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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전시] 정수화랑으로의 ‘소박한 초대’
서정도 | 조회 1,292

[전시] 정수화랑으로의 ‘소박한 초대’

데이터뉴스 datanews@datanews.co.kr | 2014-08-19 12:47:33


정수화랑은 ‘소박하다’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삼청동의 한적한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정수화랑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저절로 눈에 띄기란 어렵고, 눈을 크게 뜨고 요리조리 살펴봐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화랑 내부는 소박하지만 운치 있다. 몇 년 전까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무명 화가들을 재워주곤 한 기억이 남아있는 것인지 아늑한 느낌까지 든다. 화랑의 주인인 박정수 관장은 한편으로는 화랑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본 사람 눈에는 오히려 ‘소박한 초대’ 의 서정도 작가가 더 잘 어울리는 공간이 정수화랑이다. 정수화랑은 작가의 유명세나 능력은 보지 않는다. 열정만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작가, 무명 작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 ‘소박한 초대’ 의 서정도 작가는 대구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가 이 곳 정수화랑에서 전시를 열게 되었다. 작은 공간 덕분에 화랑에 들어서면 작품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나무를 담은 그림, 사람을 닮은 나무

하느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나무이다.//
그 모양이 우리를 꼭 닮았다./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
앵두나무의 키와 그 빨간 뺨은/소년들과 같다...
‘나무’ 김현승(1913~1975)



나무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과 더불어 살아왔다. 시 ‘나무’에도 나와있듯, 나무는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에 대한 시 뿐 만 아니라 자연을 통한 ‘힐링’이 대세인 요즘, 우리 곁에 늘 있어왔던 나무의 존재가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 나무의 삶은 인간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나무는 시 뿐만 아니라 그림, 산문 등에도 자주 등장하곤 한다.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무를 보며 인간은 자기네들의 흔들리는 삶을 위로 받고자 한다.

정수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서정도 작가의 전시회 ‘소박한 초대’는 삶의 기운과 가치를 나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작은 화랑이 열 점 조금 안 되는 그의 작품들로 꽉 차 있다. 모두 나무를 표면적으로는 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그림을 잘 보면 우리 인간의 감정과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의 제목이 ‘아쉬움’, ‘관조’, ‘황홀한 오후’, ‘예감’, ‘대화’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박한 초대’의 나무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여기서 ‘나무’란 나무의 형상을 한 인간의 자화상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림의 주를 이룬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다. 또한 고개를 돌리면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나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금세 풍경으로서의 나무가 아닌 마음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플라타너스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서 껍질이 벗겨지고 새살이 돋는다. 인간의 역사도 그렇게 변화한다. 서정도 작가가 플라타너스 나무를 즐겨 그리는 이유이다.

 


서정도 작가는 작품 이면의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섬세한 화법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면 자연스레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보는 사람들의 공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작가인 덕분이다. 공감과 소통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이다. 자기 자신보다 보는 이들과의 감정적 교류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친절하다.

‘소박한 초대’에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의 배경에 있는 구름은 삶의 불안정함, 불안감을 뜻한다. 하지만 그림의 중심에는 항상 나무가 있다. 나무의 존재는 인생에서의 버팀목과 같다. 한 치 앞 내다보기도 힘들지만 삶의 기둥, 버팀목을 통해 견뎌내고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소박한 초대’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나무처럼 마음의 중심이 되는 것을 찾아보자.


자료제공 : 씨즈온
문화취재기자 박새롬 ( myseizeo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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