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    업데이트: 19-09-09 10:25

언론 평론

소박한 초대 - 박정수 I 미술평론가
서정도 | 조회 973

소박한 초대

나무는 인간의 태초의 체험과 역사의 경험을 함께한다. 아주 오래된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모양을 담아내고 변용되어 왔다. 그때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인간의 삶에 견주에 새로운 개성으로 드러낸다.

작품 <소박한 초대>를 보자. 새로운 생활을 하고자 한적한 어느 곳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자 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삶의 공간에 문득 반가운 손님이 방문한다. 대접할 것 하나 없어 주위를 살피다 문득 오래된 탁자를 발견한다. 누가 쓰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물로 씻고 닦았더니 쓸만하다. 오히려 정감이 있다. 반가운 손님을 위해 마당 한켠에서 탐스럽게 자란 포도 몇 송이를 탁자에 올린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가득하다. 큰 기술을 요하지 않은 탁자가 그려져 있다. 시간의 흔적을 알게 하듯 군데군데 금이 가고 갈라져 있다. 오랫동안 손길을 타지 않아 메마르고 비틀어진 모양새다. 여기에 서정도의 작품이 가치를 발한다.

서정도의 작품에 나타나는 나무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즐거움이다. 행복한 생각과 즐거운 상상에서 비롯된 포근한 고향의 전경이 된다. 지금은 꽃가루가 날린다고 베어져 많이 사라졌지만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플러터너스 나무는 흔한 가로수였다. 국민학교(시대의 변화를 감지 위하여 초등학교를 과거형으로 적음) 교정에는 언제나 아름드리 플러터너스 나무가 있었다. 어느 곳에서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기억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마력이 있다. 작품들은 일상의 풍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운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다. <아쉬움>,<관조>,<생성과 소멸>이라는 작품 명제들만 보더라도 나무에 대한 다양하고 독특한 관념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나무는 작가의 이해나 마음의 변화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표현된다. 자신과 삶과 가치와의 관계 규명에서 선택된 소재가 된다. 그렇다고 나무를 그리는 화가라거나 구상미술로서 풍경화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체계화된 기준에 따라 나무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설명 또한 상이하다. 이것은 스스로 체계화된 세계관과 예술관에서 비롯된 표현방식의 하나이다. 자신을 에워싼 환경에서 주위를 돌아보고, 조화로운 삶과 행복을 제공하고자 하는 정신의 가치를 발현하고자 하는 결과물이다.

조화로운 삶의 방법으로 나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무가 나무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사람이며, 바람이며, 물이며, 집으로 변화와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어떤 상황이나 결과에 대한 구체적 모습이 나무로 표현 될 뿐이다. 플러터너스 나무 또한 같은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플러터너스를 주로 그리지만 그를 플러터너스 작가로 지칭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그리는 나무는 일련의 풍경화에 등장하는 나무가 아니다. 풍경의 한 자락을 그리지만 그것은 눈으로 확인하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에서 확인하는 마음의 전경이다.

플러터너스는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하여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먹는 수종이다. 플러터너스는 껍질이 벗겨진다 해서 우리말로는 버즘나무라고도 한다. 학교나 가로수로 많이 심은 이유 중의 하나가 정토수(淨土樹)라고 하여 토양을 정화시키는 나무이면서 공해에 잘 견디는 종류이다. 그러면서 여기에 어릴 적 추억과 향수가 있다. 껍질이 벗겨져 새살을 돋듯이 껍질에 사람의 역사를 쓰고 시간을 기록한다. 그가 플러터너스 나무를 즐겨 그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의 역사와 기록이 쓰여 과거의 흔적으로 남듯이 껍질에 역사가 쓰이면서 새 삶을 유영하는 모습이 이와 흡사하다.

보통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의 나무를 그리면서 자신의 방식에 따라 해석하고 표현한다. 여기에 한층 더 나아가 삶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가치들을 나무 이파리와 열매, 껍질이 벗겨지는 광경,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이해한다.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인간의 삶과 함께해온 나무의 변화를 관찰하여 특별한 의미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예술표현의 연구 결과이다.

서정도의 작품에는 인간의 근원적 존재방식이 숨어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의 정신가치와 현재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철학적 해법이 있다. 자신의 예술관으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그것은 이미 개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함께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더 포근하고 행복하다. 풍만한 즐거움과 미래가 제공된다.

2014년 8월 박정수(미술평론가. 정수화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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