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22-12-09 10:59

언론·평론

[평론] -박형석의 벽화_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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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석의 벽화_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타임캡슐

글/ 김윤섭(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비움, 가장 완결한 충만 최근 박형석의 그림은 비어있다.

평면적인 단색조와 거의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형상이 화면의 주조를 이룬다.간혹 몇몇의 색점이나 뭉그러진 형상이 시각적인 자극을 시도 하지만 화면의 전체를 감싸고 있는 정적을 깨우긴 역부족이다. 그의 95년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초창기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한 색변분할 혹은뚜렷한 형상과 기호로 화면을 운용하며 ‘외향적 힘’을 쫓은 것이 사실이다. 두터운 장지에 짙은 채색을 선호했던 작품들은 흡사 진물이 채 마르지 않은 벽화의 한 쪽을 연상시킬 정도였으며, 집요한 미욕(美慾)의 집착과 연민이 읽혀졌다. 적어도 2000년도를 고비로 그 이전까진 그렇다. 이는 작품명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탁과 토혼> 탈춤 그리고 <유산>시리즈가 구체적인 형상에 의존한 전반기였다면, <공존> <現> <新-전성기> <신라이미지>등과 같이 점점
풀어지는 형상과 보다 대의적이고 이상적으로 전화하는 작품명으로 볼 때, 이 때를 최근의 경향이 시작되는 중반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는 <무희들>

<사냥도> <악사> <삼족오> 등 다시 직접적인 명제로 따르되, 그 표현양식은 생략법을 주되게 적용하여 개념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반기를 축으로 양쪽의 두 시기는 외형적으로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가. 이는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인 자극’에  의존하는 것보단 그 이면의 무언,
‘또 다른 경계’ 가 있음을 작가는 감지하게 됐음을 뜻한다. 옛 화론에 망필묵지기 시시득진경(忘筆墨之技 始寫得眞景, '기술'을 초월할 수 있어야 궁극의 경지가 열린다) 라고 전하듯. 무시결에 반복되는 자신의 습성속에서 보다 발전적인 대안을 찾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특정한 형태나 기법은 작가가 추구하는 본질을 구현하는데 그렇게 크게 작용하지 않음을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말의 독창적인 창(窓)으로 관객을 초대하길 원한다. 작가 박형석이라고 예외일수 없다. 좀더 강한 매혹을 위한 시도와 실험, 보다 명확함으로 설득력 있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바람은 누구든 간에 당연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박형석도 어느 순간 화면에서 아무리 대상을 좇아도 그것은 생각의 그림자일뿐 대상 자체는 될 수 없음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대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객을 맞을 그만의 창, 그 경계마저 놓아 버리고 소통할 수 있는 여유를 ‘비움’ 으로 대신하고 있진 않을까.오히려 비움으로써 더 많은 것을 채울수 있는 이치 말이다. 최근 그가 보여주는 화면의 매력은 바로 비움의 배려’ 이다. 

감필(減筆)과 여백의 미학이 두드러진 문인화의 절제된 미가 엿보이듯, 그렇게 어느 경계를 향한 천착을 지속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형상을 구했되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며, 사물의 외형에 마음을 두지 않고 작가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한다는 동양화 그 본질에 닿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결국 이와 같은 무소유의 잔잔한 파동은 관객에게 자아 담백하고 진실한 긴 여운을 전하기 마련이다.  시간을 엮는 연금술사의 미학 작가 박형석을 만나본 이라면 그 첫인상에서 진중함을 읽었을 것이다. 답답할 정도로 가라앉은, 한번 그 밑을 휘저어 앙금을 쓸어내고픈 인상이 랄까. 아무튼 박형석의 시선은 두 곳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듯 묘연한 깊이를 지닌다. 전반적으로 흐릿한 화면의 작품 역시 그대로 그를 닮아 있었다.

초점이 흐려진 무시할 수 없을 법한 무게. 도대체 몽롱한 이 냄새의 정체는 무얼까. 몇 마디, 아니 몇 분의 시간을 감내한다면 금새 알 수 있다. 그 냄새의 진원지는 시간여행이었다. 아주 먼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후, 잠시 홍채의 조리개를 가늠하는 동안 느끼는 부담스럽지 않은 현기증. 작가의 시선과 작품에 잠겼던 아련한 깊이는 바로 수많은 시간의 여정이 숙성된 향과 맞닿아 있었다. 작품에 담겨진 그의 화두는 바로 이러한 ‘시간의 연속성’ 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역사에 대한 테마를 작품에 담아오고 있는 박형석의 역사적 안목과 수준은 적어도 신라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에 있어선 여느 역사학자에 이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천년 고도 경주가 고향인 그는 유년기부터 이미 자연스럽게 신라 선조의숨결을 온몸으로 채득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곤 그 체험들은 고스란히 청소년기 미술활동에 묻어나게 되고, 집안 종손인 덕(?)에 한동안의 외도를 거쳐 만학도로 다시 미술대학을 졸업해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현재까지이어진다. 오랫동안 숙성된 와인일수록 깊은 향을 품어내듯, 그렇게 조금 조금씩 숙성의 깊이를 더해간다.

