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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1    업데이트: 19-08-17 11:32

언론 평론

메세나 운동 앞장…신홍식 아트빌리지 대표 - 2015-02-06
아트코리아 | 조회 1,357

“오피스텔 한 층 통째 구입…작가 22명에게 작업실·전시실 무료 제공”

 
신홍식 아트빌리지 대표가 대구시 중구 종로3가에 있는 고샅길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고샅길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라 대구에도 1천년 이상 된 옛길이 있다고 했다.
 
신홍식 (사)아트빌리지 대표가 아카데미고시텔 6층 건물 동편 외벽에 총 190마리의 잉어를 형상화해 만든 ‘도전’이라는 작품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카데미고시텔(대구시 중구 동일동 구(舊) 하나병원) 건물 동편 외벽에 수백 마리의 잉어 떼가 하늘로 승천하는 설치 작품이 선보여 화제가 됐다. 

“제목이 ‘도전’입니다. 잉어가 물살 센 협곡인 용문(龍門)을 통과하면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착안했습니다. 건물 1~6층까지 높이 18m, 폭 3m인 조각품입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1년6개월이 걸렸어요. 물결치는 강물은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처리하고 모습과 색깔이 다른 총 190마리의 잉어를 형상화했는데, 각각의 잉어는 포슬린 페인팅기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강한 햇빛에도 변색이 안 됩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난관을 돌파해 뜻한 바를 성취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지요. 이곳은 대구의 근대골목투어 구간이기도 한데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자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잉어를 떼어가려는 사람도 있어요. 허허, 참.”


작품의 밑그림을 직접 그리고 설계한 신홍식 <사>아트빌리지 대표(61)는 대구지역의 대표적 메세나(문화예술 후원자)이자 동시시인이기도 하다. 파마 머리에 캐주얼복을 즐겨 입는 신 대표는 2010년 ‘대구문학’에 등단해 재작년 ‘우리 선생님’이란 동시집을 낸 대구아동문학회 회원이다. 

“60년대 유년기를 구미 원평동에서 보냈어요. 청와대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학생들이 차비가 없어 3분의 1도 못 갔어요. 그땐 다들 가난했습니다. 미국이 식량원조로 준 옥수수가루를 배급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겨울이면 아이들 손등에 때가 굳어 갈라지면 피가 날 정도로 잘 씻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인근 낙동강이나 산과 들에서 뛰놀며 물고기나 산토끼를 잡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땐 자연이 스승이었는데 요즘 도시 아이들은 컴퓨터에 매몰되다보니 그런 추억은 없을 겁니다. 동시를 읽으면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 상상력을 갖게 될 것 같아 동시를 쓰게 됐습니다.”

그의 동시는 곧 이수인 작곡가에 의해 동요로 탄생된다. 이씨가 그의 시를 읽고 동요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단다. 

신 대표는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2007년부터 직접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해와 이듬해 세계평화미술대전 공모전에 연속 입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 몇 차례 전시회도 가졌다. 2011년에는 정조대왕 화성능행반차도를 100호(가로 162㎝X세로 130㎝) 사이즈로 64장을 연결시켜 전시했다.

“화성능행반차도는 조선의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화성의 현륭원에 행차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김홍도를 비롯한 당대 뛰어난 화원들이 1천779명의 사람과 779필의 말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했는데 각각의 표정과 몸짓, 눈동자 등이 다 달라요. 전 그것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현했는데 3년 넘게 걸렸어요. 컴퓨터로 밑작업을 하고 6명의 미술학과 학생과 6개월간 합숙하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해 여러 군데서 전시를 했지요. 경기도 화성시의 학예관이 찾아와 명예시민증을 주겠으니 화성에 기증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하지만 이 작품은 화성시만의 작품이 아닌 한국의 문화유산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인터불고호텔에서 전시했는데 경주엑스포공원 상설전시장에서 그림을 요청한다면 기증할 의사도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에게 중세 우리나라에도 이런 뛰어난 미술작품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는 머그컵에 화성능행반차도를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해 기념품으로 만들었다.

신 대표는 대구지역 아너소사이어티(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기부자)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20년간 풍국산업을 경영하다 2004년 회사를 정리했다.

“컴퓨터모니터 제작 같은 제조업을 했습니다. 구미오리온전기와 거래를 했는데 이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자의반 타의반 사업을 접었습니다. 30~40대 때는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했죠.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이나 도예, 조각을 하게 됐습니다. 남이 하지 않은 창작활동을 하면 성취감을 느낍니다. 지금은 동시도 쓰고, 캔버스 대신 한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미술전시장을 찾으면서 작품을 구입하다 작가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2005년 성안오피스텔(달서구 두류동) 16층을 통째로 구입해 22명의 작가에게 작업실과 전시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도심 속 예술촌인 <사>아트빌리지를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했다.

“어릴 때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과 문화를 가까이서 접한 사람은 심성이 나빠질 수가 없습니다. 기업가도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선 안 됩니다. 선진국에선 기업가들이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는 일이 흔합니다. 문화 인프라가 강해야 합니다. 르네상스를 주도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도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뛰어난 작품을 창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는 저의 활동이 아름답고 선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합니다.”

신 대표는 2013년 한국미술협회에서 공로상을 주겠다고 하자 상을 받기 위해 한 일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그는 예술계도 정치판을 닮아 점점 오염돼가는 것을 개탄했다.

“작가는 작가정신이 투철해야 하고 협회나 조직은 투명해야 합니다. 이우환 미술관을 포기한 건 잘했습니다. 대구에도 이인성이나 이쾌대같이 뛰어난 화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리는 미술관 하나 없어요. 이인성 100주년 기념 전시회도 서울에서 했어요. 부끄러운 일이죠. 이중섭은 대구에서도 활동했습니다. 그는 제주도에서 1년 남짓 체류했는데 제주도에선 이중섭미술관을 지었습니다. 처음엔 초라했는데 제주도에서 한 작품, 한 작품 차근차근 이중섭의 작품을 구입해 지금은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찾는 줄 아십니까. 대구시가 본받아야 합니다. 대구시립미술관도 알맹이가 없어요. 또 도심과 너무 떨어져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습니다. ”

신 대표는 최근 대구의 역사와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역에 살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합니다. 대구중심에는 옛 골목이 많아요. 골목길보다 좁은 고샅길을 압니까. 서울 종로에 고샅길이 많은 것처럼 대구에 1천년 이상 역사가 있는 고샅길이 있어요. 이걸 대구시나 구청에서 특화시키면 좋을 텐데. 모텔 같은 게 마구 들어서 옛길을 훼손하고 있어요.”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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