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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고사

침대의 다양한 용도
아트코리아 | 조회 794

 

 

2009/4/24

“床,字 

 

 

 

漢字의 옛이야기

 吳東平

 

  중국작가 오동평의 <한자의 옛이야기>를 매일 번역을 합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윤수님과 송흥기님을 보면서 저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자의 옛이야기>는 중국

 음운학과 훈고학을 전공하신 오동평 교수의 저작입니다.  2006년 6월에 출간된 이 책에는 한자의 획의

순서에 따라 한자씩 이야기해나갑니다. <한자의 옛이야기>에서는 한 필에 담긴 옛이야기 들려주고

 한 획속의 맺혀있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글자 한자한자 속에 담긴 옛이야기를 통해 한자의 깊은

 의미를 알려줍니다. 오동평과 함께하는 한자 옛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바랍니다.   민승준/     

  

    吳東平님의 漢字의 故事  http://data.book.hexun.com/book-368.shtml 

오수형님의 한자이야기  http://blog.daum.net/woobo21 

 

 

靜夜思

이백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머리맡에 밝은 달빛,  땅에 내린 서리인가.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古代床的用途多

옛날에는 침대의 용도가 다양했다.

“床”字

 

  一个老师在讲授李白的《静夜思》

“床前明月光,疑是地上霜。举头望明月,低头思故乡”时,

有一个学生当面问老师:

李白睡在床上,怎么好“举头”、“低头”呢?

这位学生由于不知道古代的床是既可卧,又可坐靠的家具,

也就不会想到此时的李白不是卧在床上睡觉,而是坐在床边。

 

한 선생님이 이백의 시 <정야사>

“床前明月光,疑是地上霜。举头望明月,低头思故乡”를 강의할 때,

한 학생이 그 자리에서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이백은 침대에서 잘 때 어떻게 고개를 숙이고 들었나요?

이 학생은 고대의 침대가 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앉아서 기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또한 그 당시의 이백이 침대위에 누워서 잠을 잤다고 생각되지 않었다.

사실 이백은 침대에 기대 앉아있던 것이다.

 

  床是人工制造的最早的家具之一。“床”的繁体字为“ ”。

在商代甲骨文里,“床”字写作“”。如果我们把它横放,就成了“ ”,

既有床板,又有床腿,可供休息和睡眠,是象形字。

甲骨文中“床”字的出现说明,在三千多年前人们就已开始使用床了。

 

 

 

 

침대는 사람이 제조한 최초의 가구중의 하나이다.

“床”의 번체자는 “牀”가 된다.

상나라 갑골문에서 “床”자는 “ ”로 쓰여졌다.

만약 이 갑골문을 가로로 놓는다면 바로 “ ”게 될 것이다.

바로 침대판이 있고 침대 다리가 있는 것으로 쉬고 잠잘 수 있는 모습의 상형자이다.

갑골문은 “牀”자의 출현은 3000년 전 사람들이 이미 침대 생활을 시작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河南信阳长台关曾出土过一张保存完好的漆木床,

长2.18米,宽1.39米,床腿高19厘米。

经考证,为战国时楚国人使用过的床。 

床的周围有栏杆,两边栏杆留有可以上下床的地方。

床体施以黑漆,装饰红色方形云纹,6条床腿雕成长方卷云形。

床框有两条横带,一条竖带,上边铺着竹编的床垫,床上有竹枕。

这是我国目前发现最早的床。魏晋以后,随着房屋增高,居住面积加大,

床的种类日益增多,在晋代大画家顾恺之画的《女史箴图》中,

床的高度已和今天的床差不多了。

 

 

  《说文解字•木部》:“,安身之坐者。从木,爿声。”

段玉裁注:“床之制略同于几而庳(低)于几,可坐。故曰安身之几坐。”对床的作用。

《释名•释床帐》也讲得很清楚:“人所坐卧曰床。床,装也,所以自载也。”

说明床除坐卧之外,还可以装东西。事实也是如此。

古人常在床上放上小几,用来就餐、读书、写字。

小篆和繁体字的“床”在结构上相同。

如果从甲骨文来看,小篆和繁体字的“床”是在甲骨文“床”字的基础上加一“木”字而成,

“木”表示古代的床所使用的材料。

应该说“床”是会意兼形声字。由此我们可以推知,

甲骨文时期的“床”使用的可能是其他的材料,如在石板下面放几块石头做脚,

将石板支起来就成了床,后改用木制。

“床”字形体的变化反映了劳动人民的智慧,也反映了人类正向着文明逐步迈进。

 

 

 

 

중국 역사상 위대한 시


靜夜思

이백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머리맡에 밝은 달빛

땅에 내린 서리인가.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고향’을 떠올렸을 때 중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백의 명시이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외우는 시이기도 하다.

독음과 뜻이 모두 명려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시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향수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 때문에 천 년이 넘도록 중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시로 자리잡은 작품으로

복잡한 사상이나 화려한 수식 대신, 가장 담담하고 소박한 필체로

 풍부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묘사한 시이다.

