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21-05-20 11:16

보도자료

[전원 속 예술가들 .54] 서양화가 노중기
아트코리아 | 조회 2,653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1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대구·상트페테르부르크 교류전, 제주 바람 태평양전, 아시아국제미술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 대구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신조회 회원이며 대구보건대에 출강하고 있다.

머리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 가끔은 자연으로 나가 숲이나 바다, 나무, 꽃 등을 보면서 생각을 단순화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이런 자연을 보고 즐기는 것이 때로는 큰 위안이 되고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하는 것이다.



노중기 화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그림 그리는 데 영 자신이 없었다. 주위에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가 많아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을 찾지 못했고, 이런 마음상태로 전업작가로 생활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학교의 미술교사로 들어가는 것으로 미술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포항의 한 고등학교에 미술교사로 취업했습니다. 작가로서 치열하게 살 자신이 없어서 비겁한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교사라는 자리가 생활에 안정을 가져다주니, 어찌 생각하면 잘 된 일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한껏 위축되어있던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의 시선이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이처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학교생활이 나의 인생에 가져다준 행운”이라고 말한다.

“대학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늘 자신이 없고 부정적 생각만 했습니다. 대학에서 이런 식의 그림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이런 그림이 진짜 제대로 된 그림인지 등에 대한 회의가 많았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자유로운 생각을 화폭에 펼쳐놓고, 그런 그림을 보면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서 그림에 대한 제 시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림에서 나쁜 점만 찾아내던 그가 어느 순간 어떤 그림에도 좋은 점은 있고, 이것이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긍정적 생각은 제 삶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늘 부정적이던 저의 모습이 어느 순간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긍정마인드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교사 생활을 과감히 접고 다시 고향인 대구로 올라왔다. 작가로서 승부수를 띄워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6년 정도 한 그가 바로 전업작가로 탈바꿈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미술학원이다. 학원을 하면 낮에는 학생을 가르쳐 생활비를 벌고, 저녁에는 그림작업을 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해 내놓은 결과였다. 처자식이 딸린 그가 직장을 포기하고 완전히 전업작가로 나설 만큼의 용기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학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현대미술 빠져들며 고달픈 시간 보내
거친 성격과 직설적 말투로 오해받기도
사계절의 에너지와 질서 화폭에 담아
새 기법 찾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며 작업
최근 하트 소재… 작품 밝아지고 쉬워져


그러다 보니 먹고사는 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작업에는 늘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돈벌이에 급급해 살다 보면 아예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위기감마저 느꼈다. 그래서 1990년, 학원까지 급기야 그만두고 말았다. 그림만 그려야겠다는 생각에서 그해 바로 가창으로 들어왔다. 우사를 개조해 작업실로 사용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이우환, 박서보 등의 대가들이 대구에 전시를 하러 오면 이들의 전시 준비를 도와줬는데, 이때 현대미술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자연스럽게 현대미술 작업을 하게 됐다. 하지만 구상회화가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그 당시에 이름 없는 작가의 현대미술작품이 팔릴 리가 없었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장으로서 팔리지 않는 작품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 산골에 자리 잡아 별다른 이웃도 없던 작업실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술과 한숨으로 보냈는지를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야기했다. 분명 괴로웠을 터인데 그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모습은 담담했다.

그때 그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주던 것이 술과 함께 작업실 앞의 작은 마당,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산과 들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작업실로 가기 전, 서너 차례 만나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우사로 만든 작업실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사도 아름다운 작업실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확인했다. 우사라는 말을 안 했으면 일반적인 전원 속에 있는 예쁜 작업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업실 앞에는 아담한 앞마당이 있는데, 겨울이라 잔디가 메말라 있었지만 봄철이 되면 얼마나 멋진 공간이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화실 한쪽 옆에는 대나무 밭이 자리해 그 운치를 더해주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대나무가, 어찌 보면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작가의 성격과 비슷한 듯도 했다. 작가 스스로 “너무 솔직하게 말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때는 부정적인 성격처럼 보일 때도 있다”고 말하는 그의 성정을 그대로 빼닮은 듯했다.

노 작가는 한동안 자신의 화실 자랑에 빠졌다. “우울할 때 화실 창을 통해 마당을 보면 벚나무가 먼저 반깁니다. 지금은 겨울이라 이렇게 볼품없지만, 4월이 되면 벚꽃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가히 장관이지요.”


그는 벚나무 줄기가 새끼손가락만 할 때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 둘레가 족히 20㎝가 넘고, 키도 고개를 곧게 하늘로 쳐들어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만큼 여기서 오랜 세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위안도 찾지만 작업에 있어 새로운 기법들도 배워나간다. “현대미술은 새로운 기법 등에 얽매이지 않는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연 속의 조형질서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그림에 스며들게 됩니다. 전혀 새로운 기법이 아니지만 새로운 기법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요.”

그는 사계절마다 엄청나게 큰 숨은 에너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확실한 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그 에너지와 질서를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그의 작업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점점 제 그림이 쉬워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자연의 색채를 그냥 캔버스에 배치시키면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새로운 기법을 찾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젠 가슴, 손으로 느끼면서 그리는 게 그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처럼 그림에 대한 생각이 쉬워지면서 붓과 물감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연필, 분필 등 어느 것이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이것이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자연의 색채가 가지는 멋에 대해서도 긴 이야기를 했다.

“자연에서 얻어오는 색채는 늘 밝고 아름답습니다. 그 색채 속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녹아있기도 하고요. 최근에 제 그림이 더욱 밝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을 듯합니다. 이런 밝은 색상의 사용은 결국 제 시선이 밝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가 몇 년 전부터 선보이고 있는 ‘인연’ 연작에 하트를 소재로 삼은 것도 이런 영향일지 모른다. 그는 하트를 모든 미술의 시작이자 끝인 점으로 바라봤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는 측면에서 점의 중요성은 미술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노 작가는 하트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왜 점을 굳이 하트로 담아냈을까.

“하트는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에 대중적이기도 하고,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만큼 제 그림에 사랑이 넘치고, 그런 사랑을 감상자들이 느끼길 바라는 것이겠지요. 나아가 이 사회가 이처럼 따뜻한 사랑이 충만하길 기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거친 듯하면서도 농담을 툭툭 던지는 듯한 그의 말 속에서 그래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림을 바라보고 대하는 작가의 이 같은 태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은 봄철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작업실 구석구석에서 아름다움이 솟아나고, 보이는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이 된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늘 봄을 기다리고, 이 기다림 자체가 행복이다. 이런 행복을 가르쳐준 곳이 바로 그의 작업실이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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