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정태성, 현존성과 물성에 대한 사유
객관적인 사물을 표현의 대상으로 하는 구상미술은 오랜 기간 동안 문학이나 종교, 신화 등에 종속되어 왔다. 이른바 순수미술은 이러한 부수적인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표 현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출하고 개성을 발휘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 의 시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과 번안은 동일한 소재를 반복 적으로 표현함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양태와 전형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현대미 술의 다양성은 바로 이에서 기인한다 할 것이다.
작가 노태웅의 작업은 다분히 일상적이고 평이한 풍경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굳 이 특별한 명승이나 빼어난 풍광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저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풍경들이다. 탄광촌이나 기차 역, 그리고 단순한 직선의 건 축구조와 슬레이트로 지붕이 인상적인 서민적 도시 풍경들과 한적한 농촌, 어촌 의 풍경 등이 바로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중심에서 빗겨난 주변의 풍경 들은 대개 호화롭고 화려한 도시적 정서보다는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지니 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의 화면은 마치 작열하는 한 낮의 햇살을 가득 머 금은 듯 눈부시고, 하얀 눈으로 뒤덮여 해맑기까지 하다. 이는 일종의 불일치이 자 부조화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 이토록 해맑을 수는 없다. 더욱이 그것이 중 심과 주류에서 밀려난 주변의 소외된 풍경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작가의 작업은 무겁고 어두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맑고 투명하다. 이는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동시에 그의 작업을 포괄적으 로 개괄하여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체라 할 것이다. 작가는 분명 비록 중심에서 빗겨나 오히려 더욱 치열한 삶의 채취를 지니고 있 는 대상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직접 적으로 조망하거나 반영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한 걸음 물러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의식 을 반영하거나 섣부른 감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침착하 게 대상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사진의 감회를 투영하는 관조적인 것이다. 작 가의 작업이 중심에서 빗겨난 삶의 현장을 담고 있기에 일견 사회성을 띤 리얼 리즘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현장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이성의 차가움보다는 사변적이고 감성적인 따뜻함과 깊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 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현장을 반영하는 주체의 시각도 아닐 뿐 아니라, 제 3 자의 방관적인 것도 아니다. 작가는 정녕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만 의 사유와 사색을 통해 재조합함으로써 육안(肉眼)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심상 (心象)에 호소하는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삶의 현장을 정화시켜 또 다른 풍경으로 환치시키 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치열함이나 소외된 삶의 처연함으로 점철된 현실 의 풍경이 아니라, 사유와 사색을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진 이상화된 풍경이자 정 화된 공간이다.
일정한 형상과 원근, 그리고 투시 등의 합리적인 화면 운용은 작가의 작업이 분 명 구상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저 대상의 객관적인 재현이나 표현에 함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상에 대한 진지한 사유 를 통해 그것의 이면을 반영하고 표출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특정한 사변의 단서 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상투적이고 즉물적인 것이 아니라 함축적인 표현과 은유적인 설정으로 가공되어진 것이다. 작가는 객관을 통해 주관을 드러 내고, 사실을 통해 사유를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작가의 작업은 그저 구상, 혹은 객관의 범주에 드는 것이 아니라 번안된 풍경이자 주관 에 의해 해석된 객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견인하며 작가의 작업 에 일관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인본주의의 따뜻하고 안온한 시각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맑고 투명한 작가의 화면은 극히 정적인 침묵에 휩싸여 있다. 그것은 마치 시간 의 흐름마저 멈춰진 듯 절대 정적에 들고 있다. 비록 치열한 삶의 현장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화면에서는 인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인적의 실종은 그것이 객관의 묘사나 재현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사물들은 번잡 스러운 형상에서 벗어나 개괄되어 함축되어 표현되고 있기에 밝은 빛에도 불구 하고 명암 역시 망실된 듯 약화되고 축소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원근과 투시의 합리성 역시 간과되고 있다. 이렇게 구축되어진 화면은 입체적인 것이라기보다 는 오히려 평면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대상에 대한 구차한 설명이나 수식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단순화된 본질적 형태를 통해 자신의 시각과 사 유를 표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변의 수다보다는 침묵의 심중함을 취하는 작 가의 작업 방식은 오히려 기교적인 수식이나 묘사에 의한 설명 보다 더욱 큰 공 명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구축되어진 화면은 마치 투명하지만 견고한 보 호막으로 보는 이의 시각을 현장에서 유리시켜 세속과 이상을 구분하듯 분명한 경계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객관을 약화시켜 주관을 강조하고, 평면성을 통해 자신의 사유와 사색을 더욱 강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정한 두께와 요철을 지닌 화면은 두텁고 견고하다. 이러한 바탕 위에 작가는 햇살이 내려앉고 눈이 쌓이듯 물감을 더한다. 그것은 단순히 안료에 안료를 더하 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풍경을 정화시키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이 러한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모난 것들은 부드러워지고, 번잡스러운 것들은 정돈되어 함축적인 양태를 지니게 된다. 