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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1    업데이트: 22-03-10 10:26

언론평론 자료

‘Happy tree’ 시리즈 행복을 그리는 작가 노애경 2015.02.23
아트코리아 | 조회 838

‘Happy tree’ 시리즈 행복을 그리는 작가 노애경

 

[피플투데이 선임기자 박정례]= 경북 청도가 고향인 노애경 작가, 그녀는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유난한 사람이다. 그녀의 그림에서도 심지어 블로그나 칼럼과 이야기 속에서도 어김없이 물안개며 복사꽃 만발하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어릴 적 노닐며 그녀를 키우고 달래주던 고향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흐른다.

  
 

 
 

 

지난해 노애경 작가는 청도군 기획초대전으로 ‘아름다운 청도 풍경전’을 청도 소싸움테마파크 전시장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고향의 풍경은 타지에서 오랫동안 머무를수록 더욱 애틋해지는 모양이다. 대구매일신문에서 엮은 지역 명사 60인의 ‘나의 살던 고향은’ 이란 글을 읽어보면 서양화가 노애경이 자라온 청도 금천에 대한 자랑을 엿볼 수 있다. 봄이면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복사꽃 물결과 가을이면 주홍빛 홍등을 매단 감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고향이다. 이런 곳에서 어릴 적부터 문학적 감성을 키우고 그림이 될 만한 소재들을 가슴에 넉넉히 품어서 일까, 그녀의 풍경화를 보면 어느 시골에선가 한번쯤 보았음직한 친근함과 따뜻함이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 편히 머물게 한다.

 

소질이 없다면 모를까 이왕에 타고난 끼와 소질이었다. 오늘 날에 와서는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쟁여 둔 그 세월만큼이나 얼마나 큰 약이 되었는지 모른다. 쌓인 두께만큼이나 단단한 내공을 불러내 글을 쓰고 신명난 듯 활달한 붓질로 화폭을 채우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타고난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애경 작가를 만난 것은 그녀의 갤러리 겸 화실이 있는 대구에서였다. 한 칸에는 그녀의 그림과 소장품을 전시해 놓은 ‘앤 갤러리’가 다른 한 칸에는 수강생들에게 그림지도를 하며 그림 작업을 하는 작가의 화실로 나뉘어 있었다.

 

특이한 이력과 함께 학업의 길로 들어선 주부 작가의 반란

 

노애경 작가의 이력은 특이하다. 글과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질을 잠시 접어둬야만 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시기까지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았으니까 말이다. 가슴속에 불씨처럼 묻어두고 살아온 예술적인 끼를 둘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에야 꺼내들기 시작했다. 대구 화단에서 수채화가로 유명한 박찬호 화백을 만나서 화업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어릴 적 꿈이 화가, 작가, 선생님이었다는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 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노애경 작가는 한걸음 더 나아가 만학도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을 한다. 

 

 

 

 

노애경 작가는 2001년에 첫 개인전을 열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03년에는 계명대학교에 입학하여 만학의 길로 들어서 서양화를 전공한다. 대학 4학년 때는 학우들과 팀을 이뤄 러시아 레핀아카데미에서 한 달 간 전공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할 때는 중등미술 정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된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나자 제대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은밀하게 벼리고만 있었던 끼와 소질을 폭풍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해가 더해 갈수록 그림에 빠져들었고 창작열은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글 솜씨도 받쳐줬다. 덕분에 지역신문인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에 문화칼럼을 연재하고 최근 2년 동안은 매일신문 시민기자로도 활동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가족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녀가 이처럼 늦게나마 화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꿈을 포기하지 않은 본인의 의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학업을 이룰 수 있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 남편에, 개인전을 열 때마다 스폰서가 되어 준 시부모님의 몫도 컸고, 엄마가 가는 길을 묵묵히 응원해 준 자녀들까지 그녀를 지지해주는 가족의 빛나는 응원은 변치 않는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01년도에 첫 개인전을 열 때도 웃지 못 할 숨은 이야기가 있다. 노 작가는 남편과 함께 자영업을 하며 붓고 있던 3년 만기 500만 원 짜리 적금을 타게 되자 그 돈으로 작품전을 열겠다고 선언하고 남편의 허락을 흔쾌히 받는다. 노 작가는 비로소 자신만의 단독전을 열게 되었고 전업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갈 수 있었다.

 

1인 다역 ‘작가, 칼럼니스트, 갤러리관장, 재능기부가

 

타오르는 불꽃을 잉걸이라고 했던가. 그간 화풍의 변화는 눈부셨다. 수채화 작업을 통해서 풍경을 위주로 작업해오던 것을 2009년부터 유화작품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수채화로 다진 탄탄한 실력은 유화작업에 이르면서 한결 무르익기 시작한다. 꽃과 과일 정물- ‘향기’ 시리즈를 발표해오다 2013년부터 브로콜리를 나무로 형상화한 ‘행복한 나무(Happy tree)’ 시리즈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흔한 말로 작가들이 전시회를 할 때 관객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하면 화풍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노애경 작가는 '그림이 팔리는 작가‘로 꾸준한 호응을 받으며 성장해온 사람이었다. 하여 갤러리를 열 수 있었던 힘도 자작(自作) 그림을 판매하여 마련한 여유자금으로 소장품들을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꽤 인기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하겠다. 하지만 언제나 도전정신! 수시로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 자신의 노력과 창의성은 작품제작의 과정을 즐기는데 가치를 두고 있었다. 작가는 지금 진행 중인 Happy tree 시리즈가 너무 재미있단다.

 

해피트리 시리즈를 살펴보면 대부분 연인이 등장한다. 나들이 나온 자전거를 해피트리 옆에 세워놓고 나무위에서 남자는 여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그림 속 나무 위 여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그 아래서 남자는 노래를 부른다. 그림마다 재미있는 스토리가 넘친다. 브로콜리는 아무리 잘게 잘라도 ‘한그루의 나무가 되더라,’는 작가만의 시각은 참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해피트리의 넉넉한 그늘 아래 남녀가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것을 보니 동화 같은 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동심이 엿보인다.

 

노애경 작가는 작가활동과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대규모 미술시장으로 일컫는 아트페어에 작가를 선정하여 참여하는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 손수 기획가가 되어 각종 아트페어에 참여하는데 부지런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재능기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소득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미술)를 한 공으로 자원봉사 상을 받기도 했고 지금도 홀트 복지관과 교회문화강좌의 수채화반을 맡아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술과 관련한 강의도 한다.

 

작가 노애경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작가로서의 역량과 기질, 연탄난로처럼 따뜻한 인간애를 느낀다. 하하 재밌다. 호호 신난다. 작가는 이후 우리에게 어떤 세계를 펼쳐줄까. 기대해본다. 


박정례  8434pj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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