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죽령 옛길의 산증인 영주 수철리 느티나무
이정웅 | 조회 390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죽령 옛길의 산증인 영주 수철리 느티나무
없어진 주막 지킴이, 죽령의 옛 이야기 들려주는 듯

명승 제30호로 새재, 추풍령과 더불어 호서, 근기, 강원지역으로 인적, 물적 교류가 잦았던 죽령(竹嶺)이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도5호선(1933), 중앙선철도(1941), 중앙고속도로(2001) 개통으로 기능이 쇠퇴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특별한 뉴스라고 할 수 있다.

영주시가 새롭게 꾸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발 696m로 새재보다 47m, 추풍령보다 454m 높고, 특히 신라가 북진을 위해 156년(아달라왕 3년) 계립령로를, 2년 뒤인 158년(아달라왕 5년)에 죽령로를 개설했으나, 1414년(조선 태종 14년) 조령(鳥嶺) 즉 새재가 개설됨으로써 계립령은 그 기능이 상실되었던 데 비해 죽령은 지금까지 도로 구실을 하고 있어 정부가 만든 관도(官道)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기 때문이다.

1849년(헌종 15년) 순흥인 안정구(安廷球)가 편찬한 ‘자향지’(梓鄕誌)에서는 ‘고을 서쪽 40리 창락(역) 서쪽에 있다. 신라 아달라왕 무술년(아달라왕 5년을 말함, 필자)에 죽죽(竹竹)이 처음 길을 열었고 이어서 이곳에서 순절하였다. 죽령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 이 때문이다. 고개 서쪽에 죽죽사(竹竹祠)가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어느 도승(道僧)이 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너무 힘들어 짚고 가던 대나무 지팡이를 꽂아 둔 것이 살아나서 대나무 고개, 즉 ‘대령’을 한자로 대 죽(竹)자와 고개 령(嶺)을 써서 ‘죽령’(竹嶺)이라고 한다”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그러나 죽령마루에 영주시와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가 공동으로 설치해 놓은 안내판에는 ‘동국여지승람’에 죽죽이 개설하고 순절했다고 표기해 놓았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죽죽이 개설하다가 순절했다는 내용이 없다.)

또한 죽령은 온계 이해와 퇴계 이황의 형제애가 스며 있는 곳이다. 충청감사로 있던 형이 고향 예안에 올 때 당시 풍기 군수로 있던 퇴계는 죽령 경치 좋은 곳을 골라 한 곳은 잔운대(棧雲臺), 다른 한 곳에는 촉령대를 만들어 주연을 베풀며 우애를 다졌다. 퇴계는 촉령대라는 시에서 그 기쁨을 ‘자연의 터를 다듬어서 두 대(臺)를 꾸미니/ 감사 형님 오실 때에 배웅하기 위함이네. /우리 정분 넘치듯이 정겨운 물소리 들려오고/ 이별의 한 쌓이듯이 산 우뚝 높아라’ 하였고 온계는 ‘귀신이 한 일인 듯 층대 우뚝하니/ 하룻밤 사이 날 기다려 쌓은 것이라네./ 안계 정히 하늘 끝까지 열리겠기에/ 잠시 백운이 쌓인 무더기를 찍어서 부수네’라고 화답한 데서 알 수 있다.

죽령은 ‘상원사동종이야기’ ‘여섯선비이야기’ ‘무쇠다리이야기’ 등 설화도 풍부하다. 선비들이 과거 보러 갔다가 합격과 낙방의 애환을 안고 돌아오고, 보부상들이 상품을 교역하여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등은 여느 고개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1890년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평안도의 박천, 영변을 비롯하여 개성, 평양 사람 약 600가구 3천여 명이 ‘정감록’에서 영원한 피란처로 알려진 십승지지의 첫 번째인 풍기를 찾아 고개를 넘어온 일은 죽령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다.

평안도 사람들은 직물을, 개성 사람들은 인삼재배를 주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오늘날 인삼과 인견이 영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풍기읍 수철리 중앙선 소백산역 남쪽에 새롭게 꾸민 넓은 터가 죽령 옛길의 초입이다. 창락역(지금의 풍기온천 자리)에서 10여 리를 걸어왔고, 험한 죽령을 목전에 두고 허기도 달래고 목도 축여야 하니 주막이 없을 수 없고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어 ‘느티쟁이 주막’으로 불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주막은 없어졌으나 느티나무는 건재해 21세기 새롭게 조명되는 죽령에 대해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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