 

“박형석의 그림을 대하고 있으면 우리의 전통회화는 민족정신의 독자적 체험질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재료상의 문제나 기법적인 측면의 세계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정신적 가치규범에 대한 민족적 동질성의 확인 뒤에 오는 독자적 조형언어의 모색으로 대변되는 그의 작업의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그는 끊임없이 시간의 궤적을 초월하는 역사적 공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반성적 자기 성찰, 그리고 그 바람직한 수용에 골몰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 의미되어지는 역사공간이란 우리 민족이 겪어온 정신적 체험의 공간이다.”     
  

 (1995. 대구문화예술회관 첫 개인전에 쓴 민병도 글 중에서) 송대의 곽약허(郭若虛)가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서 작가의 마음은 작품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심인설(心印說)을 설했듯, 박형석의 마음속 갈망은 그의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초대한 역사의 사자(使者)는 작품이란 긴 세우러의 통로를 관통해 현재의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을 과통한 그만의 멜로디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벽화이미지로 재현된다. 최근 정제된 단색조 악보에서제 리듬을 되찾은 역사적 증거들은 고구려 벽화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굳이 이제와 새삼 고구려인가. 또 너무나 많은 이들이 우려내 닝닝한 고구려 벽화란 말인가. 그 옛날 고구려의 것은 역동적인 에너지와 기상이 묻어난다면, 박형석의 것은 정중동(靜中動)휴지기의숙면중인 정적인 벽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작업에서 알 수 있듯, 처음엔 채색화의 원류로써 혹은 선조의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숨결이 스민 벽화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한 외형적 집착에서 벗어나, 그 이면의 것에 눈을 돌린다. 먼 옛날 자주적인 선조의 세계관, 교관, 생활상 등 무형의 관념들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근원적인 시작점에 가장 가까이다가갔다가, 한 번 더 비틀어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되새김을 하고 있다.
 

“우리 문화나 정신적인 근간은 우리 안에 있다고 봅니다. 특히 혼재된 정세 속에서도 각각의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삼국시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고향이 신라의 수도 경주였기에 신라이미지 를 작품의 첫 테마로 삼았지만, 그 표현의 영역은 점점 그 주변국으로 옮아 가고 있지요.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30여 점은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민족적 정기를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정체한 결과물들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벽화의 문양이나동세, 구도보다는 그 안에 잠들어 있는 함축적인 정신세계를 담아 내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관심은 결코무분별한 회귀나 퇴행이 
아닌, 발전적인 미래로의 진일보를 위한 잠깐의 운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이런 성과물을  바탕으로 해외전에 적극 참여할 계획입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연구하는 작가’ 로 통하는 박형석은 이번 일곱 번째 개인전에서도 새로운 성과들을 선보인다고 한다. 전통적인 재료라 할 수 있는 분채, 호분, 석회, 아교, 먹에 천연돌가루와 과슈 등 실험적인 재료들이 첨가되는가 하면, 흙 판에 이미지를 새겨 구워낸  도벽작업은 독립적으로 혹은 다른 평면작업과 재결합되기도 한다. 특히 이 도벽작업은 고구려 벽화 분위기를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차용하기에 적합한 대안일 수도 있겠다. 진리는 자신의 눈썹 밑에 있다는 격언처럼, 작가 스스로 가장 자신 있게 알고 있는 것을 가장 쉽고 편안하게 작품에 담아내려는 박형석의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얻어진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다면, 바로 그 작품이 관객에게 가장 큰 호소력을 가짐은 당연하다. 박형석이 비워낸 자리의 깊이만큼 그 감흥의 여운은 지속되리라 기대한다.
 

Park Hyung Suk View Of Art Briefly

First of all, I'd like to introduce my view of art briefly.
A tendency in  my school days was mainly focused on light coloring by water and korean ink.

Thereafter, in the late 80s. I tried color painting with the study on

Gogooryeo murals and after several trial and error, started to show color painting works.

So, probably the artistic elements of shilla relics that could meet wherever I went to gyeoung-ju area, in childhood, have much effect on themes of my work and result in pursuing the external energy by using signs, figures and section of shilla image.

But, about the time of 2000, was gradually more absorbed on expressing something of inside than external shape and was sympathized with say of ancient art theory, that is  (to say),
"the eternal state is beyond technique".

In the firm faith that the appearance we know nothing but a passing phenomenon than a substance, I have persistently persuaded space or emptiness as the main subject in my works and also hereafter pursuit to gain for substantiality will be continued.

I will devote myself to make the works sharing korean emotion and contemporary modeling sense on the basis of giuoonsengdong (energy, liveliness, movement), beauty of blank space and rhythm that consist of core elements of the Oriental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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