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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그림읽기]신재순 작 '이브의 바다'(2020년) . 매일신문 / 2021.03.09.
아트코리아 | 조회 539
[내멋대로 그림읽기]신재순 작 '이브의 바다'(2020년)



신재순 작 '이브의 바다' 50x73.5cm 장지에 아크릴 (2020년)

'네가 지쳤을 때/너의 눈에 눈물이 넘칠 때/내가 눈물을 닦아 줄게/나는 네 편이거든/아! 사는 게 힘들고 친구도 찾을 수 없을 때/내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줄게…/너는 계속 나아가/네가 빛날 때가 됐어/모든 꿈들이 다가오고 있어…/친구가 필요할 때 네가 바로 뒤에서 나설게'

1970년대 중반 갓 영어 알파벳만 깨친 까까머리 중학생이 우연히 듣게 된 사이먼&가펑클의 불후의 명곡 'Bridge Over Troubled Water'에 홀딱 반해 한글로 가사를 적어 흥얼댄 적이 있다. 이 시기 또 하나의 우상은 호주 출신 가수 올리비아 뉴튼존의 'Let Me Be There'로, 전주만 들어도 몸을 '흠칫'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특히 시내 레코드가게 LP판에서 본 뉴튼존의 푸른 눈과 요염한(?) 자태는 사춘기 소년의 분출하는 호르몬에 '정염(情炎)의 화약'을 끼얹듯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마 발라드풍의 전자가 '로고스'(Logos·분별과 이성)적 차분함을 불러일으켰다면, 디스코풍의 후자는 '파토스'(Pathos·격정과 열정)적 강렬함을 소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두 노래는 10대 때의 불완전했던 심리상태를 견인함으로써 '삐딱선'을 타지 않게 한' 당대의 문화 코드였다.
트로트 곡 '살다보면'에도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가사가 마치 주문(呪文)처럼 되뇌어진다. 그렇다. 우리는 무언가에 의지하거나 기댈 그 무엇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신재순 작 '이브의 바다'를 보자. U자형의 화면구도에 테두리는 예쁜 꽃들로 꾸몄고, 에머랄드 빛 바다엔 태양의 빛이 반사된 은설(銀屑)이 찰랑인다. 저 멀리 수평선엔 바다 빛을 머금은 섬이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섬이나 혹은 낯선 땅을 헤매다가 꽃밭을 발견, 그 사이를 헤치고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그리진 것처럼 여겨진다. 게 중에서도 바다 위를 수놓은 은설을 빠뜨렸다면 이 그림은 훨씬 더 밋밋했을 지도 모르겠다.

신재순은 '이브의 정원' 시리즈를 통해 태초의 원시 정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에덴동산을 나름대로 묘사해왔다. 작가는 빨강, 노랑, 파랑, 주황, 녹색 등 화려한 색을 사용해 꽃을 소재로 그림으로써 기교면에서 단순한 형식, 색채 면에서 강렬함을 지향하고 있다. 부언하면 작가는 자연(꽃)을 그리되 대상의 형태보다는 색채에 비중을 두어 '열정'을 드러내고, 전체 화면의 조형성이나 균형미를 통해 심미적이고 냉철한 '이성'의 마무리를 보여주는 작업방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재순의 작품을 볼 때 원시성에 입각한 색감의 '파토스'적 측면과 화면 전체가 지닌 구도나 조형미를 품은 '로고스'적 측면을 함께 염두에 두면 훨씬 작품성이 두드러진다.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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