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    업데이트: 18-07-11 11:43

작가노트

작가노트-개인전2002
관리자 | 조회 799
마을 어귀 낮은 지붕의 이발소.........
남루한 처마를 이고
구부러진 미닫이문은
삐걱거리며
오는 손님을 맞고 있다.
장작불을 지핀 무쇠 난로
백철의 연통 허리춤엔,
비누거품이 누렇게 눌은 자국위로
주인 아저씨는 날렵하게 비누 거품을 풀어 먹인다.
따뜻한 비누 거품이 덧칠을 하고,
나는 맨송맨송한 내 얼굴에 거품을 칠하곤 했다.
그 온기와 젖빛의 부드러움.........
성애가 낀 유리창너머
개울은 아직도 겨울바람이 맨발로
내달리고 있었다.
나목(裸木)이 열병한 개울너머
듬성한 노송(老松)의 긴 그림자가
하루를 재촉하고,
주인아저씨는
두터운 소가죽 끈에 면도칼을 갈고 있다.
나는 남은 면도 거품을 연통에 칠하며
그 젖빛 거품을 구어 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그 밀실의 한켠에서
나는 하릴없이 그 문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젖.빛.안.개.
 
그것은 늘 어둠과 빛의 미묘한 교감(交感) 위에서
대상(對象)과 존재(存在)를 잉태(孕胎)한다.
빛이면서 동시에 어둠이기도 하고
여백(餘白)이면서 동시에 대상이기도 하다.
존재와 상황(狀況)의 씨와 날줄이
한 줄의 코드를 완성 할때 마다
나무와 새, 그리고 강들이 태어난다.
동구 밖 세상은 그래서
늘 나에게는
넘어 가야할 대상이면서
머물러야할 공간이었다.
나의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
그 낯설음으로부터 자유하고 싶다.
다시 혼자가 되고,
젖빛 안개들이 몰려 올 시간........
나는 다시 한번
비누거품을 칠한다.
 
2002. 5.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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