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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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46    업데이트: 21-11-04 13:00

감자
박숙이 | 조회 961
감자

박숙이

감자를 깎으며 알았습니다
감자는, 감자의 눈이 잘 발아한 만큼 감자가 달린다는 걸,

발아란 싹이 튼다는 뜻인데
감자역시도 우리 처음 만날 때처럼
눈에서 먼저 사랑이 은근히 싹튼다는 걸 알았습니다

눈에서 먼저 사랑이 파랗게 싹튼 후로는
흙에 스며들어
그 사랑이 둥글게 둥글게 옹골차게 완성될 때까지는

눈을 감자 눈을 감자
있는 눈도 없는 척
봐도 못 본 척,
하여, 지금 눈앞의 감자가 눈을 적당히 감고 있습니다

바람 앞에서도 눈 감고 돌부리 앞에서도 눈 감고
어둠속에서도 눈 감고 웅덩이 속에서도 지긋이 눈감자고
수백 번 아니 수 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실행했으므로
우린, 여기까지 넌출넌출 둥글게 온 것입니다

감자는, 여러 개의 눈으로 자신을 과묵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 아 둥근 삶이란, 조용히 눈 감을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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