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논제는 정치사회적 논제와 일정부분 불일치하는 요소가 있다. 특히 문화예술정책의 입안이자 기획과 관련해 볼 때면 더욱 그러하다. 문화예술의 발전과 향유는 정치 사회 경제적 빈곤 속에서도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문화예술의 발전적 정책입안은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과 일정부분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데 왜 현금의 대구 문화예술계 특히 미술계는 〈대구 간송미술관 유치 건립〉에 대해 말들이 많은가? 전제한 문화예술정책의 입안과 기획에 정치 사회적이자 경제적 논리를 개입시키려 하는데 따른 결과가 아닌가? 문화예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자생적이다. 그러나 그 자생성은 허허벌판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자생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선적으로는 주어진 환경이 문화 예술적여야 한다. 즉,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한다. 모든 예술의 발전적 전개는 보고 듣는, 말 그대로 뷰(view)한 것으로부터 비롯한다. 일개 지역에서 일고 있는 미술관 유치가 왜 앞의 예술적 전개의 발로를 막는 무지한 사실들과 얽매어 가는지 생각해 볼 때다.
모든 문화예술의 창달이자 창신은 그것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체험적 구조를 통해 확립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체험중 보다 주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보고 인식하는 것인데 그 계기를 제공하는 장치가 다름 아닌 박물관이자 미술관과 같은 기관임은 당연하다. 문화예술의 발전적 계기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이익의 배분을 위해서라면 하루 빨리 미술관 유치와 관련한 논쟁에서 벗어나 그것들을 체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도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한다고 생각된다. 대구의 문화예술이자 그 발전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문화예술정책의 입안이자 기획과 관련해 정치 사회적이자 경제적 논제를 배제해 보자! 이익을 누가 차지하거나 가져가든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권의 차지를 원든 원하지 않든 이권다툼은 문화예술의 발전에 저해요인이다.
이에 본 미술협회에서는 전제한 모든 사항에 입각하여 하루속히 대구에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을 희망하며 소모적인 논쟁에 대하여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