 

 

遊子吟

맹교


慈母手中線

游子身上衣

 인자하신 어머니 손에 실을 드시고

 떠나는 아들의 옷을 짓는다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먼 길에 해질까 촘촘히 기우시며

돌아옴이 늦어질까 걱정이시네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한 마디 풀 같은 아들의 마음으로

봄 볕 같은 사랑을 어이 갚으랴.

 

 A TRAVELER'S SONG


  The thread in the hands of a fond-hearted mother 
  Makes clothes for the body of her wayward boy;


  Carefully she sews and thoroughly she mends, 
  Dreading the delays that will keep him late from home.


  But how much love has the inch-long grass 
  For three spring months of the light of the sun?

 


모정을 읊은 송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정인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봄 볕에 비유한 마지막 두 구는 지금도 널리 쓰이는 비유이다.

 화려한 시어는 없지만 담백하고 소탈한 어투 속에 배어 나오는 아름다움은 진하다.

 

 

賦得高原草送別

백거이


離離原上草

壹歲壹枯榮

우거진 언덕 위의 풀은

해마다 시들었다 다시 돋누나.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

 

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

아득한 향기 옛 길에 일렁이고

옛 성터엔 푸른빛 감도는데

 

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

그대를 다시 또 보내고 나면

이별의 정만 풀처럼 무성하리라.


백거이의 이 시는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

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시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또한 한 구절 한 구절 세심하게 공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七步詩
조식


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콩을 삶는데 콩대를 베어 때니

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조식은 조조의 셋째 아들인데

재주가 워낙 출중해 아버지인 조조에게서 총애를 받고,

형인 조비에게서는 심한 질시와 견제를 받았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조식을 견제하며 해치울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명령하며 만약 그 동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에 처하겠다고 말한다.

이 때 조식이 지은 시가 바로 ‘칠보시’로,

조비는 이 시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고 한다.

 

登鹳雀樓

왕지환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裏目

更上壹層樓

눈부신 해는 서산에 기대어 지려하고

황하는 바다를 향해 흘러 간다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어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르노라.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층 더 누각을 올라가는 것’이다.

 더 멀리 보고 싶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시이다.

 

 

 

九月九日憶山東兄弟

왕유


獨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遍插茱萸少壹人

홀로 타향서 나그네 되니

명절 때마다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다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산수유 꽂으며 놀 적 한 사람이 적음을 알 것이니

 


고향과 가족을 향한 떠도는 이의 그리움을 노래했다.

반복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롭게 곱 씹히는 시이다.

 ‘명절만 되면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네’ 구절은

 천여 년 간 나그네의 그리움을 나타내는 명언으로 쓰였으며,

고향을 떠난 수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명절 때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중국인 특유의 문화가 배어있는 시이다.

 


關雎

시경 중 제 1 수


關關雎鳩,在河之洲。

窈窕淑女,君子好逑。

꾸우꾸우 물수리새 모래섬에 정답듯이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參差荇菜,左右流之。

窈窕淑女,寤寐求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헤쳐찾듯

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 깨나 구하고저

 

求之不得,寤寐思服。

悠哉悠哉,輾轉反側。

 구하여도 얻지 못해 자나 깨나 생각하니

아득하고 아득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參差荇菜,左右采之。

窈窕淑女,琴瑟友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따노라니

 아리따운 아가씨 금을 타면 나는 슬을 타리

 

參差荇菜,左右毛之。

窈窕淑女,鍾鼓樂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골라내니  

아리따운 아가씨 종을 치면 나는 북을 치리

 


중국 최초의 시가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시경은

수천 년 전의 시구임에도 아직까지 전해지는 명구가 많다.

시경 중 제 1수로 가장 유명한 <관저>는

중국 애정시 중에서도 후대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시이다.

 

夏日絶句

이청조


生當作人傑

死亦爲鬼雄

至今思項羽

不肯過江東

살아서는 당연 사람들 중 호걸이었고

 죽어서도 역시 귀신들 중 영웅이리라

지금도 항우를 그리워함은

 그가 강동으로 후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중국의 여류시인 이청조의 작품으로 인생의 가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사람은 살아서는 사람들 중의 호걸이 되어 국가를 위해 업적을 세우고,

죽어서도 국가를 위해 몸바쳐 귀신들 중의 영웅이 되라는

애국의 격정이 절제된 시어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送杜少府之任蜀州
왕발


城闕輔三秦

風煙望五津

삼진이 둘러싸고 있는 장안 성궐에서

바람과 안개 아득한 오진을 바라본다.

 

與君離別意

同是宦遊人

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각별함은

나 또한 벼슬살이로 떠돌기 때문일 터.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벗만 있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

 

無爲在岐路

兒女共沾巾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아녀자같이 눈물로 수건을 적시지 마세.


중국 송별시의 걸작으로 시 속에 이별 당시의 슬픔이 절절히 전해진다.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

는 지금도 자주 되뇌어지는 이름 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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