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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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46    업데이트: 21-11-04 13:00

소의 소견
아트코리아 | 조회 971

소의 소견

                                                              박숙이


노인의 몇 배 되는 덩치 큰 황소를 시장한 저녁이 몰고 간다

황혼이 황혼을 최선을 다해 비출 때 워낭소리가 점점 깊어진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며 중얼중얼거리는 노인의 헌 그림자

따라가던 소는

소는 왠지 자꾸만 뒷걸음쳐 딴청을 피우고

그럴수록 노인의 부리는 목소리가 소를 우렁차게 내리친다

노인을 일바시는 소의 소견이 참, 백 근도 더 넘겠다



- <유심(惟心)> 2015년 9월호 -

[ 영고개 단상 ]

박숙이 시인은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98년 <매일>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99년 <시안> 등단. 시집으로 <활짝>이 있음
※소견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보고 헤아리는 생각, 올바로 인식(認識)하거나 올바로 처리(處理)할 수 있는 능력(能力)

※일바시다 : ‘일으키다’의 경남 지방 방언

이런 풍경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 싶을 만큼 아주 향토적이다.

늦은 저녁때, 시장한 노인이 덩치 큰 황소를 몰고 간다. 황혼이 절정일수록 노인의 마음은 급하기만 하여 덩달아 워낭소리 깊어간다. 어제 기운이 다르고 오늘 기운이 다르다며 중얼거리는 노인의 힘없는 그림자를 따라가던 소는 자꾸만 뒷걸음쳐 딴청을 피우고, 그럴수록 노인의 소를 부리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마치 딴청을 피우는 소가, 잦아드는 노인의 기운을 일으키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소의 소견이 참, 백 근도 넘는 듯하다.

<들구산 영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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