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    업데이트: 22-12-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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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그림편지] 노태웅 작 ‘제주의 여름’
관리자 | 조회 718
녹음이 점령한 제주 바닷가…일상의 번잡함 빨아들이는 듯
 


노태웅 화가의 일과는 단순합니다. 아침식사 후 오전 9시에 화실(칠곡군 동명면)로 출근을 해서 밤 9시에 퇴근,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도시락을 싸가서 점심을 해결하지요. 오후 서너시가 되면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40~45분 걸립니다. 친구 등 지인들의 부름이 있으면 화실 주변에서 점심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습니다.

거의 화실에서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별달리 할 것이 없어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 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림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요. 골프도 잠시 쳐봤지만 영 흥미가 없고, 다른 운동도 잘하는 게 없습니다. 운동 말고 다른 것도 이것저것 도전해봤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니 흥미가 안 생기더군요. 그런데 그림은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부로 활동하면서 쭉 그려왔는데 한번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림밖에 할 게 없더군요.”

노 작가는 잘 다니던 학교(대구예술대)를 2012년 그만두었습니다. 정년을 10년 남겨두고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온 것입니다. “모든 게 때가 있듯이 그림 작업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경우 정년까지 채우고 나오면 체력이 안 되어서 실험적인 작품을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오로지 작업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는 용기로 던진 사표였습니다.”

그토록 작업에 대한 간절함이 있으니 그의 이같은 단조롭고도 버거운 작업생활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노 작가의 이런 생활을 보면서 역시 그림이 사람을 닮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 작가를 안 지 몇년이 되었는데 그를 보면 늘 다가오는 이미지가 진중함, 성실함이었습니다. 이같은 그의 이미지는 바로 그의 생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같은 안팎의 환경이 작업에도 그대로 스며든 것으로 보입니다.

노 작가는 수십년째 풍경화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냥 자연이 좋아서 풍경화를 그리게 됐다는 그의 자연사랑은 2002년 작업실을 시골로 옮긴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봉덕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가 작업실을 옮겨야 할 상황이 되어 고민하던 차에 동명을 택했다는 그는 작업실이 직장 가까운 곳에 있어 작업시간도 늘릴 수 있어 좋았다는 이야기를 곁들입니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의 부드럽고 진중한 성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이런 성격은 작품의 색상 사용에서 그만의 것을 만들어낸 듯합니다. 풍경화를 그리기 때문에 노란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는데 그 색상이 파스텔톤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깊이있는 무게감을 줍니다. 그래서 자연의 활기찬 생명력에 앞서 평화로움, 정겨움이 먼저 감상자들에게 찾아듭니다. 모래 등의 돌가루를 물감에 섞어 사용함으로써 일반 물감이 주는 마티에르와는 또다른 이미지와 무게감을 연출합니다.

“풍경화이지만 색상 사용이나 표현기법 등에서 평면적 느낌이 나서 작품의 전체 이미지가 자칫 가벼울 수 있습니다. 특히 사물을 단순화해 단조로움이 느껴질 수 있는데 돌가루의 질감이 이런 단점을 보완해주지요.”

노 작가는 최근 색상의 사용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노랑부터 파랑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사용했던 색상을 단색조의 느낌이 나도록 새롭게 구성한 것이지요. 그가 좋아하는 노란색과 녹색을 비롯해 파란색, 갈색 등의 색상을 단색조로 표현한 그림은 기존 작품보다 훨씬 중후한 이미지를 줍니다. 이들 단색조 그림의 바탕에는 흰색이 깔려 있습니다. 한가지 물감에 흰색의 양을 조절해 나감으로써 다양한 층위의 색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제주의 여름’ 역시 단색조의 작품인데 녹색과 흰색을 사용해 녹음이 점령해버린 제주의 바닷가를 담아냈습니다. 짙푸른 녹음과 바다에 마치 해무가 어린 듯 희뿌연 풍광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잡다한 생각과 일상생활의 번잡함을 마치 스펀지로 빨아들이는 듯한 파스텔톤의 다채로운 녹색이 감상자의 눈과 가슴을 가볍고 시원하게 합니다.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노태웅 화가는 계명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여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대구예술대 서양화과 교수를 지냈으며 대구시미술대전과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대구예술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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