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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술, 나의 삶]평면입체예술가 박종태 / 2020-03-15 / 매일신문
아트코리아 | 조회 562
  1. [나의 예술, 나의 삶]평면입체예술가 박종태
 



박종태 작 '무제(blue)'

박종태 작 '무제(red)'

박종태(55)는 평면입체예술가이다. 최근 10년 사이 그는 판넬 위에 물성을 도드라지게 한 '심연-유(遊)'시리즈에 몰두하고 있다. 미술사적 흐름에서 보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조는 내용적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형식적으로는 색, 형태, 구성 등을 최소화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어 '차가운 미술'로도 불린다.

작가는 도드라진 물성에 파랑, 빨강, 검정 등의 단일색을 입힌다. 특히 그가 좋아한다는 파랑색의 '심연-유' 작품을 가까이서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관람객은 마치 바다 속 깊은 심연의 세계에 빠져들거나, 아니면 의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로 잠깐 길을 잃는다. 이런 이유로 그의 블루계열 '심연-유' 작품에 '심연의 블루'(Abysmal Blue)나 '무의식의 자아'(Unconscious Ego)라는 별칭을 부여하고 싶어진다.

박종태의 고향은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로 이곳에 그의 작업실이 있다. 하지만 대형 평면입체 작품을 제작하기에 비좁아 3년 전부터 경산 진량읍 대원리에 330㎡ 넓이의 창고형 작업실 하나를 더 얻었다.

"제 고향엔 고인돌과 마을 뒷산에 토기 매장 유물이 많아서 어릴 적에 그것들을 모으는데 관심이 컸고 초교시절엔 막연히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미술을 접하기에 열악한 환경 탓에 작가는 누나나 형이 보던 미술책을 모아 혼자서 그림공부를 했다. 고교 때는 미술부에서 활동하면서 이젤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그때는 재능보다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찌 보면 작가의 고향산천이 그의 예술적 감성을 일깨워준 스승인 셈이다. 또 이러한 그의 예술적인 감성은 미술대학 대학원을 나온 후 서울에 교사자리가 있었음에도 거절하고 동료작가 김규동, 최상흠 등과 함께 고향에 집을 짓고 자연과 함께 예술 활동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2000년으로 기억하는 이때가 작가에 따르면 '감성의 극대화, 돈벌이의 최소화'를 모토로 삼았지만 삶은 행복했다고 한다. 사실 박종태는 군복무를 마친 후 영남대 조소학과(90학번)를 진학한 늦깎이 학생으로 그의 원래 전공은 조각이다.

2012년 박사과정에 입학한 작가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기존 작품에 대한 변화의 시기를 겪는다. 이른 바 조각에서 평면입체로의 전환이다.

3차원인 조각 연구를 통해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인 입체를 가미한 그의 작품은 초기에 '종이에 관한 생각'이란 타이틀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입체성을 가진 잡지나 신문을 잘게 찢어 해체한 후 다시 그 조각조각을 판넬 위에 올려 물성만을 갖고 재구성한다든지, 집에서 신던 슬리퍼를 잘게 조각낸 후 판넬 위에 다시 이어 붙여 변형된 슬리퍼의 형태를 만들어 보거나, 또는 유리병을 깨뜨린 후 그 조각들을 다시 이어붙이는 작업 등이 작가에게는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부수는 행위와 재구성하는 행위 가운데서 하나의 조형언어로서 드러난 작품의 미니멀적인 의미는 박종태의 예술적 감성과 찰떡궁합처럼 맞아떨어지게 되면서 평면입체작업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평면입체작업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노동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노동을 통해 나의 풍부한 감성의 모태가 되는 내면세계도 함께 성찰해 볼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 관객들에게도 각자의 내면을 성찰해 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죠."

작가는 풍부한 감성만큼 대학시절 독서량도 누구 못지않게 많았다. 그러던 것이 평면입체작업을 하면서 그 많은 철학, 사회학 관련 책들이 잘게 부서져 그의 작품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2017년부터 시작된 '심연-유'시리즈에는 이 책들이 작품의 주요 물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작업과정을 보면 우선 잘게 찢긴 책 종이를 수성접착제로 고형화하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해 완성하게 되는 과정이 '심연-유'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심연-유'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먼저 각광을 받았다. 2016년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에 출품된 박종태 작품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물성, 내면을 비추는 색감으로 인해 많은 컬렉터로부터 관심을 끌었고 작가에게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이어 2019년 여름 스위스 취리히 아트페어에서는 출품작들이 모두 '솔드 아웃'(매진)되면서 현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컬렉터들의 '엄지척' 세례를 받았다.

"장르나 고정관념을 파괴해 나가는 것이 저의 예술관입니다. 조각과 평면입체작업도 계속 할 것이지만 설치와 작품에 대한 영상작업도 병행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올해도 스위스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대학 졸업 후 예정됐던 서울의 교사 자리를 박차고 고향에 온 아들을 보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의 어머니의 얼굴에 이제는 웃음꽃이 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