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박숙이 감자를 깎으며 알았습니다 감자는, 감자의 눈이 잘 발아한 만큼 감자가 달린다는 걸, 발아란 싹이 튼다는 뜻인데 감자역시도 우리 처음 만날 때처럼 눈에서 먼저 사랑이 은근히 싹튼다는 걸 알았습니다 눈에서 먼저 사랑이 파랗게 싹튼 후로는 흙에 스며들어 그 사랑이 둥글게 둥글게 옹골차게 완성될 때까지는 눈을 감자 눈을 감자 있는 눈도 없는 척 봐도 못 본 척, 하여, 지금 눈앞의 감자가 눈을 적당히 감고 있습니다 바람 앞에서도 눈 감고 돌부리 앞에서도 눈 감고 어둠속에서도 눈 감고 웅덩이 속에서도 지긋이 눈감자고 수백 번 아니 수 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실행했으므로 우린, 여기까지 넌출넌출 둥글게 온 것입니다 감자는, 여러 개의 눈으로 자신을 과묵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 아 둥근 삶이란, 조용히 눈 감을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