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    업데이트: 17-07-17 10:08

NEWS

[문화산책] 문인화의 멋
아트코리아 | 조회 993

 

매년 3월이면 으레 우리집 동쪽 베란다에는 춘란이 꽃을 피운다. 화분에 뿌리를 내린 고고한 자태의 한 송이 난꽃이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피어난다. 봉오리 때는 하얀 포 위에 싸여있다가 봉오리가 열리면 다섯 개의 꽃잎이 두 팔을 벌리고 다소곳이 자태를 드러낸다. 춘란의 청초한 모습과 고결함이 나로 하여금 신선한 정감에 젖어들게 하곤 했다.

난은 문인화의 한 화목으로, 지금까지도 즐겨 사용되는 소재다. 나 역시 문인화 소재로 난을 좋아한다. 난이 군자의 기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30여년 전부터 교사생활을 하면서 여가를 틈타 문인화를 접했다. 이후 난의 매력에 빠져 난을 치면서 문인화의 세계에 더 깊숙이 젖어들었다.

동양예술의 정수인 문인화는 학덕을 겸비한 문인들이 그들의 심미관과 예술적 취미를 외물을 빌려 은유적으로 표출하는 그림이다. 문인화의 본질은 문인정신이 함유된 사의성이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형상적인 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내재된 인품과 정신세계를 중시했다. 즉 문인화가들은 자아를 사물에 투영하여 그것과 상응시킴으로써 자연과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창작의 주역이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문인화가에게는 어떤 예술 장르의 작가보다 인생과 사물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총명함과 통찰력이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서양의 예술이 사실적 모습의 설명에 주력하는 반면, 동양의 예술은 인생을 함축하여 표현하고자 한다.

문인화의 본질인 문인정신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송나라 말기의 유신 정소남은 나라 잃은 설움을 “내 난초 뿌리를 감추어 숨길 땅이 없노라”라고 표현하며 뿌리가 드러난 난초 그림을 그려 침략자에게 항거하는 기개를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난초를 비롯한 사군자를 치는 행위 자체가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민영환은 뿌리가 드러난 난초, 즉 ‘노근란(露根蘭)’을 통해 흔들리는 국권을 암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문인화는 구체적인 것보다는 생략적이고 함축적이며 간결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현대인의 미적 감수성에 접근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문인화가 전통적인 가치를 중심에 두면서도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표현양식으로 다시 각광받을 수 있는 미술분야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멋있는 문인화! 오늘도 더욱 더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미란 <대구문인화협회 부회장>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