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    업데이트: 18-05-24 09:15

중국서예작품

서위
아트코리아 | 조회 999


[서위 소개]
 
서위(徐渭)는 점차 미쳐간다. 계속된 과거 낙방, 연단술에 심취, 과음, 가세의 몰락과 가난이 그를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적 광기는 大寫意畵를 선물했다. "형사를 구하지 않고 생동하는 운치를 구한다!"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에 가까운 서위의 미학은 광일(狂逸)이다. 逸은 초탈하여 구속됨이 없음을 말한 것으로 소요유가 미적 범주화된 것이다.  동아시아 미술의 진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광일은 모든 분류와 경계를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여기서 기괴함과 추함은 아름다움과 하나로 만난다. 서위의 미는 기괴의 미, 추의 미라고 할 수 있다. 

시대와의 불화가 우울이나 광기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사실 서위가 살았던 명나라는 狂이 공공연히 천명되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명대를 풍미한 양명학은 인욕의 긍정을 통해 개체의 해방으로 나아가는 근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지와 서위는 이러한 양명학을 극단화한 양명좌파의 인물이다. 자신의 저서를 태워버려야 할 책이라며 焚書라 명명했던, 이지가 주장한 童心은 단순히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도덕률이나 지배 이념에 물들지 않고 외부의 강제에 구속되지 않는 꾸밈없는 본연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동심은 자칫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과 광기로 치닫기 일쑤였다. 

서위의 그림은 바로 童心의 그림이다. 서위의 그림은 그 어떤 그림보다 순수하다. 일체의 집착, 일체의 구속, 일체의 머뭇거림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의 법식에 얽매이지 않는 혼돈의 무법 속에서 일획의 법을 이끌어 내는 석도의 일획론은 서위에게서 이미 탁월하게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집착 없이 마음속 逸氣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한 예찬의 미학을 진정으로 계승하고 실현한 것 또한 서위의 대사의화들이다. 

광기와 궁핍 속에서 73세의 서위는 쓸쓸하게 죽어갔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이후 석도와 팔대산인, 양주팔괴, 오창석, 제백석 등의 청대와 근대의 위대한 화가들은 어김없이 서위의 대 사의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그에 대해 하염없는 존경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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