직선은 수많은 변화를 지닌 또 다른 선 으로 변환되고, 맑고 밝은 색채조차 특정한 의미를 지닌 절대색 처럼 정연하게 나열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땀과 눈물을 담고 있으며, 또 중앙에서 밀려난 주변의 정서와 감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과정 을 거쳐 순치되고 정화된 풍경은 밝고 맑으며 투명하다. 이는 어떠면 작가가 관 조하고 있는 삶에 대한 따뜻한 감성의 또 다른 발현일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긍정과 건강한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그의 작업이 단순한 리얼리즘이나 유미주 의에 국환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지향과 특색을 발현하는 근거가 되 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은 분명 현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표현을 통해 일정한 서정의 아름 다움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그저 구상의 피상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경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마치 빛으로 차단되어진 특정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풍경과도 같은 것이다. 인적을 제거한 침묵의 공간과 햇살과 하얀 눈으로 순치되어 정화된 공간은 현실이 아니라 오히 려 피안의 그것에 가깝다 할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현실의 삶과 애환, 눈물과 땀을 어루만지며 그윽하지만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확인된 애정과 긍정의 시선일 것이 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이미 구상의 한계와 제약에서 벗어나 이상화된 또 다른 풍경을 지향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통해 이상을 구현하고, 사색을 통해 대상의 객관적 상황을 극복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인본적 이상주 의를 지향하고 있다 할 것이다. 작가는 세사의 번잡스러움이나 그늘지고 어두운 것마저도 정화시켜 이상화된 풍경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삶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 적인 시각과 사유를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글/ 김상철(미술평론가)
Space of Silence, Purified Landscape
The figurative art, which is setting an objective thing as its target of expression, has been subordinated to literature, religion and myth for a long time. What is called fine arts can be interpreted as being liberated from such incidental things.
To express one's idea and feelings through subjective interpretations and expression about a subject is no other than the beginning of the modern art. Such diverse interpretations and adaptation can reveal the aspects and patterns different from each other even in the repetitious expression of the similar material, and thus the diversity of modern art can be said to be attributable to the very point.
Artist Roh, Tae-woong's work, for the most part, begins with an everyday, commonplace landscape, which means the artist takes not special scenic spots or distinguished views but familiar landscapes people could easily come in contact with on the edge of daily life. In short, the artist's glance stops at no other than folksy urban landscapes where a building structure with a simple straight line and slate roofs is impressive, and sleepy farming and fishing villages. Generally, surrounding landscapes deviating from the center will mostly assume more dismal and desolate atmosphere than luxurious, colorful urban sentiment. However, the
artist's canvas is brilliant as if it had scorching sunlight of midday in full and even looks lucid with white snow fully covered. This is a sort of inconsistency also disharmony. The actual scene of fierce life cannot be more lucid than this. In addition, it is all the more so because that is a surrounding landscape isolated from its center and mainstream.
Nevertheless, the artist's work is not grave and gloomy but rather lucid and transparent. This could be the very noticeable characteristic of the artist's work and also a cardinal point which explain his works through a conclusive summary of his works.
Though the artist obviously expresses the objects that have somewhat more intense flavor of life by deviating from the center, he never intends to take a view of nor directly reflect the life happening in that space. On the contrary, he is observing the objects at a certain distance with a step back from the grounds for life. That means the artists doesn't reflect his critical mind of society nor expose a thoughtless sentiment without filtering; rather, that means his self-observation reflecting his sentiments cautiously while looking at the objects quietly and calmly.
Of course, some people might read his artwork as outwardly having realism assuming sociality in that his work contains the actual scenes of life deviating from the center, but at least the artist's glance at the actual scenes of life contains speculative, emotional warmth and depth rather than the coldness of reason.
