. 구씨 역시 일반 예술가들이 범하기 쉬운, 어찌보면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강한 고집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래서 소통을 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구씨의 경우 이화여대 무용학과와 경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프랑스, 미국 등에서 무용공부를 하고 영남대 교수로 수많은 후진을 양성했다. 1980년대 말부터 대구시립무용단의 상임안무자도 맡아 10여년간 무용단을 이끌어왔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안무가로서의 개성과 독창성을 공연을 통해 확실히 보여주면서도 다른 사람의 견해나 조언에 늘 귀 기울이는 자세를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그의 장점이고,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이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공과 거리가 먼 제게 수시로 제자들과의 연습장면을 보여주고 조언을 요청하기도 했으니까요.”

 

이 시인은 구씨가 대구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로 활동할때 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에도 대본작가로 몇번 참여했다. 이 시인은 특히 1992년 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 작품 ‘그를 기다리며’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3부로 구성된 창작무용작품의 대본이었는데, 무대에 오른 그의 작품이 예상을 넘어서는 그의 빛깔들로 충만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무용은 안무의 예술이며, 안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느끼게 됐습니다.”

 

이 시인은 구씨의 탁월한 안무력은 대본 이상의 새 문법을 만들어 보려는 실험 정신, 그 위에 자유롭게 겹쳐놓은 특유의 상상력에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시인의 말에 이어 구씨는 자신의 작품이 갖는 특징을 설명했다. 큰 특징은 서구에서 건너온 현대무용을 한국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대무용의 흐름은 최근에는 많이 보편화돼 있지만 구씨가 이같은 생각을 갖고 이를 작품화하기 시작한 90년대에는 실험적 사고였다.

 

“서양에 토대를 둔 것을 한국적으로 바꾼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현대무용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고, 국제무용계에서도 한국무용이 자리잡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침 대구시립무용단 안무자로 있어서 이런 시도를 좀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환경에 이 시인 같은 좋은 대본가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줘 저의 목표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구씨는 이 시인에게 매우 감사한다는 말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본가, 연출가 등으로 참여해 힘을 실어주었던 장두이, 장정일, 최현묵 등 많은 뛰어난 예술가들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시인의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인터뷰는 사무실 옆 커피숍에서 이어졌는데 짧지 않은 인터뷰시간 내내 두 사람은 오누이 같은 정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인터뷰 도중에 수시로 “언니”라고 부르는 이 시인의 호칭이 구씨는 결코 싫지 않은 듯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정돈하는 사이에도 그 짬을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오누이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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