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    업데이트: 19-09-09 10:25

언론 평론

겸허한 세계관이 이룬 지성과 신념, 서정도 展
아트코리아 | 조회 507
겸허한 세계관이 이룬 지성과 신념, 서정도 展

 
서정도의 작품은 회화를 초월하려고 한다. 캔버스 위에 사용한 재료가 화면에 등장한 소재들이 물감의 모습을 넘어 ‘실재’이거나 ‘실재와 같은 주제’로 보는 이에게 직접 증명 하는 사실적인 이미지이다. 이런 이미지는 작가의 끈기 있는 손작업으로 이룬 성과인데 예술 행위를 자신의 방식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이룬다. 그의 예술 행위는 정신적 노력만큼이나 공을 들인 자신의 몸 감각과 몸의 기능을 정밀하게 사용해서 얻은 가치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예술 행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표현이다.

작가의 제작 방식은 검소하다. 화려한 색상이나 이미지를 꾸밈없이 재현하여 물감의 모습을 초월한다. 기술의 자기 탐닉이나 개인적 감성의 많은 부분을 제한하여 표현하려는 소재의 사실주의 가치체계의 일부분으로 삼는다. 그리고 작가의 표현 방식의 정확함, 이를테면 나무껍질이나, 잎사귀의 표현, 그리고 플라타너스 열매의 표현은 단호함이 있다. 누더기처럼 벗겨지는 껍질, 새롭게 빛을 찾으려는 잎사귀, 또는 생성된 시점을 알리는 열매의 묘사는 보는 이에게 회화가 가졌던 주술과 예술의 기원에 관련된다. 또한, 풍경화나 정물화의 유래도 상기하게 한다.

작가의 근래 작업은 회색조이거나 거의 단일색조에 귀결한다. 회색빛 도시의 건물에 딱딱함과 암울함이 있다면 자연의 회색은 따뜻함이 있다는 반증도 나타낸다. 단아한 변화로 처리한 방식으로 화면을 이어가 담담한 모습의 관조를 끌어낸다. 플라타너스가 화면에 주제로 등장하면서 플라타너스를 대하는 태도 또한 특별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가 아닌 일부분으로 주제를 설명하고, 그 배경을 이루는 하늘은 일부분에 구름이 있고 시선의 방향도 정해져 있다. 심리적 접근이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그림은 플라타너스를 표현하는데 입체감을 잘 나타낼 키아큐로스(chiqr’oscuro, 명암대조법)를 사용한다. 현실에서는 불가해할 만한 조합도 만들고 있다. 작은 괴이함은 작업을 보는 매력을 더하게 한다.

나무 표면은 한 벌의 옷을 수없이 기워 입는 탈속의 가치에 정신의 목표로 삼아 남루해도 거리낌이 없는 수행자의 참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다. 표면의 빛과 그림자의 영향에 대한 작가의 표현은 자연의 힘과 효용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플라타너스는 외래종이어서 우리말로 바뀌는 과정에서 민족자존의 입장에서 외세침탈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버즘나무는 그런 모습 밖에 큰 빛 가림막을 이루고 잎사귀의 풍성함이 어린 시절 기억에 있다. 강한 햇살에 그림자를 만들어 놀이를 이어가게 해주었고, 열매는 신기한 재료가 되었으며 집에 돌아간 뒤에도 학교를 지켜주고 아침에 가면 넉넉하게 맞아준 모습이 새롭다. 그런데 작가는 그 넉넉함으로 손을 흔들어 준다. 바람에 손을 흔들던 잎사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다. 구름도 손 흔들림의 상태나 희망을 더 한다. 그 흔들림에서 작가는 반가움으로 표현한 것인지 또는 흔들림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성찰인지는 구름처럼 이어간다. 구름은 대기와 빛의 효과를 새롭게 이끌면서 흔들며 자존의 무거움도 알게 한다. 하늘에도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가 있고 보이는 위치에 놓인 모습이다. 구름은 여러 형상을 띄지만, 그 형상은 모두가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구름의 표현은 마치 마니에리슴(manièrisme) 화가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지상과 천상의 접점을 찾으려는 끝없는 노력과 그 지향이 만든 서로 연결이 마음으로는 기대되지만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불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스피노자의 논증처럼 자연은 원인의 결과를 다루는 나무가 연결을 근거로 이루어진 사물이라면, 구름도 그렇게 이어진다. 나무와는 시각적으로 이어져서 궁극적으로 연결할 이미지가 있는 회화다운 빛을 갈무리한 인식의 연결이다.

서정도의 이번 전시는 삶의 관조가 있는 시각을 펼쳐 놓았다. 작품에서 세계란 일상의 관심을 넘어 별개로 존재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의미의 다양한 양상들의 새로운 모습이다. 또한, 화면의 요소요소에 새로운 통찰력을 부여하고, 이에 담긴 상징을 형성함으로써, 영성이 깃든 고고한 분위기(aura)를 창출하는 더 큰 지성에 합류하고 있다.

양준호(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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