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18-04-11 15:30

칠곡이야기

선산김씨 문주문중의 재사(齋舍) 경모재
아트코리아 | 조회 311

고려 개국 공신 김선궁 초상화 (부분) 선산(일선 김씨)김씨 시조, 태조 왕건이 활을 선물하고 지어준 이름이다.


선산김씨 문주문중의 재사 경모재


경모재 기문


경모재 중건비와 문주문중 송덕비


경모재 전경

 

선산김씨 문주문중의 재사(齋舍) 경모재

 

 

 

명문 선산김씨는 연원(淵源)이 깊다. 시조는 순충공(順忠公) 선궁(宣弓, 904-946)으로 벼슬은 고려 정란보국 벽상공신 문하시중(靖難輔國 壁上功臣 門下侍中)이다.

아버지는 일선군사(一善郡事) 체의(體宜)로 신라 46대 문성왕의 7대손이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치기 위해 선산에 머물려 군사를 모집할 때 불과 15세라는 어린나이에 지원하니 태조가 기뻐서 활(弓)을 하사하며 이름도 선궁(宣弓)이라 지어주었다.

이러한 명문이 대구로 이거(移居)한 것은 전주 판관을 지내며 임란 중 창고를 열어 고을의 주민들을 구휼(救恤)한 24세 김안국(金安國)이 달성군 세천리(世川里)에 터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그 후 증손인 27세 통덕랑(通德郞조선 시대, 정오품 상의 문관 품계) 김자창(金自昌)이 금호강을 건너 문주(文朱, 현 북구 금호동(琴湖洞)로 이주하여 오늘에 이른다.

경모재(景慕齋)는 1993년 3월에 세워졌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많은 학자들이 改憲의 논리를 제공하고, 정계에 진출할 때 끝까지 교단을 지킨 헌법학자 김철수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도 통덕랑 김지창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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