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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내멋대로 그림읽기]노중기 작 '좋은 인연'(2020년) / 매일신문 배포 2021-02-09
아트코리아 | 조회 513
[내멋대로 그림읽기]
노중기 작 '좋은 인연'(2020년)




노중기 작 '좋은 인연' 99x66cm 혼합재료 (2020년)

 
'자아-타자'의 관계, 무지개 빛 물들기를...


무릇 모든 예술행위치고 아무런 의식이나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어떤 창작도 뼈를 깎는 고통 없이 절로 얻어지는 건 없다. 하물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화가로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창작의 고통'은 '원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있는 대상을 고스란히 묘사하는 극사실주의이든, 대상의 뼈대만을 추려 그리는 추상주의이든, 작가의 심상에 맺힌 세계를 드러내는 추상표현주의이든, 그 어떤 예술행위에서도 이른바 '작가 정신' 혹은 '화가의 직업적 철학'이 없이 세상과 맞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미술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업을 10년, 20년 심지어 30년, 40년을 지속하려면, 천부적 재능은 둘째치더라고 웬만한 '깡' 하나쯤을 붙들고 있어야 버틸 수 있다. '깡'은 '창작의 고통' 즉 '원죄'와 맞설 수 있는 예술가의 최후 보루이다.

노중기의 작품 '좋은 인연'은 조형요소의 구체적인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그림만 갖고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다만 실마리가 있다면 작품 이름이 '좋은 인연'이란 점을 착안해 그의 그림을 풀어볼 수밖에 없다.

작품 '좋은 인연'을 읽어내려면 먼저 화면을 세 부분으로 분할해야 편하다. 첫 부분은 화면 왼쪽 검은 직사각형과 오른쪽 길쭉한 검은 기둥, 두 번째 부분은 화면 상단에 있는 검은 사각형과 무지개 빛 색채의 향연(?),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새가 모이를 물고 있듯 부리에서 갈라져 왼쪽 직사각형과 상단 부분을 잇는 두 줄의 검은 선이다.

첫 부분의 왼쪽 직사각형과 오른쪽 기둥은 '자아'와 '타자'의 관계라고 설정해보자. 인연이란 말 속에는 이미 '자아-타자'의 관계가 내재돼 있고 원초적으로 다른 존재성을 지닌다. 바로 그 다른 존재성 탓에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설정되는 게 인생살이다. 그 좋고 나쁨을 작가는 화면 상단에 검은색 사각형과 무지개 빛 찬란한 붓질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나쁜 건 검은 색, 좋은 건 무지개 색깔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노중기는 또한 무지개 빛 좋은 인연이 나 자신에게 더 많이 일어나라는 기도처럼 두 개의 조형요소를 연결하듯이 검은 선으로 그려넣었고 그 한 선에 작가의 사인을 넣어 놓았다.

노중기는 평소 "나에게 미술은 변화하는 사회상과 분리될 수 없으며, 삶의 일부로서 타자와의 관계, 정체성, 신념, 진솔함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고 "모든 지각은 사고(思考)이고 모든 이지(理智)는 직관이며 모든 관찰은 발명이다"를 작가적 '깡'으로 삼고 있다. 노중기에게 예술적인 표현이란 다름 아니라 지각된 패턴을 형성하는 '힘'이자 그 힘의 적극적인 드러냄이 예술 활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 '좋은 인연'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언제나 우리의 감각이 받아들이는 정보가 애매모호한 경계성을 갖지만, 그래도 예술은 무엇인가를 표현함에 있어서 불확실한 대상을 초월해 '작가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한 예일 수 있다.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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