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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0

2006년 07월 18일 권력·금력에 법이 울고 있다
이태수 | 조회 448

권력·금력에 법이 울고 있다

 

유일한 생존 제헌국회의원인 김인식(93) 옹이 制憲節(제헌절)을 앞둔 그저께 한 일간지 인터뷰를 통해 후배 정치인들을 나무랐다. “제헌의원들은 설렁탕만 먹어 가며 법안을 놓고 열심히 토론했는데 요즘 의원들은 멋만 내려 한다”면서, 대부분이 國政(국정)을 위하기보다 자기 黨(당)만 위한다는 골자의 ‘쓴소리’를 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국민은 眼中(안중)에도 없고 ‘패거리 문화’로만 치달아온 게 정치권과 고위 지도층의 숨길 수 없는 현주소다. 더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過去事(과거사) 청산 작업과 과거사법,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에 관련한 김 옹의 부정적 견해와 改憲(개헌)에 관한 언급들은 깊이 새겨야 할 대목들이 아닐 수 없다.

김 옹의 지적대로 ‘역대 정권이 자기들 입맛대로 憲法(헌법)을 아홉 번이나 뜯어고치면서 누더기를 만들었’으며, 지금도 같은 논의가 종전과 별 다를 바 없이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법이 울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제헌절을 앞두고 불거지기 시작한 法曹界(법조계)와 警察(경찰)의 가공할 만한 非理(비리)는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준다. 높낮이 없이 온통 구석구석 풍기는 ‘썩은 돈 냄새’는 물론, 브로커들이 판치고 날개를 달 수 있는 풍토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극명하게 말해준다.

정치권은 權力(권력)만 잡으면 입맛대로 법을 주무르려 하고, ‘법과 良心(양심)’의 보루여야 할 법조계와 경찰이 이를 저버리고 그릇된 판단을 일삼는다면 선량한 서민들은 참담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행태는 獨善(독선)이요, 스스로 설자리를 허무는 작태가 아니고 뭔가. 이런 풍토에서는 국가와 사회가 질서를 잃게 되고, 골 깊은 불신감만 증폭되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는 노릇이다.

법이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까지 악용되며, 권력과 돈의 힘 앞에 굴절되고 歪曲(왜곡)된다면 ‘못 가진 사람’들만 ‘봉’이 될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 때문에 ‘법이 울고 있다’는 말이 膾炙(회자)되겠지만, 법은 스스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회한과 탄식의 울음을 안 터뜨리고, 모멸감을 벗어나 제자리에 있을 재간이 있겠는가.    

옛날, 對話(대화)를 즐기고 중시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와 논쟁을 벌이면서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트라시마코스는 서슴지 않고 “법은 강자의 이익이다. 법은 또한 거미줄과도 같다. 작은 곤충들은 거미줄에 걸려들지만 큰 짐승들에게 거미줄은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런 것 같다. 더욱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선 법이 권력 있고, 돈 있으며, ‘빽’ 있는 소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 같은 錯覺(착각)을 하게 만든다. 아니, 착각이라기보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말에 선뜻 동의할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나 될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고도 얼마 안 가 버젓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茶飯事(다반사)로 보고 느끼는 판국에 못 가진 사람들에게 遵法精神(준법정신)을 가지라는 건 마치 ‘산에 가서 고기를 구하라’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리 생각해봐도 요즘 법들은 약한 사람만 걸려들도록 만들어놓은 ‘덫’이 돼 가고 있는 느낌이다.

법을 어겼을 경우 그 집행이 ‘눈 가리고 아옹’이나 ‘깜짝쇼’의 양태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권력과 金力(금력)을 움켜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갖가지 법(특히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려 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법을 我田引水(아전인수)로 고치려하기보다는 제대로 받들고, 그 적용도 엄격하고 공정하게 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게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고조될 때, 준법정신은 자연히 고양되고, 꼬이던 일들도 순리로 돌아서게 되지 않겠는가.

‘권력과 돈’이라는 세속적 욕망을 초월해 君子(군자)의 덕목인 貴慾(귀욕)을 좇으며, 公心(공심)을 갖고, 淸貧(청빈)의 의미를 보듬어 안는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그런 인사들로 정치권이 물갈이되고, 지도층 인사들 역시 그 길을 가는 모습은 요원하기만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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