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    업데이트: 23-04-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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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아트코리아 | 조회 699

기억 공작소(記憶工作所)’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예술이 한 인간의 삶과 동화되어 생명의 생생한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또한 그 기억의 보고(寶庫)이며 지속적으로 그 기억을 새롭게 공작하는 실천이기도하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이 탄생한 환경의 오래된 가치를 근원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재생과 공작의 실천을 통하여 환경으로서 다시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살려내려는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멈추어 돌이켜보고 기억하라! 둘러앉아 함께 생각을 모아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금껏 우리 자신들에 대해 가졌던 전망 중에서 가장 거창한 전망의 가장 독특한 해석과 그들의 다른 기억을 공작하라!

또 다른 기억, 낯선 풍경을.

 

그러고 나서 그런 전망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가치와 개념들을 잡아서 그것들을 미래의 기억을 위해 제시할 것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를 공작한다.

 

중력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몇 가지 혁신이 있다. 혁신(革新, innovation)은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경제발전의 주도적 개념이지만, 미술가 송광익의 혁신은 조금 다르다. 회화를 전공한 그는 경험을 통하여 예술에서 노동(勞動, Labour)의 가치를 파악하였고, 땀과 시간이 담기지 않는 예술 활동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는 예술가로서 생존과 생활을 위한 자발적인 행위로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예술 활동, 즉 노동 행위를 신뢰하고 있다. 그의 노동은 자신의 예술행위, 특히 그리기보다 만들기에 의하여 외부 자연의 질료 변환을 매개하고, 규제하고, 통제하면서 이 자연과 자신을 동시에 변화시키는 혁신과정이다. 그는 단시간에 시각적 매력이 드러나지 않는 이 노동의 혁신 과정을 어쩔 수 없는 고행이라고도 표현하였다.

 

아무튼, 이번 전시에서 그의 첫 번째 혁신은 벽을 작품으로만드는 일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은 벽면 가득하게 수직 팽창과 충만의 긴장 에너지를 마주할 수 있다. 벽면에 검은색과 흰색의 세로 선들이 블록을 지어 꽂혀있다. 선들은 바닥에서 천정을 잇는 5m 길이 단위로 두 가지 무채색 톤의 그룹을 이루며 관람객의 시선 움직임을 덮치는 거대한 일렁임 혹은 몰입 공간 차원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기(), 칼날처럼 곧게 세워진 선(), 촉각을 자극하는 지()이며, 전체적 인상은 거대한 할큄의 흔적 같기도 하다. 우리가 보는 선은 화면 위에 안료로 그린 선이 아니라, 몇 겹의 한지와 판화용지를 벽면에 수직이 되게 5~6cm 깊이로 꽂고 세로로 이어서, 이 세로 선을 좌우 3cm 간격으로 반복시키면서 그 크기가 가로 6.8×세로 5m에 이르게 만든 입체적인 선이다. 또한 이것은 쉽게 이해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막막한 상태의 신성(神聖)으로 미묘한 변화의 울림이 느껴지는 작품으로서 이기도하다.

날을 세운 한지 을 벽에 박는 이 혁신은 벽 전체가 거대한 화면으로 탄생하여 새로운 회화의 영역에 가담하게 한다. 이 회화는 표면 위에 질료가 만나는 회화에서 나아가, 작가가 행하는 오랜 시간의 노동이 벽 표면층 혹은 공간에 질료 변화를 만드는 다차원적 사건이며, 조각과 수공예, 회화의 경계 너머 영역에 위치한다.

벽 작업의 건너편에는 작가의 두 번째 혁신 바닥에 뉘어서가 있다. 바닥에서 20정도 띄워서 뉘어놓은 가로 2.2×세로 2.4m 크기의 작품인데, 가로 세로 4정도의 백색 한지를 패널 표면 위에 일직선으로 세우고, 그 선을 무수하게 반복시키면서 한지의 끝이 자연스럽게 구겨진 평면이 되도록 한 작업이다. 무수히 많은 기원들을 모아놓은 서낭 마당의 상징처럼 보인다.

세 번째 혁신은 구멍을 뚫어서이다. 앞에서 설명한 두 작품 사이에서 공간 균형을 저울질하는 검은 색감의 작품은 첫눈에 여기저기, 어디에나, 드나듦, 비움, 포용력, 전면 균질적인, 흔적 제거 등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 장의 신문지와 잡지에 먹물을 입히고, 그 위에 날카롭고 둥근 기구로 압력을 가해 구멍을 뚫은 작업이다. 이것은 사물을 해체시키거나 구멍을 집적시켜 이전의 작업 개념인 집적을 진전시키는 변화로 볼 수 있다.

 

노동시간혁신에 이어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의미이다. 이것은 작가가 노동으로 집적한 시간과 관객의 시간이 이 전시를 바라보는 현재에서 만나 기억의 층위를 쌓고, 다시 관객의 미래로 기억되는 사건이기에 더욱 그렇다.

 

 

문풍지, 자연을 대하듯

송광익의 작업은 자연을 기억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의 근원에 대하여 어릴 때 창호지를 바른 방문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문풍지가 우는 소리, 그 얇은 종이의 떨림과 부딪힘, 햇살에 비쳐진 격자 문틀의 직선적 그림자, 문틀 본체와 그림자의 미묘한 음영 관계와 빛의 투과를 느낄 수 있는 하얀 한지와의 조화로 설명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문종이 사이에 오려붙인 꽃모양이나 여러 형태의 기하학적 문양의 요철, 창호지에서 느껴지는 반투명의 느낌, 저편에 보일 듯이 들려오는 소음과 고요함의 진동을 기억한다고 했다. 작가는 문풍지자연의 기억을 주목하고 우리들 기억 층 속에 이를 다시 각인시키고 있다. 본능적이라 할 만한 이 어쩔 수 없는 기억은 전시에 의해 다시 공작되어 우리의 현재, 미래의 기억과 만난다.

 

작가의 혁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배열되지만 기본적인 차원과 태도를 통하여 원래의 자연을 대하듯사건 기억으로 제안된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기억의 자율성, 아주 단순한 선의 울림과 노동의 흔적에서 자연에 관한 작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를 꿰차는 고요하고 미묘한 긴장을 기억하게 된다. 이 기억의 대하기는 새로운 미래의 어떤 순간을 위한 기억공작소이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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