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업데이트: 23-09-11 17:07

언론&평론

화가 이세하 / 비구상의 바다에 띄운 변산의 솔섬 - 조재형(시인)
관리자 | 조회 490
비구상의 바다에 띄운 변산의 솔섬​ 
 
시인 조재형

‘이세하’ 미학의 단서를 찾다.
 
그곳은 흡사 중세 어느 궁전의 비밀한 방 같다.
먼 과거로부터 흘러온 음악이 병정처럼 지키고,
눈(雪)처럼 맑은 영혼이 캔버스 위에 옮겨놓은 우주라고 할까.
 
작가의 고향은 전북 부안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고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유달리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적 도서관에서 조우한 모네, 고호, 르느아르의 명화집에서
원근, 양감 등의 기법을 마음으로 훔쳤다.
그림에 대해 전혀 배우지 않았는데도 작가에게 미술세계는 운명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우연을 계기로 그림에 영혼을 바치는 화가의 꿈을 일구어 온 것이다. 그림 외에 좋아하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서양의 고전음악이다.
작가가 한때 캐나다 밴쿠버에 정착해서 살았던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고 시절 개국한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전음악과 풍경의 묘사를 접하면서 화가로서 꿈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음악을 좋아하는 화가의 꿈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서울에서 운영하던 미술학원의 발목을 뿌리치고
해외로 나가게 된 것은 탐험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타고난 모험심은 오지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지고, 동남아 여러 나라를 대안으로 수년간 여행하다가, 캐나다 밴쿠버의 자연에 사로잡혀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젊은 날 동경하던 고전음악과 함께 머릿속에 그려온 풍경이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캐나다의 자연은 작가에게 작품 세계의 밑거름이 되기에 넘치는 이상향이었다.
십여 년 넘게 상주하면서 ‘이세하’만의 작업을 이어갔다.
사물의 그대로를 그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그림 속에 형상화하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작가 ‘이세하’라서 도달한 수 있는 세계
 
작가가 고백하는 그림의 주제는 ‘하모니’이다.
하모니란 주제로 수년 동안 작업을 해 왔는데,
처음엔 음악 안에서의 하모니로 국한하다 작업을 하면서 해석의 폭이 넓어졌다.
점차 음악과 자연, 고전과 현대, 예술과 과학의 하모니로 소재를 확장하고 있다.
 
어울림 즉, 조화가 작품에 녹아 있다. 모험과 환상에서 얻은 영감을 작가만의 색상과 새로운 배치 속에 녹여 작품에 구현해 낸다.
 
대상 속으로 몰입하게 하는 이세하의 작품은 초시간적 세계 인식을 갖고 있다.
작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현상적 사실의 가치를 대폭 줄이고
관객들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의식을 뛰어넘어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게 이끌어 준다.
 
주변에 산재한 일군의 화폭들이 캔버스 위에 구상을 고집하면서
그들이 상정한 미지의 관객들에게 고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 때,
일찍이 구상을 박차고 나아간 이세하는
살아 있는 작가만의 화풍으로 다수의 관람객들에게 이제껏 보지 못했던 신선함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는 중세이다.
고대와 현대의 중간 지점이요, 서양과 동양의 중간 지대이니
작가의 설정한 미로를 찾아가는 키워드는 바로 ‘조화’이다.
 
끊임없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의 근처를 서성이게 한다.
작품 앞에 서면 갸웃거리게 하고, 시간이 흐르며 마침내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마련한 공간에서는
대상과 관조적인 거리를 두게 한다.
의식을 이면으로 물리치고 무의식이 전면으로 등장한다.
작가 앞에서는 어떤 무질서한 혼돈도, 어떤 익명의 사물이라도
조화라는 이름 아래 재구성을 이루고,
종국에는 새로운 배경으로 거듭날 수밖에는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작가의 쉽게 깨지지 않을 풍경 하나를 확보할 수 있다. 작가가 비구상의 바다에 띄운 ‘변산의 솔섬’이다. 한 작가가 일생을 통하여 절정의 작품 한 편으로 살고 죽는다고 할 때 이 작가의 경우, ‘솔섬’이라고 하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오랜 침잠과 숙성의 터널을 통과한 이세하가 앞으로 펼쳐 보일 세계는
우리를 또한 얼마나 설레게 할 것인가.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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