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과거 이야기부터 털어놓기 시작했다. “예전엔 해부학에 근거해서 드로잉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모델의 몸이 울퉁불퉁 나오던데 그건 아니더라. 그래서 한동안 안 했지.” 그러던 노 씨가 드로잉 전시회까지 열게 된 건 ‘재발견’에 가깝다. “어느 날 보니 드로잉이 달라 보이더라. 드로잉의 선, 점과 점을 연결하는 기분을 살리면 관람객에겐 상상의 여유를 주고 작품과도 제법 어울려 보이겠더라고.”
‘자유.’ 노 씨가 드로잉을 통해 느끼는 것이고, 또한 학생들에게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림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드로잉 같은 사실 작업이 “힘 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선 제일 기초가 되는 것”이라는 노 씨는 그로 인해 “그림 잘 그린단 소리를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추상화 작업과는 달리 구체적인 형상이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백 장 가운데 가려 뽑은 43점의 드로잉 작품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유려한’ 선이 맛깔스러운 여인의 누드화나 초상화는 흑백의 시원스런 멋, 그리고 절제 있게 사용한 컬러 작품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모델을 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학생들 틈새에서 작업한다는 노 씨는 “드로잉과 스케치(소묘)는 다르다.”며 “드로잉은 인물의 ‘느낌’을 잡아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먼저 모델을 관찰한 뒤 동선(특성)을 파악하도록 시킨다고 했다.
단순히 인체 비례에 맞춰 ‘틀에 맞춘 듯한 그림’이 아니라 ‘느낌을 살리는 작업’이 드로잉이라는 것이다. 노 씨의 꿈은 “1만 점 이상 작품을 한 뒤 죽는 것”이다. “그냥 죽으면 붓 든 게 섭섭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막힘 없이 나아간 드로잉의 선처럼 현실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노 씨의 성격이 드러나는 말이다. 전시회는 2월 2일까지 계속된다. 053)794-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