That is by no means an eyesight of a main body reflecting the actual ground of life through aggressive participation, nor the spectator's stance taken by a third partyloutsiderl. The artist is establishing a unique canvas appealing to mental image, not working on a naked eye by re-mixing the things which he truly sees with eyes and feels with his heart through his own thinking and contemplation.
Through such process, he is replacing the actual scenes of life permeated with sweat and tears with another landscape through purification. That's not a landscape dotted with everyday fierceness or isolated pathos of life, but a nicely-filtered, trimmed idealized landscape and also purified space through thinking and contemplation.
Reasonable operation of the canvas, such as a certain form, distance, and seeing- through obviously explain that the artist's work belongs to the category of the figurative. However, the artist never simply caves in to an objective reproduction or expression of an object. In contrast, through a serious thinking of an object, he reflects and expresses its inner side. offering the clues to specific speculation, which is by no means conventional or realistic but processed by connotative expression and metaphorical installation. The artist is exposing the subjective through the objective and drawing his thinking through facts. At this point of view, it can be said that his work doesn't simply belong to the category of the figurative or objective, but an adapted landscape and also the objective interpreted by the subjective.
In addition, the artist's consistent operation on his works while hauling this could be defined as the very warm, tranquil eyesight of his humanism The artist's clear and transparent canvas is swept by extremely static silence, which comes into an absolute quiet as if even the flow of time halted. Though he is using the fierce scenes of life as work materials, it is hard to find any human traces in his canvass. Such disappearance of human traces is remindful of the fact one more time that it is not an expression or reproduction of the objective.
The things on his canvas are expressed in a general, connotative way deviating from complicated shapes, so even light & shade appears weakened and contracted as if it were lost; likewise, the rationality of the distance and perspective is also overlooked.
That's why the artist can express his own eyesight and thinking through simplified substantial forms free from the shabby explanations of objects or intricacies of embellishment. The artist's way of work process in which he adopts the seriousness of silence rather than talkativeness of loquacity comes closer to viewers with the reverberation of very much bigger sympathy than the explanations relying on technical embellishment or description. The canvass set up like this has a definite boundary as if it drew a line between the mundane world and ideal by separating viewers eyesight from the actual scenes with a solid protective shell. In short, the artist is putting an emphasis on the subjective by weakening the objective and also strengthening his own thinking and contemplation all the more through plane property.
The canvas with a certain thickness and ruggedness is deep and solid. On such a background, the artist adds colors just like sunlight comes down and snow piles up.
That is not simply a physical act of adding a pigment to another pigment but a kind of ritual purifying the everyday landscapes. All through this repetitious process, the angled parts of a picture get tender and intricacies are cleared up to assume connotative meanings. A straight line is converted into another line equipped with countless transitions and even a clear, bright color is arranged in good order just like an absolute color having a specific meaning.
Even though his work delineates a fierce scene of life including sweat and tears and it exposes the emotion and sensibility in the surroundings cast away from the center, the tamed and purified landscapes through this process is bright, clear and transparent. This might be another revelation of the warm sensibility in relation with life the artist contemplates. It is a reflection of healthy eyesight for life and also a ground for manifesting his own unique artistic aim with which his work is not limited to simple realism or aestheticism.
The purpose of the artist's work is obviously to spread out the beauty of certain lyricism through objective delineations on the basis of reality. However, the artist's work has a unique boundary that cannot be reached simply by a superficial approach of the figurative. That is just like another landscape which forms a specific space as if to be cut off by light The space of silence getting rid of human traces, sunlight, and purified space which is tamed with snow is not reality but next to the space of Nirvana. It is thought that the artist is seeing the world with his profound but warm eyes while stroking life, sorrow & joy, tears and sweat in reality.
The glance could be the one of affection and affirmation confirmed through serious introspection into human life. Thus, his work could be interpreted as aiming for another idealized landscapes deviating from the mit and restraint of the figurative already. In short, his work, in which he is embodying an ideal through reality and tiding over a subject's objective circumstances through contemplation, could be judged to aim for humanistic idealism. The artist is expressing his warm affirmative eyesight and thinking by purifying and interpreting the intricacies of the world affairs and even the things shady and gloomy as ideal landscapes.
Writing by Kim, Sang-cheol (Art Criti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