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    업데이트: 22-08-31 12:00

작가노트

수묵, 우주의 길을 묻다 김동원 (시인)
아트코리아 | 조회 402
수묵, 우주의 길을 묻다
 
김동원 (시인)
 
 
백천은, 지난 번「700년 가야 魂, 먹과 놀다」시리즈에서, 가야인이 추구한 고대 한반도의 조화와 소통의 정신을, 진정한 풍류의 멋으로 드러내었다. 남북의 분단 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분열된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는데, 그 특별 展은 물음과 해답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그의 검은 빛이 채 마르기도 전에, 백천은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번『수묵, 우주의 길을 묻다』展은, 서예가, 수묵화가로 알려진 백천 서상언의 일곱 번째 개인전이다. 현대 수묵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해석한 독창적 세계이다. 기존의 사군자와 수묵 구상의 패러다임을 단숨에 전복시킨다. 무량수(無量數)의 우주에서 추상의 한 점을 고밀도의 압축과 팽창을 통해, 운석화(隕石畵)의 형태로 들고 나왔다. 사군자의 형사(形寫)에서 법고(法鼓)를 취하고, 천체물리에서 현대 수묵화의 창신(昌新)을 열었다. 무한대의 우주의 상상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화경(畫境)은, 21세기의 진경 문인화이다. 현실의 실재 ‘운석(隕石)’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관통한 예술의 진실에서 뚫어본, 백천 수묵의 비밀이 창연하다.
 
광대한 우주는 그 자체로 한 폭의 수묵화이다. 시간의 선(線)과 공간의 면(面)이, 백천의 한 점 붓질에서 만나, 운석(隕石·별똥별)으로 탄생한 그림이, 이번「Big bang」Ⅰ(130x100cm), Big Bang Ⅱ(140x70cm), Big Bang Ⅲ(140x70cm) 시리즈다. 빅뱅은 화론(畫論)의 입장에서 보면, 우주의 파격적인 예술 행위다. 대폭발설(大爆發說), 혹은, Big Bang이란, 우주 예술의 새로운 사조인 셈이다. 빅뱅 화론의 핵심은 계속하여 우주의 화폭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팽창한다는 점이다. 시공의 화폭 속에서 고정된 실체가 없는 신비화인 셈이다.
 
대작「Big bang」(200 x 800cm)은 신명을 내던진 파묵(破墨)이자, 고정된 먹의 관념을 파격으로 몰아붙인 시도이다. 하여, 이 영접(靈接)된 작업은 시점을 달리한 창조적 시도이자, 먹 작업의 우주적 확장으로 승화된다. 양성자 붕괴를 일으키는 과정은, 화폭 속에서 운석(물질)과 여백(반물질)의 먹 작업으로 번져나간다. 백천에게 있어 운석은 단순한 ‘돌’이 아니다. 그 돌을 통해 영겁의 시공간을 떠돌 수밖에 없는, 의인화된 인간의 은유의 세계가 투영된다. 하여, 궁극으로 이 작업은 삼라만상은 모두, 떠도는 자들의 노래임을 상기 시킨다. 46억년 동안 떠돌아다닌 운석 역시, 좌절과 절망, 고독과 상실감의 표징이자, 고뇌와 비탄을 거쳐 절망의 허공을 건너, 희망의 색계(色界)로 나아가는, 예술의 오브제인 셈이다. 운석의 반복적 운필은, 우주 속에 혼자 고립되지 않으려는, 화가의 심리적 불안과 함께, 끝내 도달할 수 없는, ‘떠돌이’의 냉혹한 비극과 비애감을 음화(陰畫)로 나타내었다. 대작「Big bang」은, 화선지에 수없이 반복한 초묵의 적묵 뿐 아니라, 대상 각각의 크고 작은 운석의 형상화를 통한 놀라운 리듬감을 준다. 이 화폭 속의 리듬은 우주의 생체리듬인 율려를 연상시킨다. 여백인 음과 운석인 양의 교합을, 태극과 무극의 세계로 붓질된다. 하여 백천에게 운석은 ‘몸’이자, ‘음악’이며, ‘정신’이자, 불가사이한 존재인 것이다. 화가는 이런 우주 욕망의 근원인 ‘운석’ 이야말로, 이 시대 인간들이 꼭 반추해 보아야할, ‘길’과 ‘몸’의 상징이다.
 
「Face & Fish」Ⅳ(100x130cm) 시리즈는, 우주가 ‘바다 행성’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운석의 ‘얼굴’ 표정과 ‘물고기’를 통해 이미지화한다. 백천은 이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 다니는 우주의 세계를, 수묵의 세계로 수용, 변주한다. 얼음 덩어리는 지구 물에 비해 140조 배나 많다. 예를 들어 깊이가 수백 km 이상이나 되는 행성의 바다에서는 수압에 의해 물이 고체 상태가 된다. 우주 공간에서는 온도가 매우 낮아 물의 대부분은 얼음 형태로 존재한다. 혜성과 달, 명왕성이 그 예이다. 달의 표면에 존재하는 물은 모두 얼음 상태이며, 혜성의 꼬리는 얼음이 녹으면서 생긴다. 엔셀라두스나 유로파처럼 위성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인 경우도 있다. 백천은 ‘Face’를 통해서 운석 속에 내재한 상징과 관상(觀相)을 수묵과 담채로 꺼낸다. 별의 각자의 운명을 통해, 결국 인간 생사관과의 비밀스런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고도의 화술(畵術)이다.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궁금해 하는 것은, 인간이나 별 또한 불이(不二)함을, 운석의 ‘표정’을 통해 드러낸다. 붉은 담채의 파묵은,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싶은 예측 불가한 색(色)일 뿐 아니라, 무의식 속의 백천의 ‘불안한 얼굴’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주의 불확정성을 뜻하며, 양자역학으로 설명된 미래 세계의 불안이기도 하다. ‘Fish’는 우주의 바닷가에 놀고 있는 ‘별(운석)’에 대한 비유이자, 인간의 정자와 난자의 은유이자 환유이다. 화가는 물고기를 통해 신비로운 물의 세계를 이야기 한 셈이다. 결국「Face & Fish」(100x130cm) 시리즈는, 우주의 신령스런 기물을 운석의 이미지로 조형화한 것이며, 천지창조의 예술적 해석이며, 물고기를 통해 추상의 지혜를 말한 셈이다.
 
하여, 백천은 묻는다. ‘몸(물질)「Meteor」(140x70cm)이란 무엇인가?’. 마치 그것은 ‘우주란 무엇인가’로 들린다. 또한, 수묵 속의 운석과 그림 속의 운석은 무엇이 진짜인가로 비약된다. 그것은 예술의 실재와 상상력의 문제로 확장되며, 이번『수묵, 우주의 길을 묻다』展의 요체인, ‘떠도는 者(운석)의 운명’과 그것은, 왜 ‘길의 문제인가’로 수렴된다. 하여, 백천은 우주를 ‘Meteor(물질)과 ‘몸’으로 동일시하며, ‘반물질’과 ‘여백’을, 그 대칭점에 놓는다. 이것은 수묵 담채의 화폭 속에 ‘빔’과 ‘리듬’의 화론으로 드러나며, 결국 음양오행의 동양화풍의 세계에 닿는다. 궁극적으로 운석은 물질이자 몸이며, 가둠이자, 열림의 배반적 장소이다. 또한, 안의 세계이자 밖의 세계이며, 공(空)의 세계이자 색(色)의 세계이다. 즉, 우주는 속(俗)과 성(聖)의 세계이자, 천지창조 이전과 이후의 세계이기도 하다.
 
하여, 그의 수묵은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 상태를 깨뜨리는, 파천황(破天荒)의 검은 빛을 꿈꾼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전혀 다른 방식을 이번 작품전에서 선보인다. 발묵 대신 대상을 겹쳐 바르는 한지의 적묵법을 취해, 윤곽의 생동성과 운석 속에 다채로운 형상의 디테일을 추구한다. 대작「Big bang」(200 x 800cm)을 통해서는 초묵을 바르기도 하고, 붉은 색조의 파필(把筆)을 선보인다. 예부터 바위는 괴석도(怪石圖), 구멍 뚫린 태호석(太湖石)을 중심으로 수많은 문인화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특이한 형태의 수석도(壽石圖)는 매 난 국 죽과 함께 민화에 장생의 의미로 그려졌다. 이런 돌이 갖고 있는 세 가지의 덕, 묵묵함(黙), 참음(忍), 굳셈(堅)을 ‘운석’을 통해, 백천은 대상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현대 수묵의 조형미로 격조를 더했다. 아마, 운석 역시,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불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자유롭게 날기도 하고, 이웃별과 치고받으며, 인간처럼 생로병사의 길을 걸을 것이다. 궁극으로 백천이 이번『수묵, 우주의 길을 묻다』展에서, 세상을 향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운석의 운행과 인간의 생로병사가 둘이 아님을, 서사적 화격(畫格)으로 증명하였다. 매 전시회마다 백천이 보여준 파격과 심미안은 놀라운 사건이다. 대담한 스케일과 구성,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은, 적묵(積墨)과 초묵(焦墨)을 통해 신비로운 흑색의 세계로 이끈다. 묵선과 여백에 따른 미학적 공간 분할과 흐름은, 그림이 시가 되는 화중유시(畵中有詩)의 묵기를 펼쳤다. 서도(書道)로 연마한 그간의 필력(筆力)이, 수묵의 농담과 묘사를 중후하게 했다. 또한 백천은, 대상을 기교에 두지 않고 고졸한 맛으로, 운석의 천진(天眞)함을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운석의 내면을 백천 특유의 거친 필치로